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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꿈속의 따뜻한 품

  • 나는 모닥불을 안으로 밀어 옮기고 다시 그녀들 곁에 누웠다.
  • 비바람이 아주 거셌지만, 그녀들의 향긋한 체취를 느끼며 나는 오히려 안정된 기분으로 느긋하게 잠들었다.
  • 꿈속에서 나는 광풍에 휘말려 큰 강에 처박혔다. 얼어 죽을 것같이 차가운 강물에서 나는 끊임없이 손발을 허우적거렸으나 몸은 오히려 천천히 강 밑으로 가라앉았다.
  • “악…”
  • 나는 경황없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몸은 꼼짝할 수 없었다.
  • “이건 무슨 소리야! 성가셔!”
  • 여혜미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 “이까지 덜덜 떨고 있어… 아! 열이 나네… 정말 뜨거워…”
  • 이건 심윤아의 목소리가 아닌가?
  • “어쩌지? 정말 뜨거워…”
  •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은데…”
  • 광풍이 기승을 부리고 빗방울이 흩날려 들어오는 동굴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는 점점 구별하기 어려웠다. 나는 추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내가 곧 죽는다고?
  •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나는 이미 죽은 전우 들개를 보았다. 들개는 한 가닥 빛 속에 서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래, 그냥 이렇게 끝내고 말아야지… 그녀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겠지! 내가 떠나는 걸 용서할 거야…
  • 나는 들개를 향해 활짝 웃으며 그가 내미는 손을 잡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 갑자기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몸이 나를 끌어안으며 날아가려는 내 몸을 꼼짝 못하게 붙잡았다.
  • 부드러운 품속에서 향긋한 냄새와 따뜻한 체온이 내 몸에 전해졌다.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어 눈을 뜨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올라가지 않았다.
  • 여자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품은 뼛속까지 스며든 내 몸의 냉기를 천천히 몰아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나를 안았던 여자가 문득 내 몸에서 떨어졌다.
  • “가지 마…”
  • 내가 서운해서 목이 쉰 소리로 만류하자 또 다른 향긋하고 나긋한 몸이 나를 끌어안았다.
  • 그녀들은 번갈아들어 나를 끌어안으며 저들의 몸으로 내 몸의 열을 내리고 있었다…
  • 머릿속에 희미하게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무의식중에 손으로 한 쌍의 부드럽고 풍만한 ‘고무공’을 만졌다. 이렇게 나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 나는 한마디 신음을 들으며 조수처럼 밀려드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 다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나는 얼굴이 가려웠다. 조용히 눈을 뜨니 바로 눈앞에 심윤아의 얼굴이 보였다. 나를 꼭 끌어안은 그녀는 흑백이 분명한 두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가볍게 내 얼굴을 스치고 있었다.
  • 내가 조용히 눈을 떴는데도 그녀는 이내 알아차리고 수줍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던 손을 풀었다.
  • “저기… 고마워!”
  • 입을 열면서 나는 목구멍이 바작바작 타들고 목이 심하게 쉰 것을 발견했다.
  • “걔한테만 감사해?”
  • 여혜미의 목소리에 곁눈질로 흘끗 보니 그녀가 나의 그 도끼를 들고 옆에 서 있었다.
  • 내가 그녀를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자 그녀는 힘차게 도끼를 휘둘렀다.
  •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코코넛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녀는 내 옆에 무릎을 꿇어앉아서 조심스럽게 반 사발 정도의 코코넛즙을 내 입에 대고 기울였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젯밤에 내가 열이 심하게 나서 그녀들 셋이 번갈아들며 나를 끌어안아 마침내 열이 내리게 했다고 알려 주었다.
  • 코코넛즙을 다 마시고 나서 나는 몸이 많이 나아진 듯해 일어나 앉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온몸이 나른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식은땀이 나는 걸 봐서는 아직 일정한 회복 기간이 필요했다.
