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있는 두 사람 모두 그녀의 친딸이었지만 사치스럽고 부유한 생활을 누려온 조유란은 가난한 시골에서 자란 민연초를 몹시 싫어했다.
조유란의 눈에는 민연초가 막무가내이고 밖에 내놓으면 자신의 체면을 구길 것 같은 말괄량이 계집애로 보였다.
만약 사람들이 민연초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박힌 그녀와 이윤아의 완벽한 이미지를 망쳐버리게 될 것이다.
민연초는 곁눈으로 조유란을 봤다가 다시 이윤아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역시 모녀답게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네요.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어요.”
“민연초, 입 다물어!”
이윤아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민연초의 꼴도 보기 싫어 조유란을 향해 말했다.
“엄마, 어차피 돈 받으러 온 거니까 천만 원 쥐여주고 빨리 내보내자.”
“응, 네 말이 맞아.”
조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지금 바로 올라가서 돈 가져올게.”
“이 씨 가문에 차고 넘치는 게 돈인 것 같은데, 정 도련님을 구해준 보상금 200억을 저한테 주세요. 그럼 앞으로 서로 만날 일 없을 겁니다.”
“민연초, 욕심부리지 마.”
이윤아는 눈을 부릅뜨고 민연초를 쳐다봤다.
“2천만, 그 이상은 우리도 못 줘.”
“2천만 줄 테니까 당장 돈 챙겨서 연성을 떠나. 그리고 정 씨 가문에서 알고 있는 생명의 은인은 윤아 한 사람이야. 넌 네가 정 도련님을 구했다고 하는데, 증거 있어?”
조유란이 물었다.
“동영상을 지우고 반지를 훔치면 내가 증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날의 배달 앱에 내가 그 길목을 지난 기록이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민연초는 핸드폰을 들고 흔들며 말했다.
“배달 기록이 내가 정민한을 구했다는 걸 백 퍼센트 증명할 수는 없어도 이윤아는 그날의 배달 오더도 없잖아요. 정민한이 과연 의심을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난 한바탕 소란을 피워서 정 도련님의 보상금을 갖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윤아의 뜻대로 되게 해주는 쪽을 선택하려고요.”
사실 그날 민연초의 배달 주문은 고객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 길목을 지났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이 또한 이윤아가 정민한 앞에서 거짓말을 할 때 그녀가 반박하지 않은 이유이다.
배달 앱을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이 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로 겁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너…”
이윤아는 민연초가 여지를 남겼을 줄 몰랐고 그녀가 정민한 앞에서 진실을 밝혀버릴까 봐 물었다.
“얼마를 원해?”
“이 씨 사모님이 날 낳아준 걸 생각해서 십 퍼센트 할인해 줄게요. 20억만 주세요.”
“20억? 황당무계한 요구구나.”
조유란이 말했다.
“민연초, 너 미쳤구나.”
이윤아가 말했다.
촌 동네에서 자란 주제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다니, 두 모녀는 당연히 민연초의 협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민연초는 두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는 시늉을 했다.
“싫으면 난 지금 바로 정 씨 노부인을 찾아갈 거야. 할머니는 정 씨 가문의 주인이시니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겠지.”
이윤아는 아직도 정 씨 노부인이 어떻게 민연초와 아는 사이이고, 왜 그녀를 그렇게 예뻐하는지 알지 못했다.
민연초의 존재는 이윤아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잠깐만.”
이윤아가 민연초를 불러 세웠다.
“이 일은 엄마 아빠랑 상의해 볼 테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말을 마친 이윤아는 조유란을 끌어당겼다.
“엄마,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빠한테 전화해보자.”
두 모녀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민연초는 아래층에서 기다렸다.
다만 비열한 이 씨 가문 사람들을 생각하니 민연초는 걱정이 되었고 그들이 위층에서 또 어떤 비열한 방법을 상의하고 있을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드래곤힐 별장은 오래된 별장이라 방음이 잘되지 않았다.
문 앞에 서니 두 사람의 대화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참을 들어도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녀 혹은 양부모에게 불리한 비겁한 아이디어를 내지는 않았다.
민연초는 자신이 괜한 의심을 한 것 같아 경계심이 강한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그때, 그녀의 귀에 ‘양부모…교통사고’라는 단어가 들렸다.
제대로 듣지 못한 민연초는 궁금증이 생겨 귀를 문에 대고 자세히 들었다.
“민연초는 욕심이 많고, 또 나랑 똑같이 생겨서 그냥 내버려 두는 건 너무 위협적이야. 게다가 정 씨 노부인이 쟤를 그렇게 예뻐하는데 쟤가 있는 한 내가 어떻게 정민한과 결혼하겠어?”
“윤아야, 그렇긴 하지만 민연초가 네 동생한테 골수를 기증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이미 민연초의 양 아빠를 장애인으로 만들었어. 그런데 민연초한테도 손을 쓰려고?”
“엄마, 왜 이렇게 어리석어. 민연초가 살아있는 한 내가 정 씨 가문 며느리가 되는 걸림돌이 될 거야. 식물인간이 된다면 또 모를까!”
이윤아의 언성은 갑자기 높아졌고 조금 초조해졌다.
문밖에 서 있던 민연초는 이윤아의 말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다 들었다. 그녀는 소름이 쫙 돋았고 몸 안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두 달 전, 이부안 부부는 갑자기 민연초의 앞에 나타나 그녀를 이 씨 가문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했다. 단 조건은 백혈병에 걸린 동생에게 골수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윤아와 그녀의 남동생의 골수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민연초를 찾아온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민연초에게 거절당했다.
한 달 전, 민연초의 양부모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고 양부모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후, 이부안 부부는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그들은 민연초가 이 씨 가문의 막내아들에게 골수를 기증해 준다면 양부모의 치료비를 부담해 주겠다고 했다.
그때 민연초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그리고 이부안 부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었지만 자신의 친부모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결국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그녀가 너무 순진했다.
민연초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았고 당장 뛰쳐들어가 그녀들과 따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