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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청아 누님의 등장

  • 머릿속이 울려대던 나는 성 서장의 말에 당황했다. 청아 누님에게 프라이빗 안마를 해준 것이 이런 사태로 번질 줄은 몰랐다. 나는 땅에서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 사장님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 대신 말을 잘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서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주장성이 어찌 서장님께 체면치레만 하겠습니까? 이 놈이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죽여 버리는 게 도리상 맞지만 마음 넓으신 서장님이 목숨을 살려주시니 눈이든 손이든 원하시는 대로 없애버리겠습니다.”
  • 주 사장님은 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 서장에게 알랑거렸다.
  • 나는 처량한 기분이 되었다. 주 사장님에게는 절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처럼 잇속만 챙기는 이가 어찌 나 때문에 위대한 성 서장의 눈 밖에 나려 하겠는가?
  • “하, 아부는 그만 둬. 이 애송이가 내 와이프의 몸에 손댔으니 두 손을 잘라버려야겠군.”
  • 그러나 사장의 아부는 조금 먹혀들었는지 성 서장의 표정은 꽤 풀어졌다. 그는 냉랭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 기분 나쁜 기색으로 나를 훑었다.
  • 주 사장은 명령을 받은 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예리한 과도를 가져와서 음흉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공포심에 나도 모르게 덜덜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 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겁을 먹으면서도 반격할 힘조차 없다니.
  • “서웅아, 너를 돕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네가 눈 밖에 나선 안 될 사람의 눈 밖에 났잖아. 네 두 손은 나도 지켜줄 수가 없어!”
  • 주 사장님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손에 든 과도가 번쩍였고 그가 손을 뻗어 내 등 뒤로 숨긴 손을 붙잡으려 했다.
  • 나는 이미 성 서장에게 몇 차례 맞은 상태였기에 몸에 힘이 없었다. 게다가 주 사장님은 원래도 나보다 억셌다. 발버둥을 쳤지만 내 오른손은 그의 힘에 못 이겨 땅바닥에 눌렸고 도마 위에서 칼질을 기다리는 생선 신세가 되었다.
  • 하지만 사람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저도 모르는 힘이 발휘되는 법이었다. 주 사장님이 과도를 내려찍는 그 순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고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 “성 서장님 할 말이 있습니다!”
  • 아마 내 목소리에 놀란 탓인지 주 사장님은 갑자기 흠칫하며 손동작을 멈추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힘껏 손을 빼냈다.
  • 그리고 그 과도는 땅에 세차게 꽂히고 말았다. 예리하게 꽂혀 들어간 칼날을 보고 나는 간담이 서늘해져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젠장, 어른을 놀라게 하다니!”
  • 주 사장님이 내 뺨을 때리더니 욕을 퍼붓고 또 손을 들어올렸다.
  • “성 서장님, 남들이 지껄이는 소리만 믿으시고 청아 누님의 인간성을 믿지 않으시는 건가요?”
  • 나는 이미 더 도망칠 구석도 없었다. 나는 그 말이 성 서장의 화를 다시 한 번 부추기리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두 손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 “제기랄, 이 애송이 자식이 하는 말을 더는 못 들어주겠군. 감히 나와 와이프 사이를 이간질 해?”
  • 성 서장은 역시나 화를 냈고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사장님을 발로 걷어찬 뒤 내 머리채를 잡아 벽으로 몰아붙였다.
  • 나는 내 등에서 나는 선명한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고 순식간에 고통이 엄습해왔다. 그 때문에 등뼈가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 두피 역시 쥐어뜯겨서 마치 머릿속에 몇 천 개의 바늘이 박힌 듯 하여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 “아직도 감히 반항할 생각을 해? 정말로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 성 서장은 반항하는 내 모습을 보고 더욱 분노하더니 단번에 내 목을 졸랐다. 그의 힘이 얼마나 셌던지 한 손으로 나를 땅에서 들어올렸다.
  • 내 목은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듯 아파왔다. 폐 안의 공기가 점차 줄어들면서 호흡이 힘들어졌고 머리에도 산소가 부족해 더 이상 몸부림칠 힘조차 사라지게 되었다.
  • 나는 죽음이 도래하는 공포를 참지 못하고 마지막 발악을 했지만 너무나 무력해 마치 개미 한 마리가 나무를 흔드는 모양새 같았다.
  • “성호천, 당신 미쳤어? 얼른 그 손 놔!”
  • 머릿속이 새하얘지던 그때 문이 세게 열리더니 청아 누님이 강인해 보이는 경호원 둘을 대동하고서 나타났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 성 서장은 청아 누님을 보고 잠시 당황한 뒤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라 손을 놓았다.
  • 온 몸에 힘이 빠진 나는 순식간에 땅으로 고꾸라졌다. 신선한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와 칼에 베이는 듯 한 통증이 느껴졌다. 커다란 눈물이 내 눈에서 떨어졌고 나는 목을 감싸고 격렬하게 기침을 해대었다.
  • “쓰레기 같은 자식.”
  • 정수리 위에서 성 서장의 비웃음 어린 말이 들려왔다. 나는 내가 지금 볼썽사납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성호천, 당신 나한테 뭐라고 했어? 말썽 피우지 않겠다고 하더니 지금 이게 뭐야? 응?”
  • 청아 누님은 성 서장에게 불만스러운 듯 화가 잔뜩 묻어나는 말투였다. 나는 청아 누님의 시선을 느끼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누님의 앞에서 이런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 “어쩔 수가 없었어. 누가 내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려대서 화를 참지 못하고 여기 와서 이 놈한테 화풀이를 해야 했어.”
  • 분노한 청아 누님 앞에서 성 서장은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말했다.
  • “화풀이? 사람이라도 죽여서 입을 막으려고 한 거지?”
  • 성 서장의 그런 태도가 청아 누님을 더 화나게 한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대치 상태에 있었다.
  • 나는 조금 진정된 후 벽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화난 청아 누님의 눈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청아 누님이 이렇게 나를 또 구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 “젠장, 이 애송이가 너한테 뭘 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 하지 마. 내가 그러고도 참을 수 있으면 남자야?”
  • 계속되는 청아 누님의 고성에 성 서장 역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 역시 청아 누님에게 소리를 질렀다.
  • “그 입 닥쳐!”
  •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청아 누님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성 서장의 뺨을 때렸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 다른 사람들은 청아 누님이 어째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성 서장의 말에 놀라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날의 내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청아 누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아무 일도 치루지 않은 것이었다.
  • “좋아. 계속 그렇게 저 놈 지켜봐. 얼마나 더 지켜줄 수 있을지 보겠어!”
  • 성 서장은 침을 뱉고서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