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일개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하버드 박사 논문보다 어려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민주는 오만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녀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에 송다은이 다녔던 학교는 시골의 평범한 고등학교였고, 성적 역시 중하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 수준을 가지고 나랑 같은 학교에 다니려는 헛꿈을 꿔? 꿈 깨! 잠시 뒤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겠네!’
송다은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짐작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용한 두 사람과는 달리 송진호만은 혼자 뒷좌석에 앉아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처리된 거야? 서원고 교장이 전례를 깨고 받아주겠대?]
[송 대표님, 교장 선생님께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다십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내가 기부한 돈이 부족하다는 거야? 그럼 내가 건물을 세 채 더 기부하도록 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동생을 받아줘야 할 거야!]
[송 대표님, 대표님께서 건물을 아무리 많이 기부하셔도 교장선생님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실 겁니다. 올해 고3 학생들이 두 달 뒤면 수능을 쳐야 하는데, 교장선생님께선 학생을 받아 학교의 전체 성적을 끌어내리는 모험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 할 거예요…]
[젠장! 만약 교장이 내 동생의 기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내가 서원고등학교를 평평하게 밀어버릴 줄 알아!]
[……]
송씨 가문의 저택은 서원고등학교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청춘의 활기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그녀를 덮쳐왔다. 이에 두 번의 삶 동안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던 송다은의 마음도 어쩔 수 없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네. 한때 그토록 꿈꿨던 일이 드디어 실현됐어.’
교장은 비록 강경하게 부정 입학은 안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송씨 가문의 재력이 두렵기는 했는지 조마조마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교문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며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듯 송다은이 시험을 칠 방을 따로 하나 마련해 주기까지 했다.
그녀가 시험을 치게 될 과목은 총 네 개로, 국영수에 과학탐구 영역과 사회탐구 영역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었다. 국영수가 각각 100점 만점에, 과학탐구 영역 또는 사회탐구 영역이 100점 만점이었고, 입학 기준 점수는 320점이었다.
시험 문제들을 한번 훑어본 송다은은 이내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험 감독관 선생은 그녀의 속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얘는 검산도 안 하는 거야? 문제를 한번 보고 답을 아는 건가?’
시험시간은 총 4시간이 주어졌지만, 송다은은 단 1시간 만에 손에서 펜을 내려놓았다.
“다 썼어요, 선생님. 시험지 제출할게요.”
시험 감독관 선생은 기가 막혔다.
“??? 더 풀거나 검사 같은 것도 안 하는 거니?”
그러자 송다은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고맙지만 필요 없어요. 아마 점수는 충분할 거예요.”
이에 시험 감독관 선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시험지를 집어 들었다.
‘참나, 앞에 있는 문제만 풀고 뒤쪽에 절반 이상은 비워놨는데, 이래놓고 점수가 충분할 거라고?’
송진호 역시 그녀가 시험지의 뒷면을 비워놓은 것을 보았고, 아마 문제가 너무 어려워 풀 줄 모르는 것이라 짐작하고는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이딴 쓰레기 학교, 못 붙으면 말지 뭐. 오빠가 더 좋은 학교를 찾아줄게.”
옆에 있던 교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그렇게 대놓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시험 감독관 선생은 빠른 속도로 채점을 진행했다.
막 채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입학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던 선생은 채점을 이어 나갈수록 놀라움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풀어놓은 문제들은 비록 수는 적었지만 전부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목이 다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채점을 끝낸 뒤 점수를 더하자 놀랍게도 딱 320점이었다. 1점도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320점 말이다.
앞에 있는 이 여자애는 딱 봐도 일부러 자신의 점수를 조절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문제를 전부 다 풀었다면 아마 학년에서 한 자릿수 등수 내에는 들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더 무서운 학생이 바로 점수를 조절하는 학생이었다. 이미정 선생은 시험지를 손에 쥔 채 빙그레 웃음 지으며 송다은에게 다가가 물었다.
