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바지 주머니면 불편하잖아
- 안다해는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유연석이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만은 알았다.
- 생수를 담았던 용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데 몇 사람이 유연석을 둘러싸고 앞다투어 그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
- 임신한 몸으로 물불 가리지 않는 주정뱅이들을 상대한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안다혜가 옆에서 아무리 소리 질러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 어쩔 수 없이 몇 잔 더 마시고 난 유연석은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렸다.
- 안다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 “죄송하지만 저는 연석 씨한테 가 봐야겠어요.”
- 강민도 더는 이상한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얼른 가 보세요.”
- 안다해는 재빨리 다가가서 유연석의 술잔이 채워지기 바쁘게 가로챘다.
- “이 여자 누구야?”
- 안다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유연석을 부축하며 물었다.
- “연석 씨, 괜찮아요?”
- 한참 후에야 안다해를 알아본 유연석은 고개를 저었다.
- “나 괜찮아.”
- 두 사람의 소리가 낮아서 미처 알아듣지 못한 주정뱅이들은 안다해를 종업원인 줄 알고 끌어당기려고 달려들었다.
- “넌 뭔데 끼어들어. 연석이한테 달라붙어 어떻게 좀 해보려고…”
- 유연석이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다가가 안다해 앞을 막아서며 윽박질렀다.
- “그 손 치워.”
- “연석아, 이 여자가 지금 너한테 꼬리치잖아. 이런 여자는 지켜줄 가치가 없어…”
- “내 와이프야.”
- 순식간에 술을 깬 주정뱅이는 유연석의 뒤에 있는 안다해와 창백한 안색으로 옆에 있는 안다혜를 보면서 의아해하며 물었다.
- “이 여자가 와이프면 다혜는?”
-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아직도 유연석의 겉옷을 들고 있던 안다혜는 안색을 흐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 “나와 연석이는 그냥 친구라고 내가 말했잖아.”
-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보며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 뭔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 “연석아, 너 다혜와는…”
- 어느새 얼굴에 취기가 가시고 눈빛도 이성을 되찾은 유연석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오늘 모임은 여기서 끝내자. 다해 씨, 집에 가자.”
- “네.”
- 안다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안다혜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 “다혜 씨, 고마워요. 연석 씨 옷은 저한테 주세요.”
- 안다혜는 유연석의 겉옷을 품에 안고 한사코 놓지 않았다.
- “어차피 같이 가야 하니까 제가 들고 있을게요.”
- 주위에 보는 눈도 많고, 안다해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 “알았어요. 그럼 저는 연석 씨를 부축해야 하니 다혜 씨한테 부탁할게요.”
- 유연석이 말했다.
- “가자.”
- 안다해가 유연석을 부축해서 앞장서고 안다혜가 유연석의 겉옷을 들고 뒤따라 나가고 나니 칵테일바에는 놀라서 멍해진 사람들만 남았다.
- “무슨 상황이야?”
- “나도 모르겠어.”
- 강민이 술잔을 들고 걸어오더니 목을 젖히고 원샷한 후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 “꽃이 시들고 나서 가지만 꺾지 말고 꽃이 피어있을 때 바로 꺾어라...”
- “하하. 우리의 강 수재가 술이 들어가니 시를 읊고 싶은가 보네? 무슨 뜻이야? 우리는 무식해서 듣고도 모르겠어.”
- “무슨 뜻이냐면…”
- 강민은 쾅 하고 술잔을 내려놓고는 멀어져가는 안다혜의 고독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그러지나 말지.”
-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왔다.
- 안다해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술기운으로 후끈 달아오른 유연석이 있어서 그의 몸에 닿은 반쪽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 유연석이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 없었다.
- “내가 대리 부를게.”
- 유연석의 말에 안다혜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드는데 안다해가 말했다.
- “제가 운전할게요.”
- 유연석이 약간 놀라면서 물었다.
- “당신 운전할 줄 알아?”
- “알아요. 지금까지는 운전할 기회가 없었잖아요.”
- 안다해가 웃으며 말했다.
- 3년 동안 안다해가 출퇴근할 때면 항상 유연석이 그녀를 태우고 다녔는데, 한밤중에 야근할 때까지도 유연석은 기사로서 책임을 다했다.
- 안다해가 병원에 간다고 했을 때 데려다주지 않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 “차 키는 어디에 두었어요?”
- 안다해가 물었다.
- “주머니에 있어.”
-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안다혜는 유연석의 겉옷 주머니를 뒤졌다.
- “없는데?”
- 유연석은 확실히 술이 과한 것 같았다. 그는 안다해에게 기대다시피 하고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얹은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바지 주머니에 있어.”
- “그럼 똑바로 서야죠. 이러고 있으니 손이 안 닿잖아요.”
- “내가 할게!”
- 안다혜가 한 마디 외치더니 얼른 다가와 유연석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하자 안다해가 그녀를 말렸다.
- “다혜 씨, 바지 주머니를 들추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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