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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있어?

  • “유연석 부인이에요.”
  • 두 남자는 놀란 눈빛으로 안다해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 “그럼…”
  • “제 이름은 안다해예요.”
  • 안다해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 “동창 모임에 가족을 데려오면 안 되나요?”
  • “아, 그런 건 아니에요.”
  •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볼게요.”
  •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유연석은 독보적인 인물이 되어 주변을 겹겹이 둘러싼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 안다해는 끼어들고 싶지 않아 아예 조용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 소란스러운 칵테일바의 분위기에 더위를 느꼈는지, 유연석은 겉옷을 벗어 팔에 걸쳤다.
  • 그런데 누군가가 그 옷을 가져가려고 손을 내밀었다.
  • “내가 들어줄게.”
  • 유연석은 그 손을 피했다.
  • “괜찮아. 내가 들어도 돼.”
  • 안다혜는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 “이 사람들 좀 봐. 오늘 기어이 너를 쓰러뜨릴 태세잖아. 옷은 나한테 주고 넌 저 사람들 상대하는데 전념해.”
  • 유연석이 잠깐 망설이다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자 안다혜는 유연석의 팔에서 겉옷을 벗긴 후 옆에 놓지도 않고 줄곧 들고 있었다.
  • 갑자기 그녀가 유연석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며 고개를 숙이라고 하자 유연석은 고분고분 그녀의 키에 맞춰 몸을 숙이고 귀를 그녀의 입술에 댔다.
  • 안다혜가 유연석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는지, 유연석은 눈에 밝은 빛이 감돌면서 미소까지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야, 무슨 귓속말을 그렇게 해?”
  • 워낙 숫기가 없는 안다혜는 바로 목청을 높여 말했다.
  •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연석이는 내 사람이야. 술을 너무 많이 줬다가 나한테 혼날 줄 알아.”
  • “어머나, 다혜가 마음이 아픈가 보네?”
  • 안다혜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 “헛소리하지 마. 아프기는 개뿔.”
  • 유연석도 미간을 찌푸렸다.
  • “함부로 말하지 마. 다혜 결혼해서 임신까지 했잖아.”
  • 동창들은 유연석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유연석의 한마디에 그들은 더 이상 농담도 하지 않고 조신하게 행동했다.
  • 이때 유연석 옆에 서 있던 남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 “다들 적당히 해. 술 좀 마셨다고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연석이와 다혜 우정이 그렇게 쉽게 깨지겠어?”
  • “그러게. 두 사람이 호텔에 가도 나란히 앉아 게임이나 하고 있을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 말하고 있는 사이 안다혜가 소리 없이 유연석의 손에 술이 담긴 용기를 쥐여주었다. 그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언뜻 봐서는 술과 별 다를 바 없었다.
  • 하지만 줄곧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안다해는 조금 전에 안다혜가 용기에 있던 술을 다 버리고 생수로 교체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 유연석은 안다혜와 호흡을 맞춰 얼른 그 용기를 받아 들고는 자신의 술잔에 가득 채웠다.
  • “우리의 학창 시절을 위해, 청춘을 위해 다 같이 건배!”
  • 동창 모임이란 원래 이렇게 다 함께 모여 어리숙하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 거의 끝날 무렵 다른 사람들은 다 취해서 비틀거리는데 유연석 혼자만 얼굴이 발그스름할 뿐 정신은 말짱했다.
  • 그는 윗단추를 풀어 헤치고 소매를 걷어 팔꿈치까지 올려 짙은 남색 암밴드로 고정한 후 긴 손가락으로 콧등에 걸린 금테 안경을 위로 올렸다. 행동 하나하나 너무 대범하고 멋있어서 그의 존재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유연석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다가가서 발로 그를 걷어찼다.
  • “담배 꺼. 다혜 임신 중이잖아.”
  • 그 남자는 한참 멍해 있다가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겸연쩍게 웃으며 담배를 꺼서 휴지통에 버렸다.
  • “연석아, 미안해. 깜박했어.”
  • “정신 똑바로 차려.”
  • 유연석이 노려보자 그 남자는 얼른 웃는 얼굴로 굽실거렸다.
  • “그래. 알았어.”
  • “연석이 이런 모습은 처음 보죠?”
  • 갑자기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더니 안다해 맞은편에 앉았다.
  • 안다해는 그 사람을 훑어보았다.
  • 유연석과 나이가 비슷한 걸 보니 유연석의 동창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머리가 좀 길고 검은 테 안경을 걸고 있었는데 선한 얼굴에 온화한 성격을 가진 학자 타입이었다.
  • “실례지만?”
  • “제 성은 강씨예요.”
  • ‘점잖고 온화하고 예의 바르니까 혹시 방금 그 사람들이 말했던 강민인가?’
  • “강민 씨?”
  • 강민은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웃었다.
  • “저를 아시네요?”
  • “방금 같은 반 친구들이 무의식중에 말하는 걸 들었어요.”
  • 안다해가 말했다.
  • “왜 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세요?”
  • 강민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 “유연석이 있으니까요.”
  • “유연석이 있는데 왜요?”
  • 강민이 한숨을 내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학창 시절에 안다혜가 저를 좋아했었죠.”
  • 안다해는 그가 바로 백옥금이 말한 유연석의 친구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 “연석이 부인 되시죠?”
  • “네.”
  • “이렇게 예쁘고 단아한 와이프를 얻다니, 연석이는 참 복도 많네요.”
  • 안다해는 미소로만 답했다.
  • “연석이 지금 많이 변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얼마나 사나웠는지 남학생들이 모두 그라면 손을 들었거든요.”
  • “그래요?”
  •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애들은 싸움을 잘하는 남자애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여자애들 거의 다 그를 좋아했거든요.”
  • 강민이 잠시 후 한마디 보탰다.
  • “안다혜만 빼고요.”
  • 안다해가 물었다.
  • “다혜 씨는 강민 씨를 좋아했다면서요.”
  • “다혜가 저를 좋아했다고요?”
  • 강민은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웃음 쳤다. 이어서 그는 뼈가 담긴 말을 했다.
  • “글쎄요.”
  • “글쎄라니요?”
  • 강민은 살짝 취한 것 같았다. 그는 술잔을 눈 가까이에 대고 안에 들어 있는 투명한 액체를 들여다보았다.
  • “다해 씨,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