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민은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한 후 허탈하게 의자에 앉아 박시욱을 두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박시욱 대신 그의 담당 변호사가 왔다. 변호사는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서류 몇 부를 건네주었다.
“정희민 씨가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면 대표님께서 청계산 쪽의 아파트를 정희민 씨에게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태도는 온화했지만 전문가 다운 냉철함도 풍기고 있었다.
정희민은 서류에 적힌 ‘이혼 합의서’ 몇 글자를 보고 두 눈을 꼭 감으며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박시욱이 정말 이혼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이다.
그녀가 펜을 들지 않자 변호사는 서류 가방에서 다른 서류들을 꺼내 정희민에게 건넸다.
“이 서류는 대표님과 정희민 씨의 개인 자산에 대한 상세 내역입니다. 두 분에게는 공동 재산이 없으니 청계산 아파트는 전적으로 대표님께서 두 분의 정을 생각해서 정희민 씨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대표님께서 1년 전에 진행하신 주식 분할 내용입니다. 정산그룹의 채무 상황은 부부 양측에 속하지 않으니 모두 정희민 씨가 책임지셔야 합니다.”
그녀가 받은 자료에는 주식, 부동산, 신용카드 등 상세 내역이 명확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정희민은 이 모든 것이 박시욱의 계획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시려졌다.
박시욱은 모든 계산이 정확하고 분명했고 모든 절차를 빠짐없이 계획했다. 그는 확실히 총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2년 전에 정국영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정희민과 결혼시킨 것이다.
박시욱은 젊은 나이에 하진그룹을 창업하였고 기업은 서울의 선도적인 기업이 되었다. 그는 젊고 잘생겼으며 대담하고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다. 파산한 가문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자신의 비즈니스 제국을 세웠다. 또한 정산그룹이 파산한 후 홀로 능력을 뽐내고 있다.
정국영은 오늘날 이런 상황이 펼쳐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박시욱의 시커먼 속내가 정희민을 두렵게 하고 허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혼을 하는데도 직접 나서지 않고 정희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었다.
정희민은 주먹을 쥔 채 냉정함을 되찾고 자료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박시욱 씨는요?”
“대표님은 요즘 약혼한 분과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다니느라 바쁘십니다. 대표님께서 이혼과 관련된 일은 모두 저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박시욱 씨를 만났으면 합니다. 아파트는 필요 없어요.”
정희민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서 거침없이 말하는 젊은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변호사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정희민 씨. 대표님은 정희민 씨와 대면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정희민은 마치 모든 것이 그녀의 예상과 들어맞는 것 같아 허탈하게 웃었고 서류를 덮은 채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럼 저는 영원히 이 서류에 사인하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 온유아 씨랑 결혼한다면 저는 그 인간을 고소하겠습니다.”
“정희민 씨!”
변호사는 정희민에게 더 권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 밑에 맺혀있는 슬픔과 의연함을 보며 말을 잊지 못했다.
“문제가 해결이 안 됐는데 박시욱 씨가 온유아 씨랑 그대로 결혼을 진행하진 않겠죠?”
정희민은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어요?”
변호사는 상황을 따져보고 나서야 사실대로 말했다.
“대표님은 오늘 저녁 7시에 명진당에서 PM 건설 사장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대표님 일정이 끝나면 제가 두 분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