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늘 좋은 소식 있어. 첫사랑 시리즈의 목걸이와 반지 완제품이 내부 인사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고 있어. 많은 여자 직원들이 발매 시작하면 가장 먼저 구매하겠다고 예약까지 한 상황이야. 나중에 출시되면 분명 잘 팔릴 거야. 이제 남은 건 팔찌인데… 일주일 뒤에 발표회인데 그전까지 완성할 수 있겠어?”
“그럼. 3일이면 충분해.”
배수지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지금 임신 중인데 완제품까지 제작할 수 있겠어? 제작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화학 물질을 만지게 되는데 그냥 공장에 의뢰하자.”
“괜찮아. 마스크랑 장갑 착용하면 돼.”
“그럼 꼭 조심해. 힘들면 나한테 얘기하고.”
문서연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문제없어.”
욕실에서 나온 문서연은 한참 고민하다가 주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뒤에야 수화기 너머로 서시윤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대표님 지금 나랑 있어. 방해하지 말고 전화 끊어.”
“그래, 알았어.”
문서연은 주저 없이 전화를 끊었다.
한편, 화장실에서 나온 주지훈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있는 서시윤을 보자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물었다.
“전화 왔었어?”
서시윤은 눈을 깜빡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니요….”
주지훈이 핸드폰 통화목록을 확인하니 1분전 문서연과 통화한 내역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서시윤을 쏘아보았고 서시윤은 용기 내서 말했다.
“대표님, 문서연이 전화 와서 대표님 어디 계시냐고 묻길래 대표님은 너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끊었어요. 그 외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주지훈은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 멍청한 여자의 뻔한 수작에 같이 장단 맞춰줄 생각도 없었다.
이때, 협력사 대표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주 대표님, 아직 안 가셨네요. 잘됐네요. 제가 MS클럽에 VIP룸을 하나 예약했는데 대표님도 같이 가시죠.”
주지훈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서시윤 씨니까 저는 빠지겠습니다. 재밌게 놀다가 가세요.”
서시윤이 다급히 그를 만류했다.
“대표님….”
주지훈은 협력사 대표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
업소를 나온 주지훈은 바로 차에 올랐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대표님, 오피스텔로 모실까요? 아니면 선오동으로 모실까요?”
주지훈은 휴대폰을 힐끗 보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선오동으로 가지.”
“네, 알겠습니다.”
대략 30분 뒤, 주지훈이 차에서 내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문서연이었다.
그가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주지훈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말해.”
한참 뒤에야 여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쁜 일은… 끝났어요?”
사실 문서연도 그에게 전화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해명하지 않으면 주지훈은 그녀가 일부러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혼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 전화로 그의 즐거운 순간을 방해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문서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죄송했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갔어요. 고의는 아니에요.”
주지훈이 차갑게 대꾸했다.
“문서연, 나 당신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
“미안해요. 정말 급한 일이라서 그랬어요. 내일은 시간 괜찮아요? 당신 편한 시간으로 정해요. 아침에 나오라고 하면 그렇게 할게요.”
“난 당신처럼 한가하지 않아. 내일 벨기에로 출장 가.”
그 말을 들은 문서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그럼 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
‘너무 바쁜 사람이라 이혼도 미리 예약을 해야 하다니.’
한참 뜸을 들이던 주지훈이 입을 열었다.
“초콜릿 먹고 싶어?”
문서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주지훈은 짜증스럽게 다시 한번 물었다.
“나 벨기에 출장 가는데 초콜릿 필요하냐고?”
문서연은 그제야 그가 저번 출장 때 협력사에서 선물했다면서 초콜릿을 가득 가지고 들어온 날이 떠올랐다.
그는 단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간식을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문서연은 단것을 무척 좋아했다.
주지훈은 어차피 버릴 거 그녀에게 주었다.
한참 뒤에야 문서연이 말했다.
“아, 괜찮아요. 신경 써줘서 고맙네요.”
주지훈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문서연이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주지훈이었다.
“숙취해소제 어디 있어?”
“주방으로 가시면 세 번째 서랍에 있어요. 하지만 그거 한번 데워서 드셔야 하는데… 혹시 당신 귀찮으시면….”
수화기 너머로 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녀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문서연이 말했다.
“고용인한테 데워달라고 하세요.”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지훈은 전화를 끊었다.
문서연은 입을 삐죽이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어쩐지 오늘 평소보다 태도가 부드럽다 했어. 술 마셨었구나.’
주지훈은 매번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가끔 문서연은 그가 얄밉게 행동할 때면 술을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물론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주지훈은 고용인을 부르는 대신,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방으로 올라갔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가려던 그는 옷방 한쪽에 꽉 찬 여자옷들을 바라보았다.
문서연이 집을 나간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오후, 그는 법원 앞에서 임서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자가 이혼을 고집하는 이유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면 또 뭐가 있을까?”
최근 들어 그는 짜증이 심해졌다. 문서연은 돈도 필요 없고 이혼만 해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핑계를 그는 믿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본사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것만 봐도 그랬다.
하지만 문서연은 이번에 단단히 작정한 것 같았다. 오늘이 그에게서 돈을 요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더욱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