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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박형준의 콘서트

  • 갸름한 턱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녀의 작은 얼굴도 따라서 일그러졌다.
  • 손가락을 따라 전해지는 통증에 백윤혜가 ‘스읍’ 소리를 냈다. 그녀의 안쓰러운 표정에 공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당장 나가.”
  • 그녀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주며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려 하지 않았다. 공찬은 그저 눈썹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투엔 명령이 섞여있었다.
  •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 백윤혜가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 다행히도 그녀가 빠른 속도로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허리를 곧게 폈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머리가 어지러웠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알았어.”
  •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 조각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억울함과 씁쓸함에 마음이 쓰라렸지만 그녀가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 억지스럽게 웃음을 짜내고는 그녀가 눈꺼풀을 쓸어내렸다. 종이 조각들을 피해 그녀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움직였다. 기분이 엉망이었지만 사무실에서 나오면서도 그녀는 잊지 않고 문을 닫았다.
  • 사무실 안, 공찬이 홀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가차 없이 찢긴 사진 조각들을 바라보더니 그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 아마 10초쯤 지났을까, 그가 천천히 몸을 낮춰 조각난 사진들을 한 장씩 줍고는 기억을 따라 퍼즐 맞추기처럼 그 사진 조각들을 맞췄다.
  • 사진 위로 좁고 긴 틈들이 생겼지만 소녀의 그 순진무구한 웃음은 여전했다.
  • 그가 거친 손가락으로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냉랭한 눈빛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 백윤혜의 눈가엔 눈물로 촉촉해져있었고 피곤함에 얼굴이 초췌해졌다.
  • 직장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지소영이 팔꿈치로 그녀의 팔을 쿡 찔렀다.
  • “윤혜야, 왜 그래? 왜 그렇게 축 처져있어? 공 대표님이 혼냈어?”
  • 백윤혜가 도리질을 하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 “괜찮아.”
  • 공찬의 악랄한 태도와 행동에 상처를 받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공찬이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 굳이 따지자면 그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 그녀의 잘못이다.
  • “귀신을 속여라. 괜찮은데 울기는 왜 울어?”
  • 뻔한 거짓말을 믿을 지소영이 아니었다. 우울한 백윤혜를 달래기 위해 그녀가 눈동자를 굴리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 “아, 참. 토요일에 청년광장에서 박형준의 콘서트가 열릴 거래. 내가 진짜 겨우 티켓 두 장 구했거든? 같이 가자!”
  • 지소영이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기대했다.
  • 토요일…
  • 공찬이 했던 말이 떠올라 백윤혜가 흠칫했다. 토요일에 본가로…
  • 지금 이런 상황에서 감히 그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 게다가 할머니 뵌 지도 꽤 오래됐다.
  • “난 됐어, 소영아. 너 혼자 가. 토요일에 약속 있어.”
  • 그녀가 거절했다.
  • “아, 무슨 약속!”
  • 지소영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재잘거렸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형준이라고! 콘서트 티켓 구하는 게 거의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인데! 더군다나 콘서트는 밤이잖아. 오후에 볼일 다 보고, 저녁에 나랑 같이 콘서트 보러 가면 되잖아, 응? 같이 가자!”
  • 박형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던 이름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 “소영아…”
  • 백윤혜가 김빠진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 “아, 아! 몰라 몰라. 약속한 거다! 토요일에 봐!”
  • 지소영이 환하게 웃으며 윙크를 하고는 의자를 움직여 제자리로 돌아갔다. 백윤혜가 결국 하려던 말을 목구멍으로 다시 삼켰다.
  • 토요일…
  • 점심에 본가로 돌아가는 거니까, 오후에 할머니랑 수다 좀 떨다가 저녁쯤엔 콘서트 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 두 약속이 겹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