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죽음을 자처하다
- 그는 차가운 눈으로 민연초를 힐끗 쳐다본 후 소승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 “소 도련님 여자친구 또 바뀌셨나 봐요?”
- 소승현이 피식 웃으며 민연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 “소개하죠, 연초. 이 소승현의 새 여자친구입니다.”
- 말을 하며 소승현은 민연초를 바라봤다.
- “이분은 연성에서 유명한, 전설 속의 천재 청년, 상업계 거물, 보석 왕 정 도련님이셔.”
- 소승현은 정민한을 칭찬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다소 비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소승현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느껴졌다.
- 마침, 그녀도 정민한이 싫었다.
- 하여 민연초는 협조적으로 정민한을 바라보며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모르는 사람처럼 인사를 했다.
- “그쪽이 정 도련님이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뵙는데,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 그 말에 정민한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 그의 뒤에 있던 송진도 입꼬리를 씰룩였다.
- 민연초가 자신의 보스를 놀리고 있었다.
- “이렇게 못생긴 여자도 괜찮으신가 봅니다?”
- 정민한이 낮게 말했다.
- “하하하, 콩깍지가 씌면 그만이죠.”
- “소 도련님 눈이 안 좋으신가 봅니다. 제가 괜찮은 안과 의사 소개해 드릴까요?”
- “하도 예쁜 여자들만 보니 질려서요, 이런 여자들이 더 눈에 매력 있더라고요.”
- “매력이 있는 겁니까, 남자를 잘 꼬시는 겁니까?”
- 정민한의 잘생긴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거대한 위압감이 은근히 민연초를 압박했다.
- 그럼에도 민연초는 마음속의 분노를 감추고 그와 다투지 않았다.
- “하하하……”
- 정민한의 말을 듣던 소승현은 고개를 젖히고 웃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 “우욱……”
- 속으로 구역질이 나며 허리를 굽혀 토하고 싶었다.
- “우욱, 우욱~”
- 헛구역질을 몇 번 했지만 토하지는 않았고, 민연초의 목을 끌어당겼다.
- “연초야, 집에 데려다줘. 너무 괴롭다.”
- 민연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 “가자.”
-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갔다.
- 정민한과 송진은 입구에 서 있으면서 그녀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도 물러설 의사가 없었다.
- 여자는 눈을 크게 떴다.
- “도련님, 길 좀 비켜주세요.”
- 어디 사람 길을!
- 정민한은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와 허공에서 두 눈이 마주치자 살기를 내뿜었다.
- 몇 초 후, 정민한은 한쪽으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들에게 길을 양보했다.
- “감사합니다, 도련님.”
- 민연초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로는 고맙다고 하지만, 말속엔 조롱이 담겨 있었다.
- 그녀의 말이 끝나고, 소승현은 정민한을 향해 허허 웃었다. 민연초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
- “감사합니다, 도련… 우욱……”
-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소승현과 정민한은 가까웠고, 헛구역질하는 그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정민한의 몸에 토할 것 같았다.
- 둘은 얼른 자리를 떠났다.
- 그들이 공중화장실 보도 끝으로 사라진 뒤에야 송진이 말했다.
- “보스, 부하들 시켜서 소승현 손 좀 보라고 할까요?”
- 정민한은 가늘게 뜬 눈에 차가운 빛을 뿜었다.
- “쓰레기야. 상대해 봤자 우리 급만 떨어져.”
- “하지만……”
- 송진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정민한은 이미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
- 한편, 소승현을 부축해 테라를 나선 민연초는 소승현의 부하가 나오길 기다렸다.
- “도련님 또 술 많이 드셨습니까?”
- “얼른 데리고 가요. 술 좀 깨게 하고.”
- 민연초는 그를 부하에게 넘기고 나서 다시 팔을 들어 몸에서 나는 술 냄새가 코를 찔 토하고 싶었다.
- “감사합니다, 아가씨.”
- “별말씀을요.”
-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돌아서려다가, 문득 소승현에게 손목을 잡혔다.
- “정 도련님을 알아?”
- 분명 술 취한 사람이 그런 디테일은 어떻게 알아차렸지?
- 민연초는 고개를 저었다.
- “무슨 소리야. 정민한은 연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고, 우린 그냥 우러러볼 뿐이야. 어떻게 알아 그 사람을.”
- “하하하, 네 말이 일리가 있다.”
- 소승현은 고개를 젖히고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차에 올랐다.
- 차에 시동이 걸리고 떠났다.
- 그녀는 입구에 서 있다 뒤돌아 테라로 들어갔다.
- 그런데 막 들어서자 송진과 마주쳤다.
- “민연초 씨, 보스가 뵙자고 합니다.”
- 민연초는 불쾌한 눈빛으로 송진을 바라봤다.
- “정민한에게 말하세요. 전 이미 그쪽이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인데 왜 멋대로 오라 가라에요? 자기가 진짜 연성의 신인 줄 안대요?”
- 야박하고 무자비한 망나니일 뿐이었다.
- 호랑이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데, 정민한은 모습을 갖추지 않은 태아마저 없애려 했다!
- “민연초 씨, 보스가 뵙자고 합니다.”
- 덤덤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던 송진은 방금 한 말을 반복했다.
- “비켜요!”
- 불쾌했던 여자는 손을 뒤로 뻗어 허리에 찬 전기봉을 집어 들었다.
- “술 드실 필요 없습니다.”
- “비키라니까요!”
- 처음 정민한을 본 이후부터 지금까지 민연초의 마음속엔 정민한에 대한 일말의 호감도 없이 혐오뿐이었다.
- 하여 그녀 앞에서 오만한 송진의 모습도 정민한의 차가운 얼굴이 떠올라 역겨웠다.
- 그녀는 전기봉으로 송진을 가리키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노려보았다. 눈빛 속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 송진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손을 쓸 뻔했지만, 그녀의 뱃속에 정 씨 집안의 미래 작은 도련님이 있다는 생각에 그만 한쪽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민연초는 코웃음을 치며 테라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 하지만, 888호 룸을 지나칠 때 누군가 나타나 그녀를 방안으로 끌어당겨 문에 밀쳤다.
- “정민한? 미쳤어, 이거 놔!”
- 눈앞에 남자를 보며 민연초는 화가 치밀었다.
- 남자는 끄떡없었다.
- 정민한은 그녀의 뺨을 움켜쥐었다. 깊은 이목구비엔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 “테라로 출근하는 게, 쓰레기들 꼬시기 위해서야?”
- 망할 여자, 감히 소승현 같은 바람둥이를 고르다니.
- 그의 손힘이 그녀의 턱을 아프게 잡았지만 민연초는 굴하지 않고 미간을 구겼다.
- “쓰레기를 만나는 게 왜요? 소승현 좋아해요! 근데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죠?”
- 반항심 때문에 그녀는 정민한을 자극했고, 자신이 남자를 유혹한다고 인정했다.
- “나랑 잔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남자 밑에서 애정표현을 하나, 참 싸.”
- “허허.”
- 민연초는 비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 “정민한 씨, 우리 모두 성인이고,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겁니다. 아, 아니다……”
- 그녀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미간을 구기며 붉은 입술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었다.
- “정 도련님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아서, 밤일할 때도 약이 필요한 분이니 모르겠네요.”
- 약을 먹는다는 걸 또렷하게 발음하며 일부러 느리게 말하는 건 마치 정민한이 그쪽으로 무능하다고 비웃는 것 같았다.
- 이 말이 남자에게 얼마나 큰 모욕과 자극이 되는지 몰랐다.
- 정민한의 차가운 얼굴에 비열함이 떠올랐고, 바로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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