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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재능을 펼칠 기회

  • “나영아, 말 좀 조심해라. 이제 아무 말이나 막 하네.”
  • 청아 누님은 그녀의 말에 얼굴이 확 어두워졌고, 화가 난 것 같았다.
  • “제 말이 틀려요? 언니, 요즘 언니에 관한 소문이 너무 많아요. 제가 언니를 진짜 언니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예요. 남이라고 생각했으면 신경도 안 쓰죠.”
  • 보아하니 그 부인들은 모두 청아 누님보다 급이 낮아 보였다.
  • “나영 누님. 제 직업을 이해 못하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청아 누님한테 그러지는 마세요.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한 번 보여드릴게요.”
  • 나는 화가 나 얼굴이 창백해지며 폭발할 것 같은 청아 누님을 보고 앞으로 걸어나가 나영이라는 사람을 향해 말했다.
  • 오지랖을 부리려 했던 게 아니라 청아 누님께서 몇 번이나 나를 도와줬으니 계속 그녀 뒤에 숨어 있으면 남자답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고, 내가 아무나 만질 수 있는 몸인 줄 알아?”
  • 역시, 그녀들 같은 사치스러운 상류 사회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혐오 가득한 그 눈빛에 나도 같이 혐오심이 들었다.
  • “나영 누님, 피부도 좀 거칠고 눈도 피곤해 보이고 혀도 노란데, 몸이 허하신 것 같아요. 최근에 계속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마음이 불안하시죠?”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곳에 있던 부인들이 나를 보던 시선이 모두 바뀌었다. 나영은 내가 그녀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깜짝 놀라더니 창피해 했다.
  • “어떻게 알았어? 의사야?”
  • “전 그냥 일개 마사지사지만, 그래도 물려받은 기술이 있어요. 혈자리를 전문적으로 마사지해서 신체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을 치료할 수 있죠. 지금 이렇게 눈에 잘 띄는 증상들은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어요.”
  • 사실 나는 마사지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전문적으로 혈자리를 연구한 가문이다. 마사지 기술 뿐 아니라 침술 같은 혈자리를 통해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했다. 그러니 대충 증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하, 허세는. 눈이 있으면 누구나 다 내가 요즘 안 좋다는 거 알 텐데.”
  • 나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여전히 나를 무시했다. 그녀의 그런 태도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었다.
  • “허세인지 아닌지는 한 번 마사지 받아보시면 바로 알지 않을까요? 정말 효과가 있어서 창피해질 까봐 두려우신 건 아니고요?”
  • “너! 그래, 해 봐! 만약 내가 만족 못 하면 감옥 갈 줄 알아!”
  • 내 말에 자극 받은 나영은 벌컥 화를 내더니 내 안마를 받겠다고 했다.
  • 그 룸에는 손님이 쉴 수 있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엔 편하고 푹신한 침대도 있었다.
  • “청아 누님, 저 사람 안 도와주실 거예요? 나영이 진짜 만만한 애 아니에요.”
  • 앞에서 걸어가던 나는 뒤쪽에서 한 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청아 누님한테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청아 누님의 대답을 듣기 위해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 “난 쟤 믿어.”
  • 그 간단한 한 마디에 나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자신감이 솟아났다.
  •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나로서도 나영에게 옷을 벗으라고 하기가 어려워 그냥 옷 위로 마사지를 시작했다. 다행히 옷이 얇고 촉감도 좋아서 그렇게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 몸에서 민감한 부위는 당연히 건드리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비밀스러운 기술은 이런 곳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목과 다리의 혈자리를 마사지하면서 그녀에게 기분 좋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 나는 손을 씻고 그녀의 발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 사실 나영은 몸매와 피부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청아 누님과 향이 누님의 완벽한 몸매를 보고 난 후라 그녀에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 가장 먼저 마사지한 부분은 안쪽 발목 위쪽과 경골 뒤쪽의 삼음교였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예민한 부위인데 내가 마사지를 해도 나영은 아무 반응이 없어 놀랐다.
  •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힘이 약한 건가?
  • 뭐가 문제인지 생각하면서 나는 힘을 더 실었다. 내가 그 혈자리 마사지를 멈추려는 순간 나영이 갑자기 온몸을 흔들더니 신음소리를 냈다.
  •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다시 들어보니 거친 숨소리였고,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반응이 없는 게 아니라 참고 있었던 것이다.
  • “멈… 멈춰… 나, 나 안 할래!”
  • 다음으로 예민한 부위를 마사지하려는데 그녀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 나는 바로 손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 “나영 누님, 제 마사지 만족하시나요?”
  • 살짝 붉어진 나영의 볼을 보고 나는 효과를 거뒀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확실히 할 줄 아네. 내가 잘못 봤어. 근데 내가… 좀 급해서 일단 화장실부터 갔다 올게.”
  • 나영은 부끄러운 듯 나를 흘긋 보더니 일부러 화제를 돌렸고 더 이상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 그녀가 이상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웃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예민했고,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아주 아플 것이다.
  • “서웅아, 잘했어.”
  • 청아 누님이 내 쪽으로 다가오면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다른 부인들도 나영의 반응을 보고는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나에게 마사지를 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은 나도 당연히 기쁘게 받았다. 게다가 모두 부자들 아닌가.
  • “그, 청아 언니, 조금 전엔 미안해요. 언니 화나게 했던 말들 다 담아두지 마세요.”
  • 나영은 어느새 화장실에서 몸을 정리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와인을 들고 미안한 듯 청아 누님을 보며 말했다.
  • “괜찮아. 너 성격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
  • 청아 누님의 그 말에서 나는 그녀의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정말 나영을 용서한 것인지 겉으로만 그렇게 말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처럼 부자들 세상에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고 그저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