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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녀의 자궁을 제거하려는 개자식

  • “네, 하고 싶어요, 증명하고 싶어요.”
  • 정민한은 지옥에서 걸어 나온 저승사자와도 같이 서늘한 기운을 풍겼고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죽음과 이렇게 가깝게 있음을 느꼈다.
  • 생존 본능에 민연초는 마늘 빻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 “물론이죠, 그런데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 “좋아.”
  • 얼음장 같던 정민한의 얼굴이 조금은 녹았고 얇은 입술은 웃을 듯 말 듯 한 곡선을 그렸다.
  •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로 다가갔고 그녀의 목에 닿은 머리카락은 그의 가느다란 숨결에 의해 움직였다. 짜릿한 그 느낌은 민연초를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었다.
  • 몇 초를 기다린 후에야 정민한은 입을 열었다.
  • “나한테 확실한 방법이 있어.”
  • “무…무슨 방법인데요?”
  • “그건…”
  • 그는 말을 하다 말았고 그녀를 놀리는 듯 그녀의 긴장감이 최고치에 도달했을 때에서야 말을 이어갔다.
  • “당신 자궁을 제거하는 거야!”
  • “자…자궁?”
  • 민연초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고 뒤에 있는 소파에 부딪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정민한을 보며 말했다.
  • “싫어, 싫어요…, 그렇게는 못해요.”
  • 자궁을 제거하면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다.
  • 그녀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정민한 씨, 당신은 악마예요?”
  • 내면이 강한 민연초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전에는 정민한의 정체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점점 더 두려워졌다.
  • 이 남자에게는 모든 것을 짓누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 정민한에게 있어 그녀를 짓밟는 것은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 정민한은 가볍게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송진, 병원에 연락해, 지금 바로 자궁절제술을 준비…”
  • “아니, 안 돼, 안 돼!”
  • 정민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연초는 벌떡 일어나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 전화를 끊어버렸고 억울함과 화가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 “당신이 뭔데요? 돈이 있으면 이렇게 하늘 무서운 줄 몰라도 되는 거예요?”
  • 이 남자 앞에선 억울한 척, 불쌍한 척하는 게 무의미했다.
  • 이 자식은 냉혈 인간임이 틀림없다.
  • “그래도 되는지 안 되는지는 해보면 알겠지.”
  • 정민한은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그녀를 지나쳐갔다.
  • “가지 마요!”
  • 민연초는 정민한의 손을 덥석 잡고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했다.
  • “정 도련님, 그렇게 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아이를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아이를 가졌다면 꼭 뗄게요.”
  • 자궁을 지키기 위해 민연초는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 자존심 따위를 지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 그녀는 어린 나이에 자궁 제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아무도 그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 “방금 전까지 불평하더니, 이젠 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 정민한은 그녀의 턱을 세게 움켜쥐었다.
  • “말해 봐, 내가 대체 너의 어떤 모습을 믿어야 하지?”
  • “정 도련님,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죠. 약은 당신 할머니가 탔고 내 순정을 뺏어간 것도 당신이고 오히려 난 피해자인데, 왜 나더러 그 후과를 책임지라는 거예요?”
  • 민연초는 매우 화가 났다.
  • 방금 전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과 지금은 무릎을 꿇은 채 분통을 터뜨리는 그녀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정민한은 조금 흥미가 생겼다.
  • “돈이 많아서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거든.”
  • 그는 민연초의 말 그대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 “여기 얌전히 있어, 널 수술하는 데까지 데려다줄 사람이 올 거야.”
  • 정민한은 휴지를 뽑아 그녀의 턱을 문지른 손을 더럽다는 듯이 닦았고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뒤돌아 가버렸다.
  • “정 도련님?”
  • “정 도련님? 우리 좋게좋게 대화로 풀어요.”
  • “야, 정민한, 가지 마.”
  • “정민한, 이 나쁜 놈아, 개자식!”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정민한을 보며 민연초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 그러고는 일어나 소파에 앉았고 무릎에 보이지 않는 먼지를 탁탁 털며 중얼거렸다.
  • “뻔뻔한 개 자식.”
