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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달갑지 않은 만남

  • 문서연이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은 그녀의 절친 배수지는 펄쩍 뛰며 한참이나 주지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 “그 나쁜 놈이 정말 너한테 한 푼도 주지 않았어? 밖에서 모델들이랑 바람피울 때는 그렇게 씀씀이가 헤프더니 와이프인 너한테는 왜 그렇게 쪼잔하대?”
  • “쪼잔한 건 아니지. 3년 동안 그 사람한테서 받은 돈도 많으니까. 나한테 그거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는 감사해.”
  •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너희는 부부잖아. 그 사람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은 여전히 네 돈이야! 게다가 매일 공짜로 너랑 자잖아. 돈 좀 쓰는 게 뭐가 어때서!”
  • 문서연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말했다.
  • “좀 다른 표현을 쓰면 안 돼?”
  • 배수지는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과했다.
  •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어.”
  • 문서연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 “내가 오늘 이혼하자고 하니까 그 나쁜 자식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또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더라? 이혼협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마치 내가 거액을 요구할까 봐 긴장한 사람처럼 말이야! 꼭 그럴 것까지는 없잖아?”
  •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갑자기 왜 이혼을 결심한 거야? 그냥 그 집에 버티고 있어도 되지 않아? 어차피 급한 건 그쪽일 텐데?”
  • 그 말을 들은 문서연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 “서시윤이 임신했대.”
  • 서시윤은 최근 뜨기 시작한 모델이었다. 주지훈과 무척 가깝게 지냈는데 눈치 빠른 사람은 그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다.
  • 문서연은 주지훈과 3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가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달에 겨우 두 번 정도 집에 돌아오는 것도 그로서는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매번 사랑을 나눌 때도 주지훈은 업무 보듯이 딱딱했고 그녀를 향한 애틋한 감정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그는 매번 그녀를 거칠게 다루었다.
  • 주지훈의 주변에 나타난 여자가 서시윤이 처음은 아니었고 처음에 문서연은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 그런데 일주일 전, 그녀가 기대에 찬 심정으로 결혼 3주년 선물을 고르고 있을 때, 서시윤이 임신 진단서를 들고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서시윤은 기고만장한 말투로 통보하듯 말했다.
  • “나 임신했어. 당신 이제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거야.”
  • 임신진단서를 확인한 문서연은 3년의 인내와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그가 자신을 봐줄 거라 스스로 위로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 그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 ‘문서연, 이 여자가 뻔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도 같은 수법으로 주지훈을 협박해서 결혼한 거잖아! 너도 똑같은 사람이야. 그래서 주지훈이 널 혐오하는 거야.’
  • 마치 현실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서시윤은 그녀와 똑같은 수법을 쓴 것에 불과했다.
  • 배수지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 “어떻게 똑같을 수 있어? 그때 주지훈은 솔로였잖아. 하지만 서시윤은 네 존재를 알면서 남의 남자를 가로채려고 했어. 뻔뻔한 불륜녀일 뿐이라고!”
  • “이제 상관없어. 별 차이도 없으니까.”
  • 문서연이 말했다.
  • “사실 주지훈과 결혼하고 3년 동안 매일 밤 제대로 잠에 들 수 없었어. 어쨌든 그도 처음에 어쩔 수 없이 나랑 결혼한 거니까 이혼하는 게 맞아. 이렇게 되면 그 사람한테 빚진 게 없으니까.”
  • 배수지는 또 주지훈과 서시윤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한바탕 욕설을 내뱉은 뒤, 그녀는 그제야 끄덕끄덕 졸고 있는 문서연을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 “앞으로 우리 집에서 살아. 어차피 남자친구도 여기 없고 집은 커서 혼자 살기에 좀 무서웠거든.”
  • 문서연은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잘 자.”
  • 다음 날 오후, 주지훈의 사무실에 이혼서류가 배달되었다. 사인란에 버젓이 있는 문서연의 사인은 마치 그에게 시위하는 것 같았다.
  • 임서준은 점점 더 음침하게 굳는 상사의 표정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
  • “대표님, 선오동 별장에 연락해 봤는데 사모님은 어젯밤에 이미 짐을 싸서 나가셨답니다. 사모님이 별장에 들어올 때 가지고 온 것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가져가시지 않으셨대요.”
  • 주지훈은 이혼서류를 한쪽에 던져두고 담담하게 물었다.
  • “한 푼도 없이 맨몸으로 이 집을 나가겠다라… 이 여자가 또 무슨 꿍꿍이인 걸까?”
  • 임서준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내 마누라도 아닌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안다고….’
  • 주지훈도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 “이제 나가봐.”
  • 임서준은 걸음을 돌리다가 다시 멈추고 입을 열었다.
  • “대표님, 파리에 주문 제작한 목걸이가 도착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 그것은 주지훈이 문서연을 위해 준비한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쓸모가 없어졌다.
  • “버려.”
  • 남자의 차가운 음성이 사무실에 울렸다.
  • 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알겠습니다.”
  • 임서준이 나간 뒤, 주지훈은 이혼서류를 다시 집어 들고는 사인란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그의 표정이 시리게 차가웠다.
  • MS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날, 자존심을 버리고 그의 옷깃을 잡고 애원하던 여자였다. 그리고 그 뒤에 임신했다면서 책임지라고 협박하던 여자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던 여자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낀 걸까?
  • ‘그냥 또 다른 목적이 생겨서겠지.’
  • 주지훈은 서류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 문서연은 며칠이나 기다려도 주지훈에게서 연락이 없자 갑갑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에게 보낸 문자도 답장이 없었다.
  • [이혼서류는 받았죠? 저 사인했어요. 시간 괜찮을 때 연락주세요. 같이 법원에 가서 서류 제출하면 끝나는 거죠?]
  • 첫날은 부드럽고 대범한 말투였다.
  • [저기요? 문자 봤어요? 이혼서류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나요?]
  • 둘째 날은 조심스러웠다.
  • [주 대표님? 많이 바쁘신 건 알지만 그래도 시간 내서 이혼 절차 좀 밟아주실래요?]
  • 셋째 날은 살짝 짜증이 난 말투였다.
  • [주지훈 씨, 이혼하자는데 뭐가 그렇게 고민이 많아요? 당신도 나 싫어하잖아요? 이혼 도장만 찍으면 이제 끝이라고요. 우리 앞으로 영원히 다시 보지 말아요!]
  • 넷째 날은 참다못해 화가 폭발했다.
  • 그리고 다섯째 날은….
  • [상대가 수신을 거부하셨습니다.]
  • ‘하! 나쁜 자식.’
  • 문서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MS 클럽으로 향했다.
  •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이곳에서 주지훈이 아닌 미래의 그의 아내가 될 사람과 마주쳤다.
  • 친구들이랑 밥 먹으러 이곳에 온 서시윤은 문서연을 보자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 “어머, 아직도 포기 못하고 여기까지 지훈 씨 쫓아온 거야?”
  • 문서연은 담담하게 그녀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 서시윤은 그녀가 말이 없자 더 기세등등해졌다.
  • “당신 참 뻔뻔하다. 내가 임신했다고 했잖아. 왜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내려오지 않는 거야? 그렇게 질척거리는 거 얼마나 꼴 보기 싫은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