  • ‘하지만 내가 없으면…’
  • “티나 씨, 쟤를 잘 보살펴요. 만약 다시 열이 나면 바로 끌어안고.”
  • 여혜미가 티나에게 부탁을 남기고 손에 도끼를 든 채 심윤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 “어디로 가는 거야?”
  • 나는 그녀들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 여혜미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 “먹을 게 다 떨어졌어!”
  • “밀림엔 들어가지 마. 거기엔 멧돼지랑…”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혜미와 심윤아는 등나무 사다리를 타고 동굴 입구로 사라졌다.
  • 이때에야 나는 사라졌던 작은 폭포가 다시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솨ㅡ솨ㅡ 쏟아지는 폭포가 동굴 입구를 막고 있었다. 끊겼다 나타났다 하는 작은 폭포가 비와 관련이 있다는 내 추측에 신빙성을 한층 더해 주었다.
  • 나는 티나를 시켜 등나무 사다리를 걷어 올리게 했다. 지금 나는 기력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인데 혹시 박준의 무리가 등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면 우리에게 불리할까 봐 두려웠다.
  • 티나는 나를 등지고 사다리를 걷어 올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답고 조용한 뒷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는 몸에 또 열이 난다고 엄살을 부려 볼까 하는 못된 생각이 떠올랐다.
  • 사다리를 거두고 나서 티나는 작은 폭포에 손을 씻고 돌아와 내 옆에 꿇어앉으며 차가운 손을 내 이마에 얹었다.
  • “느낌이 어때요?”
  • 순진하게 나를 보며 배려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방금 떠올랐던 치졸한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괜찮습니다!”
  • 나는 힘없이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 “어젯밤에 감사했고요!”
  • 티나는 대뜸 얼굴을 붉히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 “마땅히 우리가 감사하죠. 만약 여택 씨가 없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알아요…”
  • “크크…”
  • 웃고 나니 머리가 어지러워 나는 티나에게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보라고 당부했다. 기력이 다한 나로서는 지금의 상황에서 나무를 문질러 불씨를 얻을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티나는 귀엽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눈을 감고 몽롱한 정신으로 안정을 취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귓전에 길게 호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눈을 떠보니 티나가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 그녀는 내가 안정을 취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이를 악물고 신음 한마디도 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그러진 그녀의 작은 얼굴에 그녀의 고통이 낱낱이 드러났다.
  • ‘큰일 났어!’
  • 나는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이틀간 먹은 음식이 깨끗하지 못해 티나가 위장염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 열대 밀림 속에서 위장염은 흔히 발생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빈번한 설사와 구토로 인해 인체의 수분이 신속하게 빠져나가는데 이처럼 의사와 약품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불치병이나 다름이 없다.
  • 나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모른다. 벌떡 일어나 티나의 앞으로 다가가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 “왜 그러죠?”
  • “전…”
  • 티나는 얼굴이 숯불처럼 벌겋게 상기된 채 바닥에 앉아 두 다리를 힘껏 조였다.
  • “괜찮아요…”
  • “뭐가 괜찮다고?”
  • 나는 소매로 그녀의 이마에 돋은 식은땀을 닦아주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 “이 정도가 됐는데 뭘 그렇게 참아요? 티나 씨…”
  • 나는 붉은 피가 티나의 바지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하던 말을 멈추었다. 사실 그녀의 배가 아픈 것은…
  • 생리통이었다!
  • 티나는 나와 눈빛이 마주쳤다가 다시 바닥에 흐른 피를 보고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 “아~”
  •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두 어깨를 끊임없이 들먹였다.
  • 지금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힘없이 말했다.
  • “아, 머리가 어지러워 잠깐 누워야겠네…”
  • 티나는 낮은 소리로 흐느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너덜너덜한 윗옷을 그녀의 앞에 던져 주었다.
  • “스스로 처리하고 다시는 찬물에 손대지 마세요!”
