제11화 민정우의 꿈
- “맞아, 징계받으면 형이 분명 또 화낼 거고 그러면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너의 꿈도 반대할 거야.”
- 그들의 말에 냉소를 짓던 민정우는 외투를 책상에 던져버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펜 하나와 시험지, 그리고 연습장을 꺼냈다.
- “……”
- 바지 주머니에 꽤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 그 모습을 본 앞자리 친구가 입을 삐죽거렸다.
- “너 또 PC방 가서 게임하면서 공부한 거야??”
-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민정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 “응.”
- 책상 위에 놓인 빽빽이 적힌 시험지를 훑어보던 친구는 침을 삼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공부와 꿈 둘 다 놓치지 않는 민정우 인정.”
- 민정우의 꿈은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형이 허락하지 않았다. 꼭 하고야 말겠다면 전교 1등을 해야 한다고 했다.
- 그래서 민정우는 1등에 집착했다.
- 하지만 매번 1점 차이로 1등을 놓쳤고, 그 때문에 모든 분노를 전교 1등, 송시훈에게 쏟아냈다.
- 문제 풀이부터 대회까지, 송시훈이 하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 했다.
- 하여 모두가 전교 1등 송시훈과 항상 전교 2등에 머무는 민정우가 앙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너 누구야?”
- 화가 잔뜩 난 채로 자리에 돌아온 민정우는 새로운 짝꿍이 생겼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 송다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 이미 반 시간이 지났다. 이제라도 알아본다는 게 어딘가!
- “난 송다은이라고 해. 오늘 전학 왔어.”
- 민정우는 흥미 없는 듯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
- “난 깔끔한 걸 좋하해. 그래서 서로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누군가가 부탁해도 러브레터같은 걸 전해주지 않았으면 해. 수업 중에는 조용히 해줘. 혹 나의 고귀한 사색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 송다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 왜 이렇게 말이 많지?
-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민정우를 쳐다보던 그녀가 말을 잘랐다
- “겨우 2등 주제에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 “… 뭐!!!”
- 송시훈도 모자라 이제 새로 온 애까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
- 혹시 서원고의 점수가 얼마나 사악한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 흥!
- 이번 시험이 끝나면 분명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 ……
- D반.
- 창턱에 엎드려 한껏 인상을 쓰던 송민주는 송다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 시험은 이미 끝났을 텐데 오지 않은 걸 보면 시험에서 떨어져 교장 선생님께 쫓겨난 것이 분명하다.
- 하하하, 쌤통이다!
- 그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의 짝꿍 윤다혜가 다가왔다.
- “민주야, 뭐가 그렇게 즐거워?”
-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잔디밭뿐이었다.
- 시선을 돌린 송민주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려다 문뜩 윤다혜가 학교 게시판의 관리자이고 소문에 아주 민감한 아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 만약 그녀를 이용해 송다은이 시험에 떨어졌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송다은의 체면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고, 부모님도 더 우수한 자신을 예뻐할 것이다.
- 그녀는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 친딸이면 뭐? 결국엔 내 발아래 짓밟히고 말 텐데!
- 사악하게 일그러진 송민주의 얼굴에 흠칫한 윤다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민… 민주야, 너 괜찮아?”
- 그녀의 소리에 송민주는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 “미안,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어.”
- 송민주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으며 태양혈을 꾹꾹 눌렀다.
- 눈을 깜빡이던 윤다혜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물었다.
- “왜? 무슨 일 있었어?”
- 송민주는 피곤한 척 한숨을 쉬었다.
- “별일은 아니고 언니가 오늘 우리 학교에 시험 보러 오는데 시골에서 자라고 학교도 시골 학교에 다녔어. 게다가 성적도 꼴지인 데다 갑자기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시험보겠다는 거야. 혹시라도 결과가 안 좋아서 자존심이 상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 그녀의 걱정스러운 연기는 완벽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언니를 걱정하는 착한 동생의 모습이었다.
- 하지만 그것은 언니의 상황을 모두에게 알려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을 들은 윤다혜는 눈을 반짝이며 시간을 확인했다.
- “이 시간이면 시험이 끝나고도 남았는데?”
- 송민주는 웃음을 참으며 억지로 슬픈 척했다.
- “진짜 시험에 떨어졌나 봐…”
- 흥미를 느낀 윤다혜는 휴대폰을 꺼내 빠르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 그녀의 행동에 송민주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못 본 척했다.
- 하지만 매년 서원고에 지원하는 사람은 많았고 더불어 떨어지는 이들도 많아 큰 이슈는 되지 않았다. 글을 올린다 하더라도 얼마 안 가 묻힐 것이다.
- 윤다혜는 너무 빈곤한 반응에 입을 삐쭉거리고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그녀들의 코끝을 자극했다. 그러더니 짙은 갈색 머리를 한 잘생긴 소년이 다가와 뜨거운 밀크티 한 잔을 송민주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 “밀크티야, 뜨거울 때 마셔.”
-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돌아섰다.
- 그의 움직임은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듯이 경건했다.
- 그가 떠난 후, 윤다혜는 부러운 눈빛을 보내며 송민주의 팔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와, 민주야, 정우가 또 밀크티를 가져다줬어.”
- 송민주의 허영심이 마구마구 채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밀크티를 윤다혜에게 건네주었다.
- “난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서, 너나 마셔.”
- 윤다혜는 너무 고마운 나머지 뜨거운 밀크티 온도에 손이 데이는 줄도 모르고 소중히 들고 있었다.
- 그녀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 “민주야, 정우는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이렇게 오랫동안 널 쫓아다니는데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거야?”
- 그러자 잠깐 멈칫하던 송민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우리는 아직 학생이고 공부가 우선이지. 곧 대학 입시도 다가오는데 가장 중요한 건 좋은 대학에 가는 거야. 아직은 연애하면 안 돼.”
- 밀크티를 손에 쥔 윤다혜는 존경어린 눈으로 송민주를 바라봤다.
- “와, 너 진짜 자기 관리 철저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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