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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딴 사람도 마음에 두지 않을 거야

  • 차창을 사이에 두고 여사님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도우미의 부축임으로 서있는 여사님이 공찬에게 재삼 강조했다.
  • “녀석아, 윤혜한테 잘해. 아니면 이 할미가 절대 너 가만 안 둬!”
  • 준수한 남자가 곧은 자세로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긴 두 팔로 핸들을 잡으면서 그가 했다.
  • “할머니, 알았어요. 별일 없으면 저희 이제 그만 가볼게요.”
  • “가, 가!”
  • 여사님이 손을 저었다.
  • 백윤혜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 “우리 강아지, 집에 도착하면 꼭 할미한테 문자 보내고!”
  • 여사님이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귀띔했다.
  • 백윤혜가 네 하고 대답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남아있어 보였지만 공찬은 이미 시동을 걸었다.
  • 그의 매서운 눈초리만으로도 불만을 보아낼 수 있었다. 짙은 노을이 그려진 하늘 아래에서 차가 고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차가 멀어지고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여사님은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 허 씨 아주머니가 여사님을 힐끗하더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여사님. 윤혜 아가씨가 도련님과 결혼을 하면, 정말 행복할까요?”
  • 여사님이 길게 탄식했다.
  • “찬이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봐와서 그 속에 무슨 생각을 둔 건지 내가 제일 잘 알아. 아마 윤혜 그 계집애가 아니면, 딴 사람도 마음에 두지 않을 거야.”
  • “그럼 왜…”
  • 허 씨 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 “왜 도련님께서 윤혜 아가씨한테, 그렇게…”
  • 인정머리 없이 구는 거죠?
  • 하지만 그 뒷말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허 씨 아주머니도 결국 공 씨 가문의 일계 도우미일 뿐, 주인의 사생활까지 물을 권리는 없으니까.
  • “그건… 나도 생각 많지 했지… 우리 찬이, 예전엔 윤혜랑 아주 잘 지냈는데 말이야.”
  •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가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애를 쓰지도 않았겠지.
  • 그 이유를 제외하고, 또 다른 하나의 이유가 바로 하루빨리 증손자를 안아보고 싶은 그녀의 사심 때문이었다.
  • 대화가 여기까지 흐르자, 여사님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바뀌었다. 그녀가 허 씨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 “찬이랑 윤혜…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 허 씨 아주머니가 한참 고민하다 말을 이어갔다.
  • “아마…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신 그다음부터 아닐까요?”
  • 공 회장님, 즉 공찬의 아버지 공현동은 일생 동안 아내가 둘이었다.
  • 첫 번째 아내가 바로 공찬의 친모이고, 두 번째 아내는 백윤혜의 친모이다.
  • 그리고 조금 전 허 씨 아주머니가 얘기했던 ‘사모님’은 바로 후자였다.
  • 차 안, 두 사람은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백윤혜는 멍하니 창밖의 경치만 바라봤고 공찬은 오직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가 한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고, 얼굴은 아무 표정 없이 굳어있었다.
  • 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 “띵—”
  • 백윤혜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 확인해보니, 지소영의 문자였다.
  • “윤혜윤혜. 잊지 마! 청년광장, 박형준의 콘서트! 광장 남문에서 기다릴게!”
  • 핸드폰 화면을 잠그고, 백윤혜가 공찬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하지만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그였다.
  •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 “아, 저기… 이따 저녁에 소영이랑 약속이 있어서… 일단 먼저 가. 좀 이따 날 청년광장 남문에서 세워줘. 저녁에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갈게.”
  • 공찬이 차가운 웃음과 함께 얇은 입술로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 “청년광장 근처에 죄다 모텔이라던데, 나 몰래 허튼짓 하러 가는 건 아니지?”
  • “…”
  • 백윤혜가 두 눈을 부릅 떴다. 공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 말문이 막힘과 동시에 심장이 욱신거렸다.
  • 설마, 저가 허튼짓 할까 봐?
  • 그럼 혹시, 질투?
  • 처음으로 이렇게 대담한 짐작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