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7화 적어도 내 마음은 너로부터 지켰어야 했어

  • 어느덧 토요일이 다가왔다.
  • 공휴일이라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어젯밤 늦게 잠들었던 탓으로 백윤혜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점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 문밖으로부터 도우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들리는 도우미의 목소리에 그녀가 대답을 하고는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열어 가냘픈 얼굴을 드러냈다.
  • “백… 백윤혜 씨. 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지는 않으실 거니까 빨리 준비하시라고…”
  • 여자애가 그녀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며 우물쭈물 말했다.
  • “도련님께선 누굴 기다리는 게 질색이라며, 딱 5분만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5분이 지나면…”
  • 여자 도우미가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뒷감당은 직접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 뒷감당.
  • 백윤혜는 그 ‘뒷감당’이 뭘 의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5분은… 세수하고 이 닦는 걸로도 훨씬 부족했다.
  •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잠이 깨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공찬이 그녀의 사진을 찢은 그날부터 오늘까지 5일이 지났다. 그동안 공찬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별장에 한 발자국도 딛지 않았다.
  • 오늘도 할머니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저를 데리러 왔을 것이다.
  • 5분 내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백윤혜는 감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옷장을 열어 그 속에서 브이넥 티셔츠와 다리라인이 이뻐 보이는 스키니진을 꺼내 갈아입었다. 검고 긴 생머리를 풀고 가방을 챙기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 현관의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들 중, 흰색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 별장의 문을 열자마자, 그녀를 향해 칼바람이 불어왔다.
  •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 백윤혜가 추위에 저도 모르게 팔짱을 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겉옷이라도 하나 챙기려 했건만 별장 밖에 세워져있는 검은색 마세라티가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반쯤 내린 차창 사이로 보이는 공찬의 옆모습은 지극히도 치명적이었다. 짙게 주름 잡힌 그의 눈썹 사이가 불만을 얘기했다.
  • 어쩔 수없이 백윤혜가 굳게 마음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그 검은색 차를 향했다.
  • 차 문이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안전벨트를 맸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공찬의 두 눈과 시선을 마주치게 됐다.
  • 날씨가 이렇게나 추운데, 뭐 하러 저렇게 얇게 입은 거지?
  • “안 추워?”
  •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 심상치 않은 공찬의 눈빛에 백윤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이었고 식은땀으로 등이 젖을 것만 같았다.
  • “괜… 괜찮은데. 왜… 왜?”
  • 순수함으로 가득 찬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다 공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 “이것도 괜찮아. 적당히 입었네.”
  • “…”
  • 희롱이 섞인 그 말에 백윤혜의 가녀린 몸이 살짝 움찔했다. 자연스럽게 무릎 사이에 올린 손은 주먹이 되었다.
  • 저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기 위해 그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 “우, 우리 빨리… 빨리 가. 할머니께서 오래 기다리시겠어.”
  • 백윤혜가 말을 더듬으며 주제를 돌렸다. 그러면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 공찬이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봤다가, 붉게 물든 그녀의 볼에 시선을 돌렸다. 이곳을 맴도는 긴장감에 그녀는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공찬은 오히려 지금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만 같았다.
  • 그녀를 괴롭히고 힘들 게 해야만이 그는 속이 시원했다.
  • 백윤혜, 그거 알아? 이 모든 게, 너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 어쩌면 처음부터, 네가 공가에 발을 디디는 그 순간부터 방심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몰라.
  • 적어도 내 마음은 너로부터 지켰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