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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여자에게 빌붙어 출세하다

  • 손향의 몸이 이렇게 예민할 줄 몰랐던 나는 뻘쭘한 표정으로 손을 뗐다.
  • “향이 누님, 몸이 거의 회복이 되었다고 하면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 손향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덥석 붙잡았다.
  • “마사지하는 와중에 관두면 비용이 깎일지도 모르는데, 진짜 갈 거야?”
  • 손향의 눈을 마주친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다른 의도를 읽었지만, 차마 더 깊게 파고들 수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다시 쪼그리고 앉아 마사지를 이어갔다.
  • “이번 서비스는 아주 마음에 들어. 자, 이건 1억 원이야. 받아.”
  • 나는 손향에게 옷을 입혀주었고, 그녀는 곧바로 가방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 “서웅아, 다음에도 오늘처럼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해줘.”
  • 손향은 방문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앙큼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에게 이런 모호한 말을 남겼다.
  • 순간, 문 앞에서 엿듣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해버렸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향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 나는 그녀가 일부러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오늘 그녀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에게 실례를 한 건 사실이었다.
  • 방금 그녀는 청아 누님보다 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으니 밖에서 나를 질투하는 사람들도 다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방안에서 그녀와 함께 추잡스러운 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손향의 말은 오히려 그들의 추측을 사실화했다.
  • “정말 뻔뻔하군. 난 여태껏 우리 클럽에서 마시지 샵이 제일 건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을 줄은 몰랐네.”
  • 대체 어떤 사람이 온갖 조소와 풍자가 섞인 말을 내뱉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곧바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했다.
  • 내가 막 화를 터뜨리려고 할 때, 주장성은 들뜬 표정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는 마치 호형호제하는 사이처럼 내 어깨를 감싸 안고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을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왜? 서웅이가 너희들보다 능력 있고 손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니까 질투 나? 매일같이 너희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서웅의 반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 이토록 가식적인 주장성의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의 손을 내 어깨 위에서 떼고 자연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 “보스,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결백한 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결백하기 마련이죠. 저는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는 짓을 한 적이 없기에 남의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간사한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든지 전혀 두렵지 않아요. 별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서 쉴게요.”
  • 내가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 체면을 구겨지게 할 줄 몰랐던 주장성은 난감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지만, 차마 티를 내지 못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 “하하, 피곤하다고 하니 얼른 가서 쉬어.”
  • 내가 몇 발자국을 옮기자마자 나에 대해 왈가불가하던 사람들은 주장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나같이 나를 씹어대면서 아부를 떨고 있었다.
  •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걸음을 옮기면서 손가락을 풀어주었다. 이번에 손향을 마시지 해주면서 나는 손에 과부하가 걸렸고, 아직도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 나는 원래 남에게 잘 보이려고 뻔뻔스럽게 아양을 떠는 짓을 제일 하찮게 여겨 왔다. 만약 본인의 역량이 충분하다면, 굳이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 이 클럽에는 손님용 객실 외에 우리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평소에 피곤함에 지친 우리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곳은 바로 식당 휴게실이었다.
  • “아니, 이게 누구야? 앞길이 창창한 내 제자 아니야? 네 돈줄을 잘 모시고 왔어?”
  •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귀에 익으면서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고개를 들자마자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내 맞은편에 털썩 앉은 장혁 사부를 발견했다.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뜨끔했고, 지난날의 사부가 나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사부님, 저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어요.”
  • 어찌 됐든 그는 나의 스승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나를 조롱한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있었다.
  • “난 네가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걸 차마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은 유망하고 능력도 있으며 나보다 더 잘 나가는데, 오히려 내가 너를 사부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 그의 입가에 걸린 경멸이 담긴 미소는 내 눈을 아프게 찔렀고, 나는 자기도 모르게 울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하루의 스승이라도 평생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죠. 사부님이란 호칭은 당연한 게 아니겠어요?”
  • “하! 헛소리 그만 집어치워! 나한테 너처럼 여자에게 빌붙어서 출세하는 제자란 없어. 나도 더는 너랑 엮이고 싶지 않아. 나중에 남들의 입에 나처럼 늙어빠진 노인네가 직업윤리도 없이 파렴치하고 천한 짓거리를 한다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지 않아!”
  • 그의 말에 자존심이 완전 상한 나는 그를 아무리 존중한다고 해도 나를 함부로 대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식판을 테이블 위에 힘껏 내리쳤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장혁을 노려보았다.
  • “장혁, 당신을 존중해서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건데 주제 파악을 잘해서 사부님이란 호칭에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되길 바랄게요. 앞으로 말은 바른대로 하세요.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했어요. 당신도 나중에 인정사정없이 싸우고는 완전히 돌아서는 걸 원치 않겠죠?”
  • 내 눈빛에 깜짝 놀란 장혁은 넋을 잃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반면, 식당에 있던 사람들도 내 인기척에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 “오서웅! 여자 덕에 출세해서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게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사부로서 너를 가르칠 자격까지 없다는 말이야?”
  •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비록 장혁은 나 때문에 적잖이 놀랐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침착함을 잊지 않았다. 오히려 눈알을 굴리더니 전세를 역전시켜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가 먼저 찾아와서 시비를 걸었는데, 지금은 내가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으로 몰아갔다.
  • “장혁 사부, 이제 서웅이는 능력 있고 제구실을 할 수 있는데 당신 말을 왜 듣겠어? 하루빨리 이런 놈을 밖으로 내쫓는 게 어때? 저놈이 다른 제자들을 망치지 않게!”
  • 그와 똑같이 실력 있고 존경받는 다른 마사지사가 한창 말다툼 하는 나와 장혁을 발견하고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왔다. 나는 그의 가시 돋친 말에 귀가 몹시 거슬렸다.
  • “강춘 사부, 이건 우리 사제 간의 일이니,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정 할 일이 없다면 당신의 그 멍청한 제자들을 조금 더 가르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서웅이랑 같은 시기에 들어온 사람들인데 왜 이토록 차이가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