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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오해

  • “중요한 이야기?”
  • 공찬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번졌다.
  • “마치 할머니가 무슨 중요한 이야기라도 하길 바라는 것 같이 들리네?”
  • 의미심장한 웃음에 백윤혜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슈트 재킷을 손에 쥐고 한 걸음씩 제게 가까워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그동안 그녀가 딱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게 있다. 공찬이 두렵다. 그것도 아주 많이.
  • 심각한 감정 기복과 저열한 그의 취미가 늘 그녀를 힘들게 했고 또 가슴을 졸이게 했다.
  • 언제 어디서든, 늘 공포에 휩싸였던 그녀였다.
  •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공찬과 그녀 사이의 거리는 반 미터도 되지 않았다. 가늘어진 그의 눈매가 그녀에게 경보를 울렸다.
  • 그녀가 두려움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서려 했지만 계단의 손잡이가 그녀를 꿈쩍도 못하게 막았다.
  •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할머니한테서 듣고 싶은 그 중요한 이야기가 바로 너와 나의 결혼 이야기 아닌가?”
  • 세차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공찬이 발걸음을 멈췄다. 185센티미터의 훤칠한 몸매가 그녀의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를 완전히 감쌌다.
  • 갑작스레 정적이 흘렀다.
  • “난…”
  • 백윤혜가 두 눈을 부릅 떴다가, 급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 “아닌 척하지 마. 내 앞에서 그딴 식으로 불쌍한 척도 하지 말고. 백윤혜, 네가 무슨 속셈인지 내가 진짜 모를 거라고 생각해?”
  • 귀티 나고 여유로운 보이스로 그가 비꼬며 말했다.
  • “내 아이를 갖고, 아주 당연하게 공 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려는 거잖아. 네 사생아 신분 세탁을 깔끔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 남자가 느린 속도로 한 글자씩 내뱉었다. 아주 또박또박 말이다.
  • 그 말에 백윤혜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굴욕으로 속이 이글거렸지만 겉으론 조금이라도 티를 낼 수가 없었다.
  • 간신히 그 굴욕을 집어삼키며 그녀가 해명했다.
  • “그런 거 아니야. 그때 그건, 오해…”
  • “오해?”
  • 우스갯소리에 공찬이 실소를 터뜨렸다. 냉랭한 그의 목소리가 이곳의 온도를 낮췄다.
  • “그러니까 네 말은, 그게 오해였다고?”
  • 백윤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가녀린 그녀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때, 공찬이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았다. 그녀를 계단 난간으로 밀치며 날이 선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 “그럼, 할머니가 있으니까 바람대로 나랑 결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 “아니, 아니야…”
  • 백윤혜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졌다.
  • “너…”
  • 공찬의 얇은 입술이 살짝 벌려진 그 순간, 별장의 현관문이 열렸다. 반듯한 슈트 차림의 전보조가 공손하게 걸어오더니 그의 곁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 “도련님, 차 대기시켰습니다. 회사로 출발하셔도 됩니다.”
  • 일촉즉발의 지금 이 상황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 “알았어.”
  • 남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날이 선 눈빛은 여전히 백윤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 “찬아…”
  • 백윤혜의 나지막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 그 목소리에 공찬이 움찔했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그 생각들이 말간 그의 눈동자에 그대로 그려졌지만… 그가 가차 없이 그 생각들을 떨쳐냈다.
  • 눈앞에 보이는 이 청아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
  • “내가 왜 할머니가 하라는 대로 가만히 있고 너를 여기서 지내게 내버려 뒀는지 알아?”
  • 백윤혜가 납득이 안 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 그녀의 의아한 눈빛에 공찬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 “남자라면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