  • 티나는 오히려 더 크게 울었다. 내가 어쩔 바를 몰라 한숨을 쉬는데 뒤에서 여혜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얼른 다가가서 등나무 사다리를 내려놓았다. 얼마 안 돼 그녀들 둘이 등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동굴로 들어왔다.
  •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다. 여혜미는 손에 쥔 게 몇 마리를 높이 쳐들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너를 몸보신 시킬 거야…”
  • 그러다가 다음 순간, 티나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피를 보고 여혜미 얼굴의 웃음기가 대뜸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내 뺨으로 그녀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 “짐승 같은 놈!”
  • 그녀가 화를 내는 속도가 책장을 번지는 것보다 더 빠를 줄은 상상 밖이었다. 뺨 한 대에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어 화만 돋았다.
  • “너 미쳤어?”
  • “티나!”
  • 여혜미는 내 곁을 지나 바로 티나의 옆으로 갔다.
  • “저놈이 혹시…”
  •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내가 옷을 티나에게 벗어 주고 지금 내 몸이 속옷 바람인 데다 티나의 아래 몸에서 흐른 피를 보면 얼마든지 오해를 살 수 있었다.
  • “저… 아니… 그게… 바로…”
  • 티나와 여혜미가 얘기하는가 싶더니 이내 여혜미의 목소리가 커졌다.
  • “여택, 네 얼굴의 모기는 내가 잡아주마!”
  • ‘제기랄! 이제는 너에 대한 손톱만큼의 미련마저 바닥이 났어! 비록 내가 지금 너를 이길 수는 없어도 사생결단은 할 수 있단 말이야!’
  • 나는 화가 나서 그대로 누워버렸다. 세 여인만 소곤거리는 소리에 나는 완전히 내가 소외된 느낌이었다.
  • 혼미한 상황이 한참 지난 뒤에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눈을 떠보니 여혜미가 활짝 핀 꽃처럼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 “대게야!”
  • 그녀는 새빨간 게를 쳐들고 눈부시게 웃었다.
  • “내 동생 귀여워서 누나가 먹여 줄게.”
  • 나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 “네가 웃는 건 모두 가짜야!”
  • “못난 놈!”
  • 여혜미는 손을 내밀어 내가 방금 맞았던 그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 “아직도 아파?”
  • “여기가…”
  • 나는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 “몹시 아파!”
  • “왜?”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나 여택이 여태껏 떳떳하고 바르게 살아오면서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는데 친인들의 오해가…”
  • 커다란 게알이 내 입을 막았다. 신선한 맛이 목구멍을 자극하는데 여혜미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 “내가 너에 대해 익숙히 알지 못했다면 난 죽도록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야! 나는 네가 지금 어떻게 내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때리며 혼내려 하는지도 알아…”
  • ‘그래, 우리 둘이 너무 익숙하니까 마음도 통할 수 있겠지.’
  • 나는 헤헤 웃고 게걸스럽게 게를 먹으며 아무 말도 안 했다.
  • 배가 부르자 또 한 번 잠을 실컷 잤다. 그리고 깨어나니 정력이 많이 회복된 느낌이었다. 내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겠다고 하자 여혜미와 심윤아가 극구 말리며 자기들끼리 다시 나갔다.
  • 그들이 떠나갈 때, 나는 그들에게 절대 밀림에 들어가지 말고 해변에는 갈 수 있되 절대 깊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일일이 당부했다...
  • 그들이 떠나간 후, 티나가 내 곁에 다가와서 부드럽게 물었다.
  • “아직도 아파요?”
  • “에… 난 낯가죽이 두꺼워서 괜찮아요!”
  • 나는 웃으면서 그녀를 훑어보았다.
  • 그녀는 아직도 내 윗옷을 자기의 그곳에 끼우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어설프고 그곳 또한 볼록해서 어쩌면 그 꼴이 임신부와 흡사했다.
  •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주의력을 돌리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두바이에는 뭐 하러 가며 왜 남자 친구는 함께 가지 않느냐고 이것저것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