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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덕망 높은 사부님

  • “사, 사부님, 제가 언제….”
  • “제가 언제? 아주 다재다능해진 거 아니었어? 지금 널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대단한 분이 나 같은 사부가 필요하겠어? 그런 건 진작 잊었겠지.”
  • 내가 무어라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사부님은 내 말을 끊고서는 들어주기 힘든, 심지어는 거의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장혁 사부님은 줄곧 내 마음속에 덕망 높은 사부님이자 선배였다. 나는 줄곧 사부님을 존경하고, 나를 거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었기에 그의 앞에서 겸손했다.
  • 애초에 사부님이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고 1인자인 그가 나를 오늘날까지 이끌어준 것이었다. 그 전의 청아 누님에 대한 일은 사부님이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일은 오해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 “장혁 사부,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제자가 체면을 세워줬는데 이렇게 야단칠 필요가 있어? 사람이 인정이 있어야지.”
  • “그러니까 말이야. 장혁 사부. 몇 십 년이나 사부 노릇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지만 이렇게 출세한 제자는 처음이잖아. 이제 당신도 자리 물려주고 은퇴할 때야. 지금은 젊은이들의 세상이잖아.”
  •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부도 입을 열었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일을 더 키우고 있었다. 원래도 화가 나 있던 장혁 사부는 그들의 말에 더욱 화가 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 홀로 남겨진 나는 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나머지 두 사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보더니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은연중에 그들의 들릴 듯 말 듯 한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 “서웅이 만만치 않은데?”
  • “칫, 만만치 않은 걸 누구는 몰라? 젊잖아. 몸이라도 팔아서 훨훨 날 수 있지.”
  • 나는 분노로 몸이 근질거렸다.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었기에 내 쪽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시샘을 하는 것이다.
  • 나는 부수입을 크게 벌었기 때문에 저녁에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출근을 한다 해도 꼭 돈이 되리라는 법은 없었다. 고객이 나를 초이스 하지 않는 이상 나를 배정해주지 않을 것이기에 출근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 사실 출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모두들 휴가를 내고 놀러 간다고 했다. 월급날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윳돈으로 한바탕 노는 것이다.
  • 나 역시 돈이 있었기에 함께 할 의향이 있었고 자연스레 한바탕 돈을 쓰러 가려 했다. 나는 주저 없이 이정을 찾았다. 이곳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무어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집안에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며 내 제안을 거절했다.
  • 그러자 나는 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사부에게 냉대 받는 걸로 모자라 이정까지 나를 그렇게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 내가 그렇게 멍하니 있던 찰나 방문이 갑자기 주 사장님이 들어왔다. 그가 내 침실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 “서웅아, 잠깐 나와 보렴. 찾는 사람이 있어.”
  • 주 사장은 쌀쌀한 표정에 조금 심경이 복잡한 듯 한 모양새였다. 누군가 나를 찾는다고? 청아 누님일까? 아니면 향이 누님? 그렇게 의문을 품으며 나는 주 사장의 뒤를 따라 나갔다.
  • “사장님, 누가 절 찾는데요?”
  • 나는 조심스레 묻고 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 “하, 네가 네 덫에 걸린 거야.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건드려도 호랑이를 건드려?”
  • 주 사장은 동문서답을 하며 내가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할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호랑이? 덫? 요즘 말썽을 피운 적이 없는데 무슨 덫이란 말인가?
  • 그렇게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주 사장님은 나를 그의 사무실 입구로 데려갔다. 안에 누군가 있는 듯 문은 조금 열려있었다.
  • “멍하니 뭐해? 들어가.”
  • 주 사장님이 들어가라는 듯 내 다리를 걷어찼다.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 발차기를 맞고 비틀거리며 입구에서 고꾸라졌다. 머리가 어지럽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슈트를 입고 가죽 구두를 신었으나 점잖은 느낌은 풍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큰 덩치에 엄숙해 보이는 얼굴에는 작은 흉터가 있었는데 마치 벌레 한 마리가 붙어 있는 듯 한 모습이었다. 흉터는 안 그래도 험악한 그의 얼굴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 “당신이 오서웅인가?”
  • 그의 목소리는 매우 굵었고 심지어 다소 험상궂기까지 했다.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채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은 처음 있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떨구고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그는 마치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 “맞습니다. 예, 서장님. 이 아이가 그 오서웅입니다.”
  •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주 사장님이 아부라도 하는 듯 그에게 대답했다.
  • 나는 평소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던 사장님이 저자세를 취하는 것에 놀랐다. 보아하니 만만치 않은 사람인 듯 했다. 게다가 ‘서 서장’이라는 호칭에 무언가 떠올랐다.
  • 청아 누님의 남편이 거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설마 이 남자가 청아 누님의 남편은 아니겠지? 순간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내가 당신에게 물었나? 당장 나가.”
  • 성 서장이 노발대발하며 주 사장님을 노려보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 사장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몸을 숨겼다. 나는 사장님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 “네, 제가 바로….”
  • ‘퍽!’
  • 그때 힘센 손아귀가 내 뺨으로 날아왔다. 나는 하마터면 그 손짓에 땅으로 엎어질 뻔 했다. 귀가 얼얼하게 울려왔다. 몸을 일으키자 온 몸에 산소가 부족하고 눈에 별이 보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네가 그놈이야? 뺨 한 대면 충분히 봐줬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우리 와이프 덕을 보고 있다며? 내가 누군지는 알아? 감히 내 와이프를 건드려?”
  • 서장은 조금도 화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전에 내 배를 발로 찼다.
  • 나는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발차기에 맞아 테이블 위로 날아가야 했다. 나는 발차기 한 번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속이 울렁거리더니 그 자리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 번 더 날아온 발짓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주변이 아득하니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 “서장님, 화 푸시지요. 이런 볼품없는 망나니한테 손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진작 싹수가 노란 놈인 줄 알아 봤습니다. 우선 앉으시죠. 저 친구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바로 주 사장님의 말이었다. 나는 주 사장님이 나를 보호해주려 하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곧 나의 착각이었다. 보호는커녕 그의 화를 더 부추기고 있었다. 언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칭찬하던 그가 이렇게 태세를 전환하다니.
  • “하, 당신이 아니었으면 진작 이 애송이를 죽였을 거야. 당신 직원이니 나중에 손을 남겼는지 눈을 남겼는지 나한테 잘 말해줘야 할 거야.”
  • 서장이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