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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죽음의 탐색2

  • 한 무리의 침팬지들이 우리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채 울부짖으며 마구잡이로 나뭇가지들을 던졌다.
  • 동물원에서 볼 때는 귀여웠던 녀석들을 이렇게 철창 밖에 야생에서 맞닥뜨리니 두려움이 일었다.
  • 침팬지들의 분노하는 모습과 가지런히 정돈된 바나나 숲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저 숲을 가꾼 것이 침팬지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디서 봤는데 인간 다음으로 침팬지가 제일 똑똑하며 그들은 간단한 도구 정도라면 충분히 스스로 사용할 줄 안다고 했던 것 같다. 침팬지는 인간의 DNA와 가장 가까운 동물이며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인간을 제3의 침팬지라 부른다고도 했던 것 같다.
  • 그러므로 저들이 바나나 숲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고로 우리는 저 침팬지들의 영역에서 바나나를 딴 것과 같으니 지금 우리를 내쫓기 위해 저러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침착하게 외쳤다.
  • “조용히 해요!”
  • 웅성거림이 점점 잦아지고 나는 소리 높여 말했다.
  • “우린 머릿수로도 저들에게 밀리지 않고 저들이 우리보다 덩치도 작고 무기도 없는데 우리가 여기서 겁먹고 도망친다면 어떻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어요!”
  • 주변에 있던 한 명 한 명을 둘러보니 모두 얼굴에 수치심이 가득했다. 나는 손에 있던 도끼를 휘두르며 말을 이어갔다.
  • “침팬지를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따요! 마침 고기도 필요하던 참인데 저것들이 감히 허튼짓이라도 한다면 죽여버리면 그만이에요!”
  • 내 격려와 함께 사람들은 다시 바나나를 따기 시작했다. 바나나 무더기는 점점 더 커졌고 이를 본 침팬지들은 더욱 격노하여 가슴 치며 울부짖었다.
  • ‘멍청이들.’
  • 사람들은 멀리서만 날뛰지 다가오지 않는 침팬지들을 보며 그제야 안심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침팬지들을 향해 조롱의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모르는 사이에 불어나기 시작한 침팬지의 숫자는 어느덧 처음 봤을 때의 두 세배나 되어 있었다. 그제야 이를 눈치챈 나는 당황하며 외쳤다.
  • “그만 갑시다!”
  • 다급하게 외쳤지만, 사람들은 아직 멍하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벗어났다. 나에게 팔짱을 낀 애리도 따라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바나나는…. 안 가져가요?”
  • 누군가가 멍청하게 질문했다. 머리가 다 아팠다.
  • “버려요. 일단 살고 봐야죠!”
  • 말을 마치자마자 앞에서부터 침팬지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 나무 위에서 사람보다도 더 큰 침팬지가 뛰어내려 내 앞을 가로막았다.
  • 거의 키가 2미터가량이 되는 거대한 침팬지였다. 마치 인간을 연상시키는 침팬지의 냉정한 눈빛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 “우끼끼! 우끼끼!”
  • 침팬지는 연달아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 스스슥… 나무 위에 있던 침팬지들이 뛰어내려 우리를 포위했다.
  • “흩어져서 튀어!”
  • 외침과 동시에 나도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 상상을 초월하는 침팬지의 숫자와 거구의 우두머리 침팬지까지…. 그의 앞에 서면 난 그대로 갈가리 찢길 것만 같았다.
  • 뒤에서 우두머리 침팬지의 침착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의 울음소리를 따라 침팬지들이 3마리씩 짝을 지어 우리를 둘러쌌다.
  • ‘진법 펼칠 줄도 안다고?’
  • 눈앞에서 여자 한 명이 침팬지들한테 붙잡혀 숲속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기를 바라던 이들 중 한 명이었는데 공동의 적을 마주하고 있으니 속에서부터 알 수 없는 동족 의식이 솟구쳤다.
  • “놓아줘!”
  • 나는 도끼를 휘두르며 숲속으로 뛰어갔다. 내가 휘두른 도끼에 머리를 맞은 침팬지 한 마리가 쓰러졌다.
  • 피가 눈앞에 솟구치고 고통스러운 침팬지의 비명과 함께 무수한 침팬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번뜩이는 눈동자와 털이 가득한 손이 마구잡이로 나를 뜯어 젖혔다.
  • 이성을 잃은 나는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팔을 휘둘렀다. 내게 남은 건 살아남겠다는 본능뿐이었다.
  • 나는 여자를 일으켜 얼른 도망치라고 외치고는 도끼를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침팬지를 죽였다.
  • 사방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고 그 비명은 마치 보이지 않는 비수가 되어 내 마음속을 헤집어 놓았다.
  • 나는 이를 악물며 옆에 있던 침팬지들을 한 차례씩 도끼로 가격했다. 제일 가까이에 있던 남자를 도와주려 움직이려던 찰나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밀쳤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 그와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커다란 돌덩어리가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 위를 지나쳤다.
  •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누군가가 나를 밀치지 않았다면 내 머리는 그대로 박살 났을 것이다.
