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언제? 아주 다재다능해진 거 아니었어? 지금 널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대단한 분이 나 같은 사부가 필요하겠어? 그런 건 진작 잊었겠지.”
내가 무어라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사부님은 내 말을 끊고서는 들어주기 힘든, 심지어는 거의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장혁 사부님은 줄곧 내 마음속에 덕망 높은 사부님이자 선배였다. 나는 줄곧 사부님을 존경하고, 나를 거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었기에 그의 앞에서 겸손했다.
애초에 사부님이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고 1인자인 그가 나를 오늘날까지 이끌어준 것이었다. 그 전의 청아 누님에 대한 일은 사부님이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일은 오해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장혁 사부,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제자가 체면을 세워줬는데 이렇게 야단칠 필요가 있어? 사람이 인정이 있어야지.”
“그러니까 말이야. 장혁 사부. 몇 십 년이나 사부 노릇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지만 이렇게 출세한 제자는 처음이잖아. 이제 당신도 자리 물려주고 은퇴할 때야. 지금은 젊은이들의 세상이잖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부도 입을 열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일을 더 키우고 있었다. 원래도 화가 나 있던 장혁 사부는 그들의 말에 더욱 화가 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나는 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나머지 두 사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보더니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은연중에 그들의 들릴 듯 말 듯 한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서웅이 만만치 않은데?”
“칫, 만만치 않은 걸 누구는 몰라? 젊잖아. 몸이라도 팔아서 훨훨 날 수 있지.”
나는 분노로 몸이 근질거렸다.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었기에 내 쪽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시샘을 하는 것이다.
나는 부수입을 크게 벌었기 때문에 저녁에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출근을 한다 해도 꼭 돈이 되리라는 법은 없었다. 고객이 나를 초이스 하지 않는 이상 나를 배정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출근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실 출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모두들 휴가를 내고 놀러 간다고 했다. 월급날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윳돈으로 한바탕 노는 것이다.
나 역시 돈이 있었기에 함께 할 의향이 있었고 자연스레 한바탕 돈을 쓰러 가려 했다. 나는 주저 없이 이정을 찾았다. 이곳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무어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집안에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며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나는 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사부에게 냉대 받는 걸로 모자라 이정까지 나를 그렇게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멍하니 있던 찰나 방문이 갑자기 주 사장님이 들어왔다. 그가 내 침실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서웅아, 잠깐 나와 보렴. 찾는 사람이 있어.”
주 사장은 쌀쌀한 표정에 조금 심경이 복잡한 듯 한 모양새였다. 누군가 나를 찾는다고? 청아 누님일까? 아니면 향이 누님? 그렇게 의문을 품으며 나는 주 사장의 뒤를 따라 나갔다.
“사장님, 누가 절 찾는데요?”
나는 조심스레 묻고 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하, 네가 네 덫에 걸린 거야.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건드려도 호랑이를 건드려?”
주 사장은 동문서답을 하며 내가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할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호랑이? 덫? 요즘 말썽을 피운 적이 없는데 무슨 덫이란 말인가?
그렇게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주 사장님은 나를 그의 사무실 입구로 데려갔다. 안에 누군가 있는 듯 문은 조금 열려있었다.
“멍하니 뭐해? 들어가.”
주 사장님이 들어가라는 듯 내 다리를 걷어찼다.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 발차기를 맞고 비틀거리며 입구에서 고꾸라졌다. 머리가 어지럽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슈트를 입고 가죽 구두를 신었으나 점잖은 느낌은 풍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큰 덩치에 엄숙해 보이는 얼굴에는 작은 흉터가 있었는데 마치 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는 듯 한 모습이었다. 흉터는 안 그래도 험악한 그의 얼굴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당신이 오서웅인가?”
그의 목소리는 매우 굵었고 심지어 다소 험상궂기까지 했다.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채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은 처음 있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떨구고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그는 마치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맞습니다. 예, 서장님. 이 아이가 그 오서웅입니다.”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주 사장님이 아부라도 하는 듯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평소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던 사장님이 저자세를 취하는 것에 놀랐다. 보아하니 만만치 않은 사람인 듯 했다. 게다가 ‘서 서장’이라는 호칭에 무언가 떠올랐다.
청아 누님의 남편이 거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설마 이 남자가 청아 누님의 남편은 아니겠지? 순간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당신에게 물었나? 당장 나가.”
성 서장이 노발대발하며 주 사장님을 노려보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 사장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몸을 숨겼다. 나는 사장님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네, 제가 바로….”
‘퍽!’
그때 힘센 손아귀가 내 뺨으로 날아왔다. 나는 하마터면 그 손짓에 땅으로 엎어질 뻔 했다. 귀가 얼얼하게 울려왔다. 몸을 일으키자 온 몸에 산소가 부족하고 눈에 별이 보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가 그놈이야? 뺨 한 대면 충분히 봐줬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우리 와이프 덕을 보고 있다며? 내가 누군지는 알아? 감히 내 와이프를 건드려?”
서장은 조금도 화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전에 내 배를 발로 찼다.
나는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발차기에 맞아 테이블 위로 날아가야 했다. 나는 발차기 한 번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속이 울렁거리더니 그 자리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 번 더 날아온 발짓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주변이 아득하니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장님, 화 푸시지요. 이런 볼품없는 망나니한테 손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진작 싹수가 노란 놈인 줄 알아 봤습니다. 우선 앉으시죠. 저 친구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바로 주 사장님의 말이었다. 나는 주 사장님이 나를 보호해주려 하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곧 나의 착각이었다. 보호는커녕 그의 화를 더 부추기고 있었다. 언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칭찬하던 그가 이렇게 태세를 전환하다니.
“하, 당신이 아니었으면 진작 이 애송이를 죽였을 거야. 당신 직원이니 나중에 손을 남겼는지 눈을 남겼는지 나한테 잘 말해줘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