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역시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 다른 하나의 유언장은 임영숙에게 남긴 것이었다.
- 연시온은 그것을 열어본 후, 마지막 줄에 적힌 임영숙에게 남긴 주소를 발견했다.
- 연시온은 곧바로 뛰쳐나갔다.
- 여기서 서쪽 교외까지는 멀지 않았다. 차로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 하지만 연시온에게는 그 길이 끝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 ‘내 눈에 그토록 빛나고 찬란하게 보였던 사람이, 어째서 이런 길을 선택했을까?’
- 같은 시각, 서쪽 교외로 향하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최은영이었다.
- 다만 최은영이 향하는 목적은 600억을 위해, 하린을 데려가 결혼시키려는 것이었다.
- 서쪽 교외의 묘지.
- 거센 비가 퍼부었다.
- 하린은 비석 앞에 쓰러져 있었고, 폭우가 그녀의 몸을 무자비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녀의 원피스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고, 앙상하게 마른 몸은 금방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 연시온은 빗속에서 하린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 “하린!!”
- 공기 중에는 오직 바람과 빗소리만 가득했다. 연시온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하린을 안으려던 그 순간, 그녀 옆에 놓인 빈 약병을 발견했다.
- 연시온은 떨리는 손으로 하린을 힘껏 끌어안았다.
- ‘왜 이렇게 가벼운 거야?!’
- “하린, 제발 정신 좀 차려!!”
- “제발… 잠들지 마!”
- 그는 간절하게 외치며 하린을 안고 산 아래로 미친 듯이 뛰어내려갔다.
- …
- “사모님, 도착했습니다.”
- 운전사가 말했다.
- 최은영은 창밖을 내다보며 낯선 남자가 하린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 “하린, 네가 감히!”
-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 오늘 최은영은 붉은색의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빗물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적셨다.
- 최은영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하린에게 다가가 추궁하려 했다.
- 막 화를 내려고 하던 찰나, 하린이 연시온의 품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은 꼭 감고 있었다.
- 최은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 “하린…”
- 최은영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 위해 입을 떼려다, 바람에 날려온 약병에 시선이 멈췄다.
- 그녀는 빠르게 다가가 약병을 주워 들었다. 약병에는 큼지막하게 “수면제”라고 적혀 있었다.
- 바로 그 순간, 최은영은 며칠 전 하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제가 목숨을 돌려드리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제 어머니가 아니겠죠? 저는 더 이상 생명의 은혜를 갚을 필요도 없을 거고요.”
- 최은영이 들고 있던 우산이 땅에 떨어졌다.
- 그녀는 손에 든 약병을 더욱 세게 움켜쥐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린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맺힌 물방울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 “이 망할 것! 네가 어떻게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 “네 목숨은 내가 준 거라고!”
- 최은영의 붉은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 하민은 차 안에서 어머니가 비를 맞으며 묘지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 급히 내려와 상황을 확인한 그는,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린 누나가 정말로…
- 마침내 정신을 차린 후, 하민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 “엄마, 어떡하지? 임 대표의 돈은, 이미 새 회사 차리는 데 다 써버렸는데…”
- 그 말을 듣자, 연시온은 마침내 왜 그토록 밝고 강했던 하린이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깨달았다.
- 최은영은 손바닥을 꽉 쥐고, 눈빛이 점점 더 사납게 변했다.
- 그녀는 하린을 향해 독하게 말했다.
- “역시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 너희 아빠가 고집 피워서 내가 너를 낳은 거야!”
- “이제야 알겠네. 너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우리가 편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구나?!”
- 최은영은 악에 받쳐 고함을 질렀다.
- “왜 시집간 뒤에 죽지 않았어? 도대체 왜?!”
- 연시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눈가가 벌겋게 물든 채, 그는 최은영과 하민을 노려보았다.
- “꺼져!”
-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 최은영과 하민은 그제야 이로한 못지않은 품격을 가진 남자가 눈앞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 “넌 뭐야?”
- 하민이 다가서며 말했다.
- “하린은 우리 누나야. 네가 뭔데 우리보고 꺼지라고 하는 건데?”
- 그 말을 마치자, 그는 다시 최은영을 향해 말했다.
- “엄마, 아까 임 대표 쪽에서 사람들이 재촉하러 왔어. 더 이상 사람을 안 보내면 우리 다 끝난다고.”
- 최은영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차갑게 말헀다.
- “하린을 차에 실어. 죽더라도 결혼식에는 가게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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