“송다은 학생, 시험 엄청 잘 봤어. 이미 입학 기준 점수는 넘겼다고. 우리 B반에 들어올 생각 있어?”
이 학교 3학년은 네 개 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성적순으로 나눈 A, B, C, D 네 개의 반 중 성적이 가장 좋은 반이 바로 A반이었다. 이에 송다은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이미정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전 A반에 가고 싶어요.”
그녀의 꿈은 단순히 서원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하려는 것은 바로 지난 삶에서와 같이 차트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다.
교장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곧바로 수락했다.
“그래그래, 다은 학생이 가고 싶은 반으로 가야지. 이미정 선생, 얼른 가서 윤 선생한테 연락해요. 그 반에 학생 한 명 새로 들어갈 거라고요.”
‘웃기는 소리! 비록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눈다고는 하지만 다은 학생은 딱 봐도 점수를 조절한 거잖아! 이 정확도면 1등도 문제없을 거라고! 이 학생은 보석이야!’
이에 이미정 선생은 다소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몇 걸음 옮기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송다은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윤 선생님이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으셔. 만약 그 반에서 서러운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와. 선생님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송다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선생님.”
한편, 송진호는 시험지를 손에 쥔 채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이게… 내 동생이 푼 거라고? 반밖에 안 풀었는데 놀랍게도 320점을 채웠단 말이야? 이게 신동이 아니면 뭐겠어?!’
“가져가서 액자에 끼워서 내 사무실에 걸어놓도록 해요.”
송진호는 들고 있던 시험지를 옆에 함께 온 운전기사에게 건넸다.
‘우리 동생 똑똑하네. 액자에 끼워 넣으면 한쪽 면만 보인다는 걸 알고 한쪽 면만 썼잖아. 역시 똑똑해!’
송다은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오빠, 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아?”
다른 대표이사들은 다들 사무실에 유명 작가의 작품을 걸어놓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비싼 예술 작품을 걸어놓는데, 그녀의 오빠는 시험지 두 장을 걸어놓게 될 걸 생각하면 기상천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송진호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어른들 일이니까 어린애는 신경 끄고 이만 수업하러 가봐. 저녁에 운전기사가 데리러 올 거야. 집에 돌아오면 오빠가 그때 다시 제대로 축하해 줄게!”
이에 송다은은 한숨을 내쉬며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
사무실 안에 있던 윤희진은 자신에게 찾아온 송다은을 보자 순간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네가 바로 아까 입학시험을 통과한 송다은이니?”
송다은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그러자 윤희진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송씨 가문이 대단하긴 하네. 겨우 기준 점수에 도달한 애를 억지로 내 A반에 집어넣다니 말이야!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기나 하겠어? 이건 지금 이 새로 온 애가 우리 반의 평균 점수를 끌어내릴 거라는 의미라고! 우리 반의 전체 등수가 떨어지게 될 거란 말이야! 곧 수능인데 교장선생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윤희진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 자신의 모든 분노를 앞에 있는 송다은을 향해 쏟아냈다.
“너 내가 이끄는 그 반의 매년 평균 점수가 몇 점인지 알아? 360점이야, 그것도 5년 연속 말이지! 내가 방금 계산해 봤는데, 네 320점을 더하면 전체 평균이 350점으로 떨어지게 돼! 이게 무슨 수준인 줄 알아? 이건 C반 평균 수준이야! 우린 A반이라고!”
그녀는 잔뜩 화가 난 채 송다은을 질책하며 손가락으로 팍팍 소리가 나도록 책상을 두들겨댔다.
하지만 송다은은 그런 그녀의 분노에 전혀 영향을 받은 기색 없이 오히려 침착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약 제가 선생님 반의 평균 점수를 370점으로 올려드릴 수 있다면요?”
그 말을 들은 윤희진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큰소리는 누가 못하니? 370점이라니, 너 자신이 370점이 나오면 내가 너 반장 시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