  • 애리였다. 그녀는 계속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나를 밀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 나는 애리를 부둥켜안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 우두머리 침팬지가 다시 돌덩어리를 들고 경멸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는 이미 나를 위험한 적으로 인식한 듯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기다란 팔뚝이 또다시 큰 돌덩어리를 조준하는 것을 보았다. 놀란 나는 허리에 힘을 주어 마치 뱀처럼 빠져나갔다. 돌덩어리는 내 뒤로 떨어지며 진흙과 풀떼기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 우두머리 침팬지는 이번에 아예 돌덩어리를 쥐고 나를 쫓기 시작했다. 그는 비록 거구였으나 전혀 속도에는 지장이 없이 매우 빠르게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 덕에 아직 내 품에 있던 애리도 함께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예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올려 뛰었다. 귓가에 씽씽 바람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좁은 곳을 골라 가지 사이를 뚫고 미친 듯이 달렸다.
  • 우두머리 침팬지는 끈질기게 쫓아왔다. 길이 좁지만 않았다면 아마 진작에 나는 그놈에게 따라 잡혔을 것이다.
  • 이리저리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반얀 나무 뿌리 사이를 뚫고 지나갔는데 갑자기 눈앞이 확 틔었다.
  • 여기저기 듬성듬성 풀이 돋아나 있는 벌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 또 습지라니! 앓음 소리가 저절로 났다. 이렇게 탁 트인 곳이라면 우두머리 침팬지한테 쉽게 잡힐 텐데….
  •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감자가 언덕을 구르듯 괴성을 지르며 아래로 내달렸다.
  •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뒤가 너무 조용했다.
  • 나는 비틀거리며 겨우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두머리 침팬지가 숲 끝자락에 서서 기이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와 동시에 갑자기 발밑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
  • 발밑이 서서히 잠기고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발목까지 올라온 진흙이 여전히 멈추지 않고 나를 점점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 이런! 여긴 늪지대였다… 어쩐지 저 녀석이 쫓아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 나는 황급히 몸을 앞으로 엎드려 폈다. 그 덕에 내가 둘러업고 있던 애리도 진흙 위로 철퍼덕 던져졌다. 다행히 바닥이 폭신해 얼굴이 진흙더미가 된 것 외엔 별문제 없어 보였다.
  • 여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명도 없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는 고개를 들어 요염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 인정할 건 인정하자. 저 여자의 눈빛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보고 있자면 어딘가 마음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난 지금 그럴 기력이 없었다.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말했다.
  • “당신도 좀 쉬어요. 맨날 그렇게 연기하는 거 힘들지도 않아요?”
  • 애리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당신처럼 진짜 사나이 앞에선 저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되네요.”
  • “보는 눈이 있네요!”
  •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우두머리 침팬지가 기다란 팔뚝으로 마침 이쪽으로 돌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 하지만 이번 조준 실력은 매우 형편없었다. 우리와 좀 떨어진 진흙탕 속으로 낙하한 돌은 쿨렁하는 소리와 함께 깊이 가라앉았다.
  • 무슨 상황이지? 머릿속에 강한 경보음이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진흙탕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듯 요동치고 있었다.
  • 썩은 나무토막과도 같은 것이 끊임없이 진흙탕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 “!!!”
  • 나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하였다.
  • 악어였다! 빌어먹을. 이 진흙탕 속에 있던 건 전부 다 악어였다!
  • 저 약아빠진 우두머리 침팬지는 이를 알고 있었다. 방금 그가 돌멩이를 던진 건 이 악어들에게 먹을거리가 왔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 이런 씨X, 원숭이와 악어의 우정 이야기가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들은 진짜 서로 협력하는 사이였다….
  • 우두머리 침팬지는 마침 인간이 된 것처럼 두 팔을 가슴에 꼬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뒤에 있던 악어들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느릿느릿 밖으로 기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 저 악어들이 앞으로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소리를 낮춰 애리에게 말했다.
  • “따라서 와요. 이렇게 엎드려서….”
  • 난 바닥에 굴러 진흙탕을 온몸에 묻히고는 그대로 바짝 엎드린 채 우두머리 침팬지 반대 방향 숲을 향해 기어갔다.
  • 하지만 우두머리 침팬지는 영리하게도 악어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걸 알고서 또다시 우리를 향해 돌을 던졌다.
  • 돌이 아주 가까운 곳에 진흙탕을 튀기면서 떨어졌다. 또다시 들려온 소리에 악어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우리를 발견하였다.
  • 먹이를 인지한 악어들이 재빨리 우리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 “달려!”
  • 나는 애리를 잡아끌고는 그나마 좀 단단한 바닥을 찾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진흙탕 속에 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악어에게 뜯어 먹히지 않겠다는 의지로 애리를 잡아끌고는 황급히 내달렸다. 그나마 운이 따라 줬는지 진흙에 빠져 죽지도 악어에 잡아 먹히지도 않고 무사히 밀림에 발을 내디뎠다.
  • 우두머리 침팬지는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늪지대에서 빠져나오자 크게 아우성치며 밀림을 따라 쫓아오기 시작했다.
  • 미련을 버리지 못한 수십 마리의 악어도 여전히 나를 향해 늪지대를 헤치며 빠르게 기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