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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사랑

금단의 사랑

곰jelly

Last update: 2024-04-26

제1화 장례식

  • 서울에 위치한 한 묘지에서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 검은 상복을 입은 정희민은 사람들 사이에 조용히 서서 정국영의 생전 친구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 “정희민 씨, 뭐라고 위로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정희민은 눈물을 닦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 한 달 전, 정산그룹은 파산했고 정국영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때 잘나가던 정 씨 가문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세상 속으로 사라졌다.
  •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지만 정희민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정 씨 가문의 딸일 뿐만 아니라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하진그룹 대표 박시욱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 장례식은 정오까지 열렸지만 사람들은 박시욱의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장례식이 거의 끝날 무렵 벤틀리 한 대가 천천히 묘지로 들어왔다.
  •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었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반듯한 양복을 입은 박시욱이 차에서 내렸다. 준수하고 각진 얼굴에는 차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 정희민은 결혼한 지 2년 만에 박시욱을 처음 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박시욱을 만나다니!
  • 그리고 모든 조문객들은 분향을 하고 헌화를 하기에 바빴지만 박시욱은 빈손으로 왔다.
  • “시욱 씨.”
  • 사람들이 더욱 놀란 것은 빨간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차에서 내린 뒤 자연스럽게 박시욱의 팔짱을 꼈다는 것이다.
  • “저도 들어가야 해요?”
  • 박시욱은 그녀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자신의 팔에서 내려놓았다.
  • “여기서 기다려.”
  • “알겠어요.”
  • 여자는 빙그레 웃으며 발끝을 세우고 그의 얼굴에 입맞춤을 했다.
  • 정희민은 이 장면을 보고 뺨을 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 이곳은 그녀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빨간 치마를 입고 왔을 뿐만 아니라 모든 조문객들 앞에서 그녀의 남편에게 키스를 하고 있다.
  • 정희민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손을 꽉 쥐었다.
  • 박시욱은 이미 계단을 올라와 그녀 앞에 다가왔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에 눈을 맞췄다. 187이나 되는 그의 큰 몸집이 소리 없이 그녀를 압박했다.
  • “왜? 2년 동안 못 봤더니 벙어리가 된 거야?”
  • “왜 온 거야?”
  • 정희민은 그가 좋은 마음으로 온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왜 왔냐고?”
  • 박시욱은 창밖의 눈보라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 “당연히 우리 장인어른한테 절 올려야지.”
  • 그는 정희민을 내려다보았다.
  •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온 정희민은 2년 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 만약 그녀가 박시욱의 원수의 딸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두 사람은 애초에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시욱은 정국영에게 복수하기 위해 정희민과 결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 “모두 나가세요.”
  • 박시욱이 말을 꺼내자 조문객들은 감히 하진그룹과 같은 재벌에 맞설 용기가 없어 모두 조용히 떠났다.
  • 마지막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정희민은 손목이 탈골되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그녀는 박시욱의 힘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 ……
  • 한 시간 후 박시욱은 양복을 정리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장례식장을 떠났다.
  • 문밖에서 기다리던 여자는 그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시욱 씨, 어때요? 일은 다 해결된 거예요?”
  • “응.”
  • 박시욱은 담담하게 대답했고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며 몇 마디를 흘렸다.
  • “모든 게 끝났어.”
  • 온유아는 그의 말속의 숨은 뜻을 알아차렸지만 감히 물어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만 정말 모든 것이 끝났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