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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찢어진 사진

  • 뒤늦게서야 정신이 든 백윤혜가 사진을 뺏으려 했지만 185센티 미터의 남자 앞에서는 그저 허우적대는 몸짓에 불과했다. 발꿈치를 바짝 들고 팔을 높이 휘저으며 몇 번이고 사진을 손에 잡으려고 했지만 매번 그가 성공적으로 피해냈다.
  • 조급함에 붉게 물든 그녀의 뺨을 바라보며 공찬이 입가에 냉랭한 미소를 머금었다.
  •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지? 설마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무슨 자료라도 훔친 건가? 회사 경쟁자한테 고가로 넘기려고?”
  • 명성이 높을수록 시기와 질투도 많이 받는 법이다. 공 씨 가문의 세상이라고 말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니 공 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그 황제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공찬이 저를 고작 산업스파이 취급을 할 줄이야…
  • 온갖 조소와 풍자에도 꿋꿋이 견뎌냈던 그녀였다. 하지만 가슴 아픈 건 어째 익숙해지지 않았다.
  • “이리 줘!”
  • 그녀가 높이 손을 뻗었다.
  • “싫다면?”
  • 그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는 그녀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여자의 두 뺨은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 겨울 같던 그의 얼굴에도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 그리고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에서 빼앗아 온 ‘전리품’에 시선을 돌렸다.
  •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백윤혜는 더 이상 손을 뻗지 않고 그저 뻔한 말들로 변명하려 했다.
  • “우… 우연히 본 거야. 절대…”
  •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 공찬이 사진 속 주인공을 보자, 눈가에 맴돌던 웃음기는 조금씩 사라져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 사진 속 여자의 갸름한 얼굴엔 여성스러움이 묻어났다. 마치 한 송이의 백합꽃 같았다. 소녀 특유의 순수함과 신비함이 어우러져 더더욱 매력적이었다.
  • 가슴 깊숙이 묻어뒀던 저만의 추억이었다.
  • 그때까지는, 그 일의 진상을 알아버리기 전까지는.
  • 그 후, 마음을 가득 채워 부풀어 오른 환상이 물거품이 같이 사라져버렸다.
  • “이 사진은 처음부터 내 거…”
  • 한껏 어두워진 공찬의 낯빛에 백윤혜가 몸 둘 바를 몰랐다. 함부로 그의 물건에 손댄 것에 그가 화난 것이 아닌가 싶어 허옇게 물든 그녀의 입술이 나약한 질문을 내던졌다.
  • “이 사진이 왜 너한테 있어?”
  •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고 가슴도 따라서 두근거렸다.
  • 공찬이 날이 선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아… 아니. 혹시라도 갖고 싶으면, 네가 가져.”
  • 그녀가 ‘너그럽게’ 양보했다.
  • 그저 그의 낯빛이 조금이라도 화사해지길 바랐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냉기가 살을 에이듯 차가웠다.
  • “하…”
  • 얼마나 지났을까, 공찬의 얇은 입술이 드디어 살짝 움직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말이다.
  • 그가 손바닥에 쥐고 있던 사진을 더 꼭 쥐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 “혹시, 내가 이 사진을 무척 아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그 말에 백윤혜가 움찔했다. 살짝 위로 올린 그의 손에 시선을 돌리며 그녀가 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뭐?”
  •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 하지만 갑작스레 들려오는 ‘찌익’ 하는 소리가 이곳의 적막을 깨뜨렸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진이 반으로 토막 났다. 뼈마디가 선명하게 보이는 손가락으로 그가 찢어진 사진을 구기고는 손에 꽉 쥐었다.
  • 뜬금없는 그의 행동에 백윤혜가 깜짝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
  • “너—”
  • 차마 무슨 말을 내뱉을지도 몰랐다.
  • “이 사진 때문에 네가 무슨 오해라도 하는 거면, 없애야지.”
  • 공찬의 입가에 냉소가 맺혀있었다. 그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차가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부여잡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백윤혜, 내가 왜 이 사진을 갖고 있는 줄 알아?”
  • 냉랭한 눈빛과 섹시하고 매력적인 얼굴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 또박또박 내뱉은 말마디가 마치 그 얇은 입술에 쥐어짜낸 듯했다.
  • “이 사진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거든. 네 그 순수한 얼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거짓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