  • 밖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정민한은 떠났다.
  • 민연초는 소파에 앉아 정 씨 노부인에게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찾았고 그제야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 아마 방금 전 정민한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녀의 핸드폰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 “나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 어떻게 하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지 그녀는 머리를 굴렸다.
  • 민연초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층을 한 바퀴 훑어보았고 이 층으로 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엘리베이터와 복도 끝에 감겨 있는 문이 전부라는 것을 발견했다.
  • 거실 문을 나서면 덩치 큰 경호원 두 명이 지키고 있다.
  • 민연초는 룸 안을 빙 둘러보더니 침실로 걸어가 라이터를 찾아냈고 휴지를 대걸레로 감아 불을 붙이고는 천장의 스프링클러에 가까이 가져갔다.
  • 불과 1초 만에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가동되었고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 침실에서 세컨드 방, 주방, 그리고 화장실까지 민연초는 전부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작동시켰고 동시에 연기 감지 경보기도 작동했다.
  • 경보기가 작동하자 그녀는 곧바로 대걸레를 한쪽 구석에 놓고는 화장실에서 뛰어나왔다.
  • “어떻게 된 거예요?”
  • “어디서 불난 거예요?”
  • 두 명의 경호원이 당황하며 부랴부랴 안으로 들어왔다.
  • 민연초는 고개를 저었다.
  • “나도 모르겠어요…너무 무서워요…”
  • “넌 저쪽으로 가봐, 난 이쪽으로 가볼게.”
  • “응.”
  • 두 사람은 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 민연초는 좋아하며 바로 거실을 뛰쳐나와 38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내려갔다.
  • 테라에서 탈출한 그녀는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떠났다.
  • “기사님, 성진 병원으로 가주세요. 아니에요, 드래곤힐 별장으로 가주세요.”
  • 처음엔 성진 병원에 양부모님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일단 드래곤힐 별장에 가서 이 씨 가문 사람들한테 돈을 받은 뒤 양부모님을 데리고 연성을 떠날 생각이었다.
  • 이 씨 가문 막내아들에게 골수를 기증할 때, 민연초의 생부는 그녀가 연성을 떠날 때 천만 원을 보상해 주기로 약속했다.
  • 민연초는 그 돈을 받기 싫었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그녀의 월급은 아직 지급되지 않았고 몸에 남았던 백만 원은 정민한의 병원비를 대신 지불했다. 양부모님을 모시고 시골로 내려가려면 돈 쓸 일이 많았다.
  •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삼십 분 뒤, 드래곤힐 별장에 도착했다.
  • 민연초는 차에서 내려 별장 입구까지 걸어갔고 초인종을 눌렀다.
  • 이윽고 별장 문이 열렸고 화려한 차림의 조유란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민연초를 쳐다보며 말했다.
  • “네가 여긴 왜 왔어?”
  • 오십 대를 바라보는 조유란은 허리가 돋보이는 블루 컬러의 브이넥 셔츠에 블랙 하이웨스트 팬츠를 입고 있었고 평소 관리를 잘한 덕분에 젊고 기품 있어 보였다.
  • 그녀가 바로 민연초의 친모이다.
  • “이부안 씨는요, 그 사람한테 볼 일이 있어서요.”
  • 민연초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이게 무슨 돼 먹지 못한 버릇이야? 감히 그 사람 이름을 함부로 불러?”
  • 조유란은 민연초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 민연초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 이윤아는 분명히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는데 왜 그녀만 그들 부부의 미움을 사는 걸까?
  • “이름 부르면 안 돼요?”
  • 민연초는 피식 웃었다.
  • “그래요, 그럼 당신 남편은 어디 있어요? 내가 볼일이 있는데.”
  • “너…흥, 역시 촌 동네에서 자라서 그런지 예의가 하나도 없구나.”
  • 조유란은 화가 치밀었다.
  • “예의는 친부모가 가르치는 건데, 나처럼 친부모가 없는 사람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무슨 예의까지 찾아요.”
  • 민연초는 자신이 친부모님을 다시 만났을 때 이런 태도로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