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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용감하게 마귀할멈과 맞섰다

  • 교탁 위에서 그녀가 답을 말하지 못하면 곧바로 욕을 내뱉으려고 준비하고 있던 윤희진마저도 그대로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들고 있는 답안지를 펼쳐보았다. 놀랍게도 정답이었다.
  • 이 모의 시험지의 답안은 선생들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학생들은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 ‘그럼 설마 계산도 안 해보고 그냥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답을 알아냈다는 말이야? 그,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주관식 문제라고. 암산은커녕 나더러 계산하라고 해도 4, 5분은 족히 걸릴 텐데, 쟤가 어떻게 그냥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답을 알 수 있겠어?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겠지!’
  • “너 수업 중에 몰래 휴대폰으로 답을 검색한 거지? 시험 칠 때도 휴대폰 들고 들어갈 거니? 앞으로는 그런 잔꾀들은 집어치워. 여긴 A반이야. 네가 전에 다니던 그런 이도 저도 아닌 반이 아니라고.”
  • 윤희진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것 같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도 더 사납고 독살스러워졌다.
  • 그런 그녀의 말에 송다은의 표정이 서서히 굳더니 그녀의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 그녀는 이곳에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예전의 꿈을 이루고 싶었을 뿐이었다.
  • 하지만 그녀가 생각지 못했던 것은 세상의 선생이라는 자들이 지식을 가르치는 현명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듯 인두겁을 뒤집어쓴 악마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 “증거 있어요, 선생님?”
  •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윤희진은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 “무슨 증거?”
  • 그러자 송다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을 내뱉었다.
  • “제가 휴대폰으로 답을 검색해 봤다는 증거요. 방금 선생님께서 그렇게 확신에 찬 채 절 한바탕 나무라셨잖아요. 분명 제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 걸 보고 하신 말씀이실 테니 그럼 분명 증거도 있는 거겠죠?”
  • “너…”
  • 윤희진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에게는 증거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직감으로 추측을 한 것일 뿐이었다.
  • 다행히 그때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두 사람 대치 상황을 깨트렸다.
  • 따르릉-
  • 윤희진은 화풀이라도 하듯 들고 있던 책들을 정리하고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송다은을 노려본 뒤 씩씩거리며 교실을 나갔다.
  • 교실 안에 남아있던 모두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난리가 났다.
  • “와! 감히 마귀할멈의 말에 반박하다니! 용감한걸!”
  • “저 마귀할멈은 평소에 성적이 낮은 애들을 괴롭히는 걸 가장 좋아해. 때리고 욕하고, 인신공격까지 한다고.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야.”
  • “맞아 맞아. 오늘 드디어 그 마귀할멈한테 한 방 먹였네.”
  • 주위 학생들은 존경스럽다는 듯 송다은의 책상 앞으로 몰려들어 조금 전 그녀의 행동에 대해 칭찬해 댔다.
  • 그들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송다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입꼬리를 말아 올려 미소 지었다.
  • “있는 그대로 말한 건데 뭐.”
  • 좋은 선생이라면 당연히 존경받아 마땅하겠지만 그런 선생 자격도 없는 사람은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도, 학생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도 없었다.
  • 그러던 그때, 송다은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안경을 쓴 남학생 한 명이 돌아앉더니 갑자기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 “다은아, 아까 마귀할멈의 표정을 보니까 아마 네가 정답을 말한 것 같던데, 우리한테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 이에 송다은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이지.”
  • 그녀는 종이와 펜을 꺼내 그들에게 그 문제의 풀이 방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 그렇게 3분이 지난 뒤, 주위의 학생들은 동시에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심지어는 과장된 몸짓으로 송다은의 손을 잡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 “다은아, 너 진짜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한다. 난 마귀할멈이 설명해 주는 건 매번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이해가 됐었는데, 네가 설명해 준 건 단번에 알겠어!”
  • “맞아. 네가 살짝 힌트를 주니까 다 알 것 같은 느낌이야.”
  • 그들의 농담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송다은의 미간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얼굴 위의 표정 역시 한결 부드러워졌다.
  • “만약 너희들이 싫지 않다면, 앞으로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도 돼.”
  • 그녀는 이전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시험을 쳐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우정 같은 것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연예계에서 우정이라는 것은 모두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허울일 뿐이었고, 돌아서면 상대가 내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 지금 이렇듯 그 어떤 이해관계도 얽혀 있지 않음에도 단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신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시끌벅적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쪽의 상황과는 달리, 다른 한쪽에서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 송시훈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들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던졌다. 펜 끝이 숫자들이 가득 적혀 있는 종이 위를 스치며 까만 선을 남겼다.
  • 종이 위에는 많은 숫자들과 공식들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해답에서 그는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했던 듯한 흔적이 보였다. 그 흔적을 남긴 주인이 얼마나 짜증이 나있는지 또한 보였다.
  • ‘쟤는 어떻게 푼 거지? 왜 난 아무리 계산해도 틀린 답이 나오는 거야? 이 문제는 거의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이라 만만치 않은 난이도인데, 쟤는 그저 한 번 훑어보고 마지막 해답을 알아냈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 윤희진은 어쩌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앉아 있는 위치에서는 송다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그리고 그녀의 휴대폰은 아예 켜져 있지도 않았고, 꺼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답을 검색해 봤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 ‘그건 그렇다 치고라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문제를 풀라며 쟤를 일으켜 세웠을 때 쟤는 국어책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빙그레 웃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지 미움과 분노로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 ‘웃는 것도 엄청 못생겼네! 날 대할 때는 잔뜩 찡그린 얼굴이더니, 이제 막 알게 된 애들을 대할 때는 방긋방긋 웃고 있네. 흥!’
  • 그러던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교실 뒷문을 박차고 열어젖히더니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의 소년이 교복 재킷을 손에 든 채 굳은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던 그는 자신의 자리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긴 다리를 휘적이며 송시훈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송시훈의 손에 들린 수학 시험지를 한번 훑어보더니 다짜고짜 말을 내뱉었다.
  • “답은 BDADB 야. 이 시험지 난 한번 보기만 하면 답이 나온다고. 멍청한 애들이나 하루 종일 붙잡고 있지!”
  • 그 말을 마친 그는 마치 엄청 대단한 일이라도 해냈다는 듯 싸움에서 승리한 수탉처럼 기고만장하게 고개를 추켜들었다.
  • 애초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송시훈은 현재 그가 그렇듯 도발을 해오자 바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
  • “오? 그래? 멍청한 내가 전교 1등이면, 고작 2등밖에 못 한 사람은 뭔데? 쓰레긴가?”
  • “너…!!!”
  • 민정우는 분노에 이를 갈며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 “너 이 자식, 너무 일찍 기뻐하지는 마. 1등은 언젠가 내 것이 될 테니까!”
  • 이에 송시훈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짙은 조롱이 담긴 웃음이었다.
  • “허허.”
  • 이 같은 상황은 이 반에서는 거의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일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 민정우가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그와 친한 몇몇 아이들이 급히 달려들어 그들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설득했다.
  • “정우야, 침착해! 지금 같은 때에 싸우면 징계를 받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