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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병원으로 가다

  • 송진을 보자 민연초는 마음이 조여오며 조금은 두려웠다.
  • 그녀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신이 정민한의 집을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는 걸 잊지 않았다.
  • “허허, 송 비서님, 정말 우연이네요.”
  •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송진을 쳐다보고는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재빨리 노부인의 번호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 하지만 메시지 하나를 보내기 바쁘게 송진은 그녀의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 “송 비서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 민연초는 화가 난 척했다.
  • 송진은 민연초의 휴대폰을 보지도 않고 바로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건네고, 그녀를 덤덤하게 보며 말했다.
  • “가시죠.”
  • 그러고는 민연초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 차 문이 열리고, 민연초가 허리를 굽혀 차에 오르자 차 안엔 마침 흠잡을 데 없는 남자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 그녀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 침을 꼴깍 삼키고 아부하듯 웃었다.
  • “정 도련님, 찾… 찾으셨어요?”
  • 남자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나른하게 눈을 뜨고 날카로운 눈빛을 그녀에게 던졌다.
  • “어떻게 죽을지는 생각해 봤나?”
  • 그는 말수가 적었다.
  • 마치 오늘의 날씨를 얘기하듯 무미건조한 어투였다.
  • 하지만 민연초의 생사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일종 가진 자의 경멸이 담겨 있었다.
  • “하하하…… 당연히… 늙어서 죽어야죠.”
  • 민연초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대대로 조상들에게 빌기 시작했다.
  • 남자는 깍지를 낀 손을 복부에 놓고 늘씬한 손가락으로 손등을 툭툭 건드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 “송진아, 운전해.”
  • “네? 저, 저, 어디 가는 거죠?”
  • 민연초는 당황했다.
  • 그녀가 질문을 하는 사이 송진은 이미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 정민한은 다시 눈을 감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녀는 송진을 바라봤다.
  • “송 비서님,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 “병원이요.”
  • “병원이요?”
  • 민연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긴장되어 가슴이 쿵쾅거렸다.
  • 오늘 정민한이 그녀의 자궁을 적출한다는 말이 떠올라 점점 더 무서워졌다.
  • 오랫동안 이토록 누군가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정민한을 무서워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끝났다, 끝났어……
  • 민연초는 허무한 마음에 힘없이 좌석에 툭 기대며 저항할 의지조차 없었다.
  • 그녀는 노부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 띠리링-
  • 차 안에 벨 소리가 울렸고, 민연초는 정민한이 휴대폰을 집어 드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기뻤다.
  • 고개를 옆으로 들려 화면을 힐끗 보니 노부인의 전화였다.
  • “도와주세요, 할머니. 정민한 씨가 제 자… 읍……”
  • 민연초는 휴대폰에 대고 도와 달라고 소리쳤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그녀의 목을 감싼 채 입을 틀어막았다.
  •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
  • 정민한의 매서운 눈빛이 그녀를 쏘아보았고, 눈빛에는 싸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 민연초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노부인이 전화까지 왔는데 두려울 게 없었다.
  •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 전화를 귓가에 가져간 정민한이 물었다.
  • “이놈아, 어디 있는 거냐. 연초 그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 “……”
  • 침묵이 흘렀다.
  • “대답해. 늙은이 말이 우스워? 연초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날 볼 생각하지 마라!”
  • “할머니, 그냥 하찮은 여자일 뿐이에요.”
  • “그 아이는 상관이 없지. 하지만 난 그 아이 뱃속의 아이를 원해!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죽기 전에 손주 보고 너 결혼하는 건 봐야지.”
  • “저 여자가 우리 집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 “그 아이와 결혼 안 해도 돼. 하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는 낳아야 돼.”
  •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죠.”
  • “그럼 기다려. 2달 뒤에 검사해. 하지만 그전에 네가 그 아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난 네 할아버지 곁으로 간다.”
  • “……”
  • “휴대폰 그 계집애에게 넘겨.”
  • 노부인은 정민한에게 명령했고, 눈살을 찌푸린 남자의 휴대전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이 망할 여자가 할머니한테 약이라도 탔나?
  • 잠시 머뭇거리다 민연추를 놓아주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넘기며 스피커로 전환했다.
  • “연초니?”
  • 노부인이 불렀다.
  • 민연초는 남자가 막았던 입을 닦으며 화가 났던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 “할머니?”
  • “아이고, 이 계집애야. 어떻게 됐어?”
  • 민연초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돌려 정민한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원하는 바를 이룬 표정이었다.
  • 그러더니 웃음을 거두고 와하고 울기 시작했다.
  • “흑흑… 할머니, 정민한 씨가 절 병원으로 데려가서 자궁을 적출하겠대요. 흑흑… 저 무서워요……”
  • 빠르게 바뀌는 표정과 배우보다 더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민연초를 보며 정민한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
  • 만약 할머니의 명령이 없었다면 그는 정말로 이 요물 같은 여자를 참지 못하고 죽였을 지도 몰랐다.
  • “아이고, 울지 마 울지 마. 걱정 마, 할머니가 이미 혼냈으니까 다시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걱정하지 마.”
  • “네…… 할머니만 믿을게요. 그렇지만… 그래도……”
  • “그래도 뭐?”
  • “정민한 씨가 제 휴대폰을 빼앗아갔어요.”
  • “흥, 그 자식 정말 막무가내구나. 알겠어, 연초야. 울지 마.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할머니한테 얘기해.”
  • 그녀와는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민연초는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좋은 여자였다.
  • 유일한 단점이라 하면 평범하고 조금은 못난 외모였다.
  • 노부인이 그녀를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민연초가 집안 살림에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외모로는 정민한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고, 결혼은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 “네 할머니, 감사합니다.”
  • “휴대폰 민한이에게 줘.”
  • “네~”
  • 민연초는 대답을 한 뒤 휴대폰을 정민한에게 돌려주었다.
  • 그는 스피커를 취소하고 휴대폰을 귀에 댔다.
  • “할머니?”
  • “내가 아직 네 할미는 맞냐? 나이를 먹으니 할머니가 눈에 보이지 않지? 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자궁을 적출해? 죽고 싶으냐!”
  • 전화기 너머로 노부인은 단단히 화가 났다.
  • “휴대폰 연초에게 돌려줘. 앞으로 내가 매일 영상통화를 걸 거야. 조금이라도 안 좋은 모습이 보이면 넌 내 제사상 차릴 준비나 해.”
  • “할……”
  • 뚜-뚜-
  • 정민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부인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 휴대폰을 움켜쥔 그의 손에서 우두둑 뼈 소리가 났고, 표정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았다.
  • 민연초는 정민한을 보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다, 그가 극도로 분노하는 것을 보고 노부인이 그에게 다시는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 명령했다는 걸 알아챘다.
  • 이 생각이 들자 민연초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휴대폰 돌려줘.”
  • “네, 보스.”
  • 송진은 운전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 민연초에게 건넸다.
  • “감사합니다.”
  • 민연초가 전화를 건네받자 곧 수신자 “정 할머니”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 그녀가 휴대폰에 뜨는 번호를 확인할 때 정민한도 눈치를 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