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다음 화
중독되다

중독되다

스파이시 피망

Last update: 2022-04-02

제1화 질리면, 널 놔줄지 고민해 볼게

  • “읍—”
  • 잠결에 백윤혜가 소리를 냈다.
  • 옆에서 잠들어야 할 남자가 언젠지도 모르게 깨어있었다.
  •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느긋하게 욕실로 향했다.
  • “알아서 수습 잘 해. 임신했다고 할머니 앞에 가서 질질 짜지 말고. 나한텐 그딴 거 안 먹히니까.”
  • 탁. 문이 닫히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욕실로부터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 백윤혜가 감았던 두 눈을 뜨고 천장을 지그시 바라봤다. 두 뺨의 붉은 기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창백함이 드러났다.
  • 하… 알아서 수습 잘하라고?
  • 남자의 그런 말들에도 이미 익숙해진 듯 그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 그럼 그렇지. 그녀를 그토록 증오하는 남자가, 제 아이를 임신하게 내버려 둘 리가 없지.
  • 백윤혜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해는 이미 중천이었다. 빈 옆자리는 차갑기만 했다.
  •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생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올리고 감청색의 오피스룩으로 갈아입고는 컨실러로 목에 남아있는 멍을 커버했다.
  • 일층. 도우미 몇 명이 식탁 옆을 에둘러 서있다. 공찬이 가장자리에 편하게 앉아,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가 또 놓았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 계단에 서있는 그녀에게 시선이 떨어지자,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있던 그의 손이 흠칫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그가 입을 열었다.
  • “아까 할머니한테서 연락 왔어. 토요일에 함께 본가에 들르라더군.”
  • 그 말을 하고 그가 잘게 썬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 “본가…?”
  • 백윤혜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망설였다. 우물쭈물하며 맨 마지막 계단을 걸어내려온 그녀의 주먹만 한 얼굴엔 난처함이 묻어있었다.
  • “할머니께서 무슨 중요하게 하실 이야기라도 있으신 거야?”
  •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본가로 불러들였을 리가.
  • 단지 궁금해서 했던 얘기가 공찬에겐 굉장히 불쾌하게 들렸다. 저도 모르게 눈빛이 암울해지더니, 곧이어 나이프와 포크가 그릇에 부딪혀 ‘쾅’하고 쟁쟁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