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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박형준, 너였어

  • ‘싫어…’
  • ‘싫어…’
  • 그 소리가 백윤혜의 귓가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마음속에 자그맣게 피어오른 불꽃에 누군가 가차 없이 찬물을 끼얹은 느낌이었다.
  • “차 세워!”
  •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지만 공찬은 그 소리를 듣는 체도 하지 않았고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 “차 세우라고! 내릴 거야!”
  •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또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 공찬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 신기하게도 이번엔 그가 그녀를 반박하지 않았다. 타이어와 바닥이 마찰해 “끽—” 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 청년광장과 겨우 100미터가량 떨어진 십자로에 차가 세워졌다.
  • 백윤혜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마치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빠르게 차에서 도망쳤다.
  • “저녁 10시. 그전에 집에 들어와.”
  • 그녀가 차 문을 닫음과 동시에 차 안으로부터 공찬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명령하듯 그가 말했다.
  • 가방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을 굳게 먹은 듯한 그녀가 귀 쩌렁하게 ‘쿵’하고 차 문을 닫았다.
  • 차창에 붙어있는 시트지가 남자의 매혹적인 미모를 가렸다. 그가 천천히 차창을 내려 길을 건너고 있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봤다. 담배를 끼고 있는 손가락을 톡톡 털더니 곧바로 담배를 꺼버렸다.
  • 담배 연기에 반듯한 그의 얼굴, 그리고 그의 미소 역시 흐릿해졌다.
  • 길가의 LED 모니터에서 한 아나운서가 뉴스 속보를 보도했다.
  • “오늘 새벽, 해외 인기스타 가수 박형준이 교외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천 명의 팬들이 가수 박형준을 위해 공항으로 몰려들어 현장이 붐비고 있습니다.”
  • 그러다 갑자기 시끌벅적한 공항의 장면으로 모니터가 바뀌었다.
  • 공항에는 이구동성으로 ‘박형준’을 외치는 팬들과, ‘박형준’이 쓰여있는 응원 피켓을 들고 서있는 팬들로 왁자했다.
  • 그리고 가운데에 서있는 남자는 치명적인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오똑한 코, 그리고 연한 하늘색의 말간 눈동자까지… 만화 캐릭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 매니저와 보디가드가 그의 양편에 서서 그를 위해 길을 내어주었다. 캐주얼한 슈트 차림의 남자가 긴 다리를 뻗어가며 시원시원하게 앞으로 걸었다. 양편에 서있는 팬들을 향해 손을 저음과 동시에 공항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벤을 향해 걸어가 그 차에 탔다.
  • 연예계의 총수인 공찬이 박형준이라는 이름에 낯설 수가 없었다.
  • 하지만 이 얼굴은…
  • 흐릿했던 그 얼굴이 선명해졌을 때, 공찬의 입가에 번졌던 미소가 굳어져 버렸다.
  • 그리고 그의 얼굴 역시 따라서 천천히 굳어져 버렸다.
  • 박형준, 너였어.
  • 모니터에 다시 아나운서의 얼굴이 나타났다.
  • “그리고 오늘 밤은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인기스타 가수 박형준의 콘서트가 청년광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팬분들의 열광이 굉장히 기대되는데요. 다 같이 오늘 밤 기대해봅시다!”
  • 청년광장…
  • 조금 전 백윤혜의 초조한 얼굴과 성질부리며 차에 내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가 핸들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 핏줄이 생길 정도로 힘을 줬다.
  • 하… 백윤혜. 아주 기다렸단 듯이 뛰쳐가더니…
  • 청년광장의 남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백윤혜가 몰리는 인파에 묻힐 지경이었다.
  • 살을 에이듯 불어대는 칼바람도 팬들의 뜨거운 환호소리에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박형준이라는 사람이 정말 이 정도로 핫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추운 날에 다들 그의 노래나 들으려고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로 말이다.
  • 백윤혜는 본래 덕질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환우 그룹에서 근무해서가 아니었더라면 당장 떠오르는 연예인도 손에 꼽힐 정도였을 것이다.
  • 게다가 박형준은 데뷔 초기에 해외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핫하단 걸 제외하고는 그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 “윤혜! 윤혜!”
  • 멀리서부터 그녀를 보고 지소영이 킹사이즈 팝콘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 “죄송합니다, 조금만 비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