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탁 위에서 그녀가 답을 말하지 못하면 곧바로 욕을 내뱉으려고 준비하고 있던 윤희진마저도 그대로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들고 있는 답안지를 펼쳐보았다.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이 모의 시험지의 답안은 선생들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학생들은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럼 설마 계산도 안 해보고 그냥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답을 알아냈다는 말이야? 그,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주관식 문제라고. 암산은커녕 나더러 계산하라고 해도 4, 5분은 족히 걸릴 텐데, 쟤가 어떻게 그냥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답을 알 수 있겠어?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겠지!’
“너 수업 중에 몰래 휴대폰으로 답을 검색한 거지? 시험 칠 때도 휴대폰 들고 들어갈 거니? 앞으로는 그런 잔꾀들은 집어치워. 여긴 A반이야. 네가 전에 다니던 그런 이도 저도 아닌 반이 아니라고.”
윤희진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것 같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도 더 사납고 독살스러워졌다.
그런 그녀의 말에 송다은의 표정이 서서히 굳더니 그녀의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녀는 이곳에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예전의 꿈을 이루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지 못했던 것은 세상의 선생이라는 자들이 지식을 가르치는 현명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듯 인두겁을 뒤집어쓴 악마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증거 있어요, 선생님?”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윤희진은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무슨 증거?”
그러자 송다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을 내뱉었다.
“제가 휴대폰으로 답을 검색해 봤다는 증거요. 방금 선생님께서 그렇게 확신에 찬 채 절 한바탕 나무라셨잖아요. 분명 제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 걸 보고 하신 말씀이실 테니 그럼 분명 증거도 있는 거겠죠?”
“너…”
윤희진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에게는 증거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직감으로 추측을 한 것일 뿐이었다.
다행히 그때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두 사람 대치 상황을 깨트렸다.
따르릉-
윤희진은 화풀이라도 하듯 들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고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송다은을 노려본 뒤 씩씩거리며 교실을 나갔다.
교실 안에 남아있던 모두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난리가 났다.
“와! 감히 마귀할멈의 말에 반박하다니! 용감한걸!”
“저 마귀할멈은 평소에 성적이 낮은 애들을 괴롭히는 걸 가장 좋아해. 때리고 욕하고, 인신공격까지 한다고.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야.”
“맞아 맞아. 오늘 드디어 그 마귀할멈한테 한 방 먹였네.”
주위 학생들은 존경스럽다는 듯 송다은의 책상 앞으로 몰려들어 조금 전 그녀의 행동에 대해 칭찬해 댔다.
그들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송다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입꼬리를 말아 올려 미소 지었다.
“있는 그대로 말한 건데 뭐.”
좋은 선생이라면 당연히 존경받아 마땅하겠지만 그런 선생 자격도 없는 사람은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도, 학생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도 없었다.
그러던 그때, 송다은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안경을 쓴 남학생 한 명이 돌아앉더니 갑자기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다은아, 아까 마귀할멈의 표정을 보니까 아마 네가 정답을 말한 것 같던데, 우리한테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에 송다은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녀는 종이와 펜을 꺼내 그들에게 그 문제의 풀이 방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3분이 지난 뒤, 주위의 학생들은 동시에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는 과장된 몸짓으로 송다은의 손을 잡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다은아, 너 진짜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한다. 난 마귀할멈이 설명해 주는 건 매번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이해가 됐었는데, 네가 설명해 준 건 단번에 알겠어!”
“맞아. 네가 살짝 힌트를 주니까 다 알 것 같은 느낌이야.”
그들의 농담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송다은의 미간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얼굴 위의 표정 역시 한결 부드러워졌다.
“만약 너희들이 싫지 않다면, 앞으로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도 돼.”
그녀는 이전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시험을 쳐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우정 같은 것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연예계에서 우정이라는 것은 모두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허울일 뿐이었고, 돌아서면 상대가 내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지금 이렇듯 그 어떤 이해관계도 얽혀 있지 않음에도 단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신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끌벅적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쪽의 상황과는 달리, 다른 한쪽에서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송시훈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들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던졌다. 펜 끝이 숫자들이 가득 적혀 있는 종이 위를 스치며 까만 선을 남겼다.
종이 위에는 많은 숫자들과 공식들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해답에서 그는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했던 듯한 흔적이 보였다. 그 흔적을 남긴 주인이 얼마나 짜증이 나있는지 또한 보였다.
‘쟤는 어떻게 푼 거지? 왜 난 아무리 계산해도 틀린 답이 나오는 거야? 이 문제는 거의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이라 만만치 않은 난이도인데, 쟤는 그저 한 번 훑어보고 마지막 해답을 알아냈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윤희진은 어쩌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앉아 있는 위치에서는 송다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휴대폰은 아예 켜져 있지도 않았고, 꺼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답을 검색해 봤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라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문제를 풀라며 쟤를 일으켜 세웠을 때 쟤는 국어책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빙그레 웃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지 미움과 분노로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웃는 것도 엄청 못생겼네! 날 대할 때는 잔뜩 찡그린 얼굴이더니, 이제 막 알게 된 애들을 대할 때는 방긋방긋 웃고 있네. 흥!’
그러던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교실 뒷문을 박차고 열어젖히더니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의 소년이 교복 재킷을 손에 든 채 굳은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던 그는 자신의 자리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긴 다리를 휘적이며 송시훈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송시훈의 손에 들린 수학 시험지를 한번 훑어보더니 다짜고짜 말을 내뱉었다.
“답은 BDADB 야. 이 시험지 난 한번 보기만 하면 답이 나온다고. 멍청한 애들이나 하루 종일 붙잡고 있지!”
그 말을 마친 그는 마치 엄청 대단한 일이라도 해냈다는 듯 싸움에서 승리한 수탉처럼 기고만장하게 고개를 추켜들었다.
애초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송시훈은 현재 그가 그렇듯 도발을 해오자 바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
“오? 그래? 멍청한 내가 전교 1등이면, 고작 2등밖에 못 한 사람은 뭔데? 쓰레긴가?”
“너…!!!”
민정우는 분노에 이를 갈며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너 이 자식, 너무 일찍 기뻐하지는 마. 1등은 언젠가 내 것이 될 테니까!”
이에 송시훈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짙은 조롱이 담긴 웃음이었다.
“허허.”
이 같은 상황은 이 반에서는 거의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일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민정우가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그와 친한 몇몇 아이들이 급히 달려들어 그들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