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려고 하던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보고 숨이 멎을 듯 놀랐다. 꽃무늬 침대보 위에 커다란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하린은 오른쪽 귀를 만져보았다. 축축하고 끈적거렸다.
손바닥을 펼쳐보니, 온통 피투성이였다…
심지어 보청기까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고, 황급히 휴지로 귀를 닦았다. 곧바로 침대보를 걷어내며 급하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윤영숙은 하린이 내려오는 모습은 보지 못하고, 그녀가 침대보를 세탁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니?”
“생리 중이라, 실수로 침대에 묻었어요.”
하린은 웃으며 설명했다.
세탁을 마친 후, 하린은 윤영숙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잠시나마 평온한 시간을 즐겼다.
윤영숙의 목소리는 때로는 또렷하게 들렸고, 때로는 희미하게 울렸다.
하린은 두려웠다.
‘혹시 앞으로 이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또한, 윤영숙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 아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곳에서 반나절을 보낸 뒤, 하린은 모아둔 돈 일부를 몰래 침대 머리맡에 두고, 윤영숙과 작별을 고했다.
떠날 때.
윤영숙은 하린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하린이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윤영숙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 윤영숙은 하린의 앙상한 모습을 떠올리며 참지 못하고 이씨 그룹의 내선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대표 사무실의 비서는 그녀가 하린의 보모라는 것을 듣고, 이로한에게 보고했다.
오늘은 하린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로한이 하린과 관련된 전화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로한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기분이 유난히 좋았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하린은 사흘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올 것 같았다.
그때, 윤영숙의 나이 든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 대표님, 저는 어릴 때부터 하린을 돌봐온 보모입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린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 아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강하지 않아요. 하린이는 태어나자마자 난청이 있다는 이유로 하 사모님께 버림받아, 제가 돌보게 됐어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야 하 씨 가문으로 돌아갔지만… 하 회장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린이를 하인처럼 대했죠. 하린이는 수없이 몰래 저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말했어요. ‘아주머니, 저 하 씨 가문의 아가씨가 되고 싶지 않아요. 돌아가서 아주머니의 딸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표님과 하 회장님은 하린이가 도주에서 가장 소중히 여긴 사람이에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 아이를 잘 대해주세요. 하린이는 어릴 때부터 너무 비참한 삶을 살아왔어요.”
이로한은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윤영숙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갑자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뭐지? 어제는 돈으로 나를 모욕하더니, 이제 와서 동정이라도 사려는 건가?”
이로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린이 어떻게 살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모든 건 다 그 여자가 자초한 일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전화를 거칠게 끊어버렸다.
윤영숙은 늘 하린에게서 이로한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듣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며, 하린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
하린은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며 문자가 왔다. 화면을 열어보니 이로한에게서 온 것이었다.
“이혼하겠다며? 내일 오전 10시에 보자.”
하린은 그 문자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잠시 후,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응.”
그저 ‘응’이라는 한 글자였다.
그 답장은 이로한의 눈에 몹시 거슬렸다.
“좋아, 네가 얼마나 더 잘 버티나 보자.”
이로한은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을 불러 술을 마시러 나갔다.
클럽에 도착하자 원은별도 이미 와 있었다.
“오늘 취할 때까지 마시는 거다.”
친구 심진택은 이로한 옆에 앉아 하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귀머거리 오늘은 어때?”
이로한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앞으로 그 얘기는 꺼내지 마. 내일 당장 이혼 절차를 밟을 거니까.”
원은별은 그 말을 듣고 이로한에게 술을 한 잔 따랐다.
“로한, 너의 새 출발을 축하해.”
다른 사람들도 따라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오늘 임페리얼 프리미엄 클럽은 무척이나 시끌벅적했다. 모든 술은 심진택이 전부 예약한 상태였다. 그는 밖에서 원은별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로한 형이 여전히 널 좋아하는 게 느껴져. 꼭 행복해야 해.”
원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택,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나랑 그 사람은 아마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거야.”
이건 사실이었다.
처음 원은별이 이로한을 알게 된 건 하 씨 가문의 후원을 받으면서였다. 하 씨 가문에 감사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그 자리에 이로한도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병원에서, 이로한의 어머니 고윤아와 심진택이 같은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하린은 운이 좋았다. 마침 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되어 심진택과 고윤아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은별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하린 대신 그 공을 가로챌 방법을 찾아냈다.
이것이 바로 심진택이 원은별에게 그렇게 잘해줬던 이유였다. 처음에는 생명의 은인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은 점차 우정, 심지어는 사랑으로 변해갔다.
또한 이로한이 수많은 여자를 제쳐두고 원은별을 여자친구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 일에 대해 원은별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하린조차도 몰랐다.
하린은 줄곧 이로한이 원은별을 선택한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심진택이 원은별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녀의 처세술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심진택이 원은별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가 생명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나한테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있어? 우리 친구 아니야?”
심진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눈빛 속에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원은별은 그의 감정을 모르는 척했다.
오늘, 이로한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
원은별은 그를 집에 데려다주려 했다.
‘집…’
이로한은 밤이면 호텔에서 머물거나, 회사에서 자거나, 혹은 그의 개인 별장에서 지내곤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린이 비스타 하우스가 바로 그들의 진짜 집이라고 말했던 것을.
“아니야, 불편할 거야.”
내일이면 이혼할 것이다.
하린은, 아마도 돌아올 것이다.
거절당하자, 원은별은 조금 속이 상했다.
“왜? 너희 어차피 이혼할 거잖아. 뭐가 그렇게 불편해?”
“혹시 그 여자가 우리 관계를 알까 봐 무서운 거야?”
우리 관계?
이로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네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야.”
차에 올라타면서도 그는 배려심을 잃지 않고, 원은별을 집으로 돌려보낼 차를 준비해 두었다.
돌아가는 길 내내,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하린에게서 메시지가 왔는지 확인했지만, 끝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집 앞에 도착해, 칠흑 같은 비스타 하우스를 바라보았다.
이로한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지만, 하린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은 그녀가 떠나기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로한이 세탁기 옆에 놓아둔 옷은 여전히 가지런히 그 자리에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깨끗이 세탁된 채 걸려있지 않았다.
그는 짜증을 내며 다가가, 옷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술기운이 점점 밀려와, 이로한은 소파에 앉아 불편한 상태로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잠이 들자마자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하린은 온몸이 피범벅이었지만, 여전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로한, 나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이로한은 깜짝 놀라 깨어났을 때, 창밖으로는 희미한 새벽빛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마를 눌러가며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씻고 나서, 몸에 딱 맞는 정장을 걸친 그는 시간을 맞춰 구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