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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내가 싫은 남자

  • 처음부터 문서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주지훈의 가족들은 가짜 임신 사실이 알려진 뒤, 더욱 그녀를 혐오하게 되었다.
  • 주씨 가문 모두가 그녀에게 차갑게 대했다.
  • 서시윤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했다.
  • ‘어쩐지 오늘 태도가 평소 같지 않더라니… 내가 아픈 곳을 건드렸네.’
  • 문서연은 그 뒤로 또 며칠을 기다렸지만 주지훈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
  • 그날 MS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주지훈 쪽에서 오히려 이혼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의심해 볼 수 있었다.
  • ‘이런 방법으로 날 괴롭히고 나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거겠지. 과거 내가 자기한테 했던 일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 주지훈은 계속 이혼을 뒤로 미루고 있었지만 문서연은 이대로 그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에 이혼부터 마무리하고 앞으로 뭘 할지 천천히 고민할 생각이었다.
  • 하지만 생활은 해야 했기에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 배수지는 취직해야겠다는 그녀의 말에 먹던 과자를 내려놓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우리 잡지사에 와. 요즘 우리 잡지사에서 디자이너랑 계약하고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려고 논의 중이거든.”
  • 그 말을 들은 문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 없게 말했다.
  • “내가… 할 수 있을까? 나 작품 안 그린지 3년이 넘었어.”
  • “넌 할 수 있어. 한번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 뭐 손해 보는 일도 아니고.”
  • 문서연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알았어.”
  • 배수지는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성격이었다. 다음 날, 그녀는 문서연이 3년 전에 작업했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편집장 사무실을 찾았다.
  • 작품들을 훑어보던 임석훈은 작가 사인을 보고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물었다.
  • “디자이너 Ruan이 수지 씨 친구였어요?”
  • “네. 정말 재능 있는 디자이너였어요. 작품 센스도 뛰어나고요. 얘랑 계약하면 편집장님이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 임석훈은 Ruan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때 주얼리 디자인 업계에 피어난 꽃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녀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고 들었다.
  • 누군가는 그녀가 상을 타고 난 뒤에 영감이 고갈되어 새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 또 누군가는 그녀가 재벌의 눈에 들어 재벌가에 시집을 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 어쨌든 디자이너 Ruan을 둘러싼 소문은 무성했다.
  • 하지만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3년이 지나고 모두가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다시 돌아올 줄이야.
  • 임석훈이 말했다.
  • “오늘 밤 시간 돼요? 셋이 같이 밥이나 먹죠.”
  • 그가 식사 약속을 제안한다는 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기에 배수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요. 지금 당장 연락할게요.”
  • 그날 저녁, 문서연은 배수지의 편집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그녀가 3년 동안 작품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임석훈은 상관없다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일주일 안에 지정한 컨셉의 초안을 그려오라고 말했다.
  • 그녀가 그린 초안이 대표의 동의까지 거치면 바로 계약할 수 있다고 했다.
  • 저녁 식사가 끝나자 임석훈이 말했다.
  • “이 근처는 택시 잡기가 어려워요. 여자 두 분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모셔다드릴게요.”
  • “좋아요. 저는 먼저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 말을 마친 배수지는 문서연을 보며 물었다.
  • “서연이 너는?”
  • “같이 가자.”
  • 배수지가 말했다.
  •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금방 돌아올게요.”
  • 임석훈이 웃으며 답했다.
  • “괜찮으니까 어서 다녀오세요.”
  • 화장실에 들어온 배수지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 “이제 됐어! 무조건 통과야!”
  •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문서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 “내가 디자인한 초안을 대표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너랑 임 편집장님한테 미안해지는데….”
  • 배수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우리 대표님은 인심 좋으신 분이셔. 거의 업무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보면 돼. 잡지사 업무는 거의 임 편집장님이 책임지고 관리해. 그러니까 임 편집장만 OK 하면 게임 끝이야. 오늘 보니까 너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더라. 잘될 거야.”
  • 배수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화장실 입구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 그리고 들어온 사람은 서시윤이었다.
  • 이런 곳에서 또 만날 줄 예상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잠시 멈칫하다가 서시윤이 먼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 “정말 찰거머리처럼 끈질긴 여자네. 어떻게 가는 곳마다 따라와?”
  • 문서연은 휴지로 손을 닦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 “또 맞고 싶으면 얘기해. 돌려서 말하지 말고.”
  • “너….”
  • 서시윤은 저번에 문서연에게 한 방 제대로 당했고 게다가 이번에는 상대가 두 사람이라 승산이 없었다.
  • 배수지가 말했다.
  • “예의 없이 너가 뭐야? 지금이라도 밖에 있는 손님들한테 여기 불륜녀가 있다고 소리 지를까?”
  • 서시윤이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 “문서연, 넌 정말 뻔뻔한 여자야. 애초에 당신이 어떻게 주씨 가문에 시집갔는지 기억 안 나? 네가 지금 나한테 불륜녀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너랑 나랑 별 차이 없잖아. 넌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 배수지가 반박하려는데 문서연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 문서연은 침착하고 평온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 “주지훈 씨가 얘기해 준 거야?”
  • 속을 감출 줄 모르고 멍청한 서시윤이 예전부터 이 사실을 알았다면 진작 문서연에게 따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이 일을 꼬집는 것을 보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한다.
  • “그래. 지훈 씨는 네가 역겹대. 평생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너랑 MS클럽에서 엮인 거래. 넌 더럽고 냄새 나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 거머리 같대. 너랑 닿았던 피부 곳곳을 전부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네가 싫대.”
  • 말을 마친 서시윤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문서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겁이 났던 그녀는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문서연은 말없이 휴지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을 나갔다.
  • 그 모습을 본 배수지는 다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서연아, 저 여자가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둘 다 쓰레기들이야. 끼리끼리 만난 거야. 똥 밟았다고 생각해….”
  • 배수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와 담화를 나누는 남자주인공이 보였다.
  • 문서연은 그를 보고도 못 본 것처럼 걸음을 재촉했다.
  • 강시현은 등 뒤에서 가까워지는 살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여자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저기 네 와이프 아니야?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 고개를 든 주지훈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의 눈빛에 살짝 짜증이 스쳤다.
  • ‘정말 단순히 이혼을 위해서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인가? 정말 보면 볼수록 무서운 여자야.’
  • 주지훈이 차갑게 입을 열려는데 문서연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 뒤따라오던 배수지는 주지훈의 앞에 걸음을 멈추고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지금은 시기가 안 좋은 것 같아 다시 문서연을 뒤따라갔다.
  •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 주지훈은 자신의 아내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것을 이 바닥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