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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빛바랜 옛 사진

  • ‘둥둥둥—’
  • 용기를 내고 심호흡과 함께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지금 백윤혜는 17층 대표 사무실 문 앞에 서있다.
  • 정적이 흘렀다.
  • ‘둥둥둥—’
  • 그녀가 또다시 노크했다.
  • 이번에도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백윤혜가 숨을 꾹 참고 또다시 문을 두드리려던 그때, 업무공간에서 한 사람이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 “백비서님, 조금 전에 회의가 있어서 공 대표님께서 회의실로 가셨어요.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제출하실 서류 같은 거라면 일단 책상 위에 올려두시면 될 것 같아요.”
  • 그녀가 흠칫하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업무공간에 사람이 반이나 줄었다. 아마도 다들 회의에 참석하러 간 모양이다.
  • “네, 고마워요.”
  • 그녀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 그리고 문을 열었다.
  • 대표 사무실이 처음도 아니었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의 모습에 매번 놀라고 마는 그녀였다.
  • 공찬은 중증 결벽증이다. 그래서 매번 두 사람이 잠자리를 나눌 때면, 수명의 도우미가 그녀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곤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털 하나도 빠짐없이 아주 깔끔하게.
  • 공찬의 사무실 역시 그의 됨됨이와 맞아떨어졌다. 심플하고, 명랑하고 티 없이 맑은 그와 똑같았다.
  • 백윤혜가 서류를 단목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움직이려던 그때, 무심코 서랍 사이를 비집고 나온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 궁금한 마음에 그녀가 서랍에서 사진을 꺼냈다.
  • 빛바랜 옛 사진이었다.
  • 사진의 주인은 이 사진에 애착이 심했던 모양이다. 사진의 변두리엔 마손이 심했다.
  • 하지만 사진 속의 주인공을 보게 되는 순간, 백윤혜는 결국 두 눈을 부릅 뜨고 말았다.
  • 교복 스타일의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땋고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여자애…
  • 대학교 1학년 때 그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었다.
  • 이 사진을 어떻게 공찬이가…
  •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공찬이가 이 사진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사진을 도로 가져다 놓지 않고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뒤, 등 뒤로부터 굵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 하는 거지?”
  • 사진을 쥐고 있던 백윤혜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세차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그녀가 황급히 등을 돌리더니 본능적으로 사진을 들고 있던 손을 등 뒤로 숨겼다.
  • 세련된 그녀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번졌다.
  • “회… 회의 끝났어?”
  • 아무렇지 않은 척해봤지만 속은 이미 긴장과 불안으로 뒤죽박죽이었다.
  • “나… 나 서류 전달하러 왔어. 네가 없길래, 그래서 내가… 그래서 일단 서류 책상 위에 두려고…”
  •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 “이제 서류 전… 전달했으니까, 그럼 나는 일단…”
  • 먼저 가도 되겠지?
  • 공찬이 말없이 그녀를 지켜봤다. 그는 팔에 슈트 재킷을 걸치고 깔끔한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짙은 색상의 눈동자, 옅게 물든 얇은 입술 그리고 얼굴엔 거의 아무 표정도 없었다.
  • 길게 찢어진 눈을 살짝 찌푸리며 그가 날이 선 눈빛으로 백윤혜를 빤히 쳐다봤다.
  • 훤칠한 몸매가 문어귀에 우뚝 서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그 빠른 움직임을 캐치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등 뒤로 숨긴 그녀의 팔을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 “손에 쥐고 있는 게 뭐지?”
  • 백윤혜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점점 가까워지는 둘 사이에 그녀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사진을 감추려 꼭 잡고 있는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젖어있었다.
  • “별거 아니야.”
  • 무지 떨고 있지만 그래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 뻔한 거짓말을 믿어줄 공찬이 아니었다. ‘하’ 하며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그가 시선을 그녀의 등 뒤로 옮겼다. 깜짝 놀란 백윤혜가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렸다.
  •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에 공찬의 눈썹이 뒤틀렸다.
  • 그녀가 무슨 반응을 할새도 없이 공찬이 빠르게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궁지에 몰린 그녀의 몸이 책상 쪽으로 바짝 붙었다. 그리고 그의 긴 팔은 자연스레 그녀의 등 뒤로 뻗었다.
  • 손바닥이 차가워지는 느낌과 함께 공찬이 사진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고는 보란 듯이 사진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