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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당신이 남자야?

  • 문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TV나 보고 있어.”
  • 밖으로 나간 문서연은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매하고 마트로 향했다.
  • 그녀는 배수지가 요구한 물건들을 구매하다가 자신도 생리가 두 달이나 늦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 3년 전 사고로 유산한 뒤로 생리 주기가 줄곧 불안정했기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며칠 있으면 올 것 같은데.’
  • 혹시나 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문서연은 생리대를 몇 봉지 더 구입했다.
  • 결제를 마친 뒤, 밖으로 나가려는데 입구에서 어떤 여자가 들어오면서 그녀와 어깨를 부딪쳤다. 정작 부딪친 건 그쪽인데 여자는 옷을 툭툭 털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 문서연은 고개를 들고 차갑게 대꾸했다.
  • “넌 아직도 걸음마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니?”
  • 주예은은 문서연의 얼굴을 확인하자 더 기세등등해져서 말했다.
  • “아, 난 또 누구라고. 늦은 시간에 여기서 뭐 해? 오빠가 집에 없다고 남자랑 비밀 데이트 나온 건 아니지?”
  • 문서연은 그녀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 “주예은, 해외로 도망갔으면 계속 거기서 살 것이지. 너는 모르지? 나 악녀라서 원한은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이야.”
  • 그 말을 들은 주예은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뒤로 뒷걸음질 쳤다.
  • “지금… 뭐 하자는 거야?”
  • 문서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 “지금 뭘 할 생각은 없고 앞으로 평생 아이 갖지 마. 혹시라도 임신했다가는 매일 나 경계하느라 노심초사해야 할 테니까. 혹시 알아? 내가 언제 너 찾아가서 복수할지? 나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인 거 알지…?”
  • 말을 마친 문서연은 주예은을 힐끗 훑어보았다.
  • 주예은은 임신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문서연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많이 당황한 듯 다급히 말했다.
  • “이거 미친년 아니야? 내가 그때 네가 임신했는지 어떻게 알아? 내가 좀 부딪쳤다고 나한테 덮어씌우지 마. 그리고 내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봐! 주씨 가문에서 널 가만두지 않을걸? 우리 오빠도 너랑 이혼하고 넌 우리 가문에서 쫓겨나게 될 거야.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 “그럼 해봐. 어차피 난 손해 볼 거 없으니까.”
  • “미친년!”
  • 주예은은 욕설을 퍼부으며 다급히 걸음을 돌렸다.
  • 마트에서 나온 주예은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길가에 세운 레인지로버에 올라탔다.
  •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담담하게 물었다.
  • “생수 사 온다고 하지 않았어?”
  • 주예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불평을 터뜨렸다.
  • “명준 오빠, 예전에 내가 했던 얘기 기억하죠? 가짜 임신으로 우리 오빠 협박해서 결혼한 여자 있잖아요. 마트에서 그 여자를 만난 거예요. 정말 역겨워 죽겠어요.”
  • 계명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 “생수 안 살 거면 이제 가자.”
  • “오빠….”
  • 주예은은 그제야 계명준의 시선이 창밖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려는데 계명준이 갑자기 차에서 내리더니 그쪽으로 달려갔다.
  • 그 모습을 본 주예은도 다급히 따라갔다. 계명준은 사람들 틈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 “명준 오빠, 왜 그래요? 누구 찾아요?”
  • 계명준은 천천히 숨을 고르더니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 잘못 봤나 봐.”
  • 조금 전 보았던 그 뒷모습은 그가 꿈에서도 그리던 사람과 많이 흡사했다.
  • 주예은이 말했다.
  • “그럼 이제 가요.”
  • 계명준은 그녀의 손을 살짝 밀치며 말했다.
  • “예은아, 내가 차 불러줄 테니까 먼저 가. 나는 다른 볼일이 생겼어.”
  • “하지만 저랑 약속했잖아요….”
  • 계명준은 그녀가 서운해하건 말건 바로 휴대폰을 꺼내 차를 불렀다.
  • “차량번호 문자로 보냈어. 나 먼저 갈게.”
  • 말을 마친 그는 주예은의 부름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
  • 한편, 집으로 돌아온 문서연은 구매한 식자재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아직도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배수지에게 따뜻한 밀크티 한잔을 건넸다.
  • 찻잔을 받은 배수지가 갑자기 잔뜩 흥분한 듯, 말했다.
  • “조금 전 누구한테서 연락받았는지 알아?”
  • “누군데? 좋아하는 연예인?”
  • “아니. 나 진지하다고.”
  • 배수지는 핸드폰을 문서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 [나야, 계명준. 서연이 소식 아는 거 있어?]
  • 문서연은 문자를 보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 잠시 후, 배수지가 말했다.
  • “계명준 귀국하고 사방으로 너를 찾고 있나 봐. 누가 내 연락처를 걔한테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나랑 같이 산다고 얘기할까? 아니면 바로 네 연락처 걔한테 줄까?”
  • 문서연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 “아니야. 아직 그러지 마….”
  • 배수지도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기에 한숨을 쉬며 계명준에게 답장을 보냈다. 자신도 문서연이랑 연락 안 된지 꽤 됐다고, 무슨 소식 있으면 연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계명준에게서 고맙다는 짧은 답장이 온 뒤로 더는 문자가 없었다.
  • 그날 밤, 문서연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잡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그녀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벨 소리에 그녀는 다시 잠에서 깼다.
  •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모님, 회사에 좀 문제가 생겼는데 직접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잠결에 전화를 받은 문서연은 전화를 끊은 뒤에야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 ‘회사? 사모님?’
  • 문서연은 발신자를 확인해서야 상대가 주지훈의 비서 임서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 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움켜쥐며 욕실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마친 문서연은 바로 택시에 올랐다.
  • 그녀가 주씨 그룹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열두 시 정각이었다. 점심식사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로비에 몰리는 때였다.
  • 그리고 오늘따라 로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나 당신들 대표의 장인이라고. 당장 해고시켜 버릴까? 지금 당장 주지훈한테 가서 전해. 이혼하려면 최소한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줘야 한다고. 내 딸이 그놈이랑 3년을 같이 살았는데 이혼한다고 한 푼도 안 주는 게 말이 돼? 그러고도 남자야?”
  • 마침 도착한 문서연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 그녀가 발길을 돌리려는데 언제 온 건지, 임서준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작게 말했다.
  • “사모님, 아버님께서 여기서 소란을 부리신지 30분이 넘었어요.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커요. 대표님께서는 3분 안에 이 일을 해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안 그러면 경찰 불러서 법대로 처리하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