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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정민한에게 잡히다

  • 살인범을 구하는 건 이 씨 집안사람 말고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 하지만 그를 구하고, 입을 막기 위해 죽였다니!
  • 이 씨 집안사람들의 행실로 보아 살인으로 입을 막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예상했어야 했다.
  • 이제 끝났다. 최후의 단서도 잃었고, 사건의 범인을 조사했다는 것도 이 씨 집안사람들에게 들켰다. 만약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까지 들킨다면, 다음에 죽는 건 그녀가 아닐까?
  • 갑작스러운 소식에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며 오랫동안 진정하지 못했다.
  • 하지만 어떻게든 결국엔 그녀 혼자 감당해야 될 일이고, 양부모님이 알아서는 안됐다.
  • 3일의 휴가가 끝난 뒤 그녀는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을 계속했다.
  • 이 씨 집안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매일 일이 끝나면 병원에 가서 양 부모님 곁에 있고, 최대한 그 집안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 동시에 의사의 말대로 한 달 동안 술도 먹지 않게 적절히 쉬고 있었다.
  • 그녀는 암암리에 큰돈을 써 다시 사설탐정을 찾아 양부모님 교통사고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 한 달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 시간을 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모든 게 좋았다.
  • 민연초가 병원을 떠나고 정민한은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
  • “도련님, 민연초 씨 초음파 검사 끝났습니다. 태아는 2개월 되었고, 발육도 아주 좋습니다.”
  • “유산 조짐은 없습니까? 매일 배달은 하는데 괜찮나요?”
  • 정민한이 물었다.
  • “농촌에서 자라서 그런지 몸이 아주 건강하세요. 보통 산모분들처럼 연약하지 않으세요.”
  • “알겠습니다.”
  • 매일 쉬지 않고 돌아다녀서 아이에게 영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무사했다.
  • 테라.
  •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불빛 아래 일에 찌들었던 젊은 남녀들이 자신을 놓아버리고 제멋대로 무대 위에서, 테이블 위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다.
  • 그 모습에 민연초는 감탄했다. 이 씨 집안사람들이 자신의 양부모님을 해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손에 있는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바나 마트를 운영하며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 열 시쯤 되어 민연초가 구석에서 쉬고 있을 때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 “누나, 누나, 빨리 남자 화장실로 와요. 소 도련님이 찾아요.”
  • “남자 화장실? 꺼져. 여자인 내가 거길 왜 가?”
  • “아이 참 누나, 빨리 와요. 도련님이 콕 집어 누나 보고 오래요. 걱정 마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 민연초가 뭘 걱정하는지 아는 진탁이 그녀에게 말했다.
  • “소승현! 그래그래, 금방 가.”
  • 말을 마치고 무전기를 허리에 찬 민연초는 화장실로 향했다.
  • 금방 남자 화장실에 도착하자 경호원 몇 명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 “얼른 가 보세요. 도련님이 변기에 엎드려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해요.”
  • “콕 집어서 그쪽 보고 오래요.”
  • “허허, 누나. 제대로 잡아요. 닭이 봉황이 될지 누가 알아.”
  • ……
  • 몇몇의 조롱을 들으며 민연초는 진탁을 발로 찼다.
  • “누가 닭이야.”
  • “퉤퉤퉤, 이 입이 문제야.”
  • 진탁이 빙긋 웃었다.
  • “누나는 용문을 뛰어넘는 물고기지.”
  •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일해. 나중에 매니저님이 보면 또 논다고 뭐라고 하실 거야.”
  • 그녀는 손을 저으며 그들을 보냈다.
  • 남자 화장실에 들어서자 첫 번째 칸은 열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니 소승현이 변기에 앉아 쓰레기통에 토하고 있었다.
  • 소승현, 연성 소 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 잘생기고 귀티 나는 외모였지만 역시나 유명한 문제아, 바람둥이였다.
  • 이름을 언급하면 사람들의 비아냥 대상일 뿐이었다.
  • 그를 어떻게 아냐고? “싸워서 알게 된 사이”
  • 금방 테라에 출근한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소승현이 진탁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민연초가 당장에 술병을 탁상에 깨며, 깨진 술병을 소승현에게 내밀며 거만하게 말했다.
  • “진탁이는 내 사람이야. 한 번만 더 건드려 봐?”
  • 소승현은 탁자에 놓은 술을 가리키며 말했다.
  • “단번에 이 보드카 원샷 하면, 내가 봐줄게.”
  • 어려서부터 양아버지에게 술을 배운 민연초는 주량이 셌다. 단번에 보드카 한 병을 비웠다.
  • 그 뒤로 가드들은 물론, 소승현까지도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 그리고 소승현은 때때로 그녀를 불러 술을 마셨고,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 경호팀의 직원들은 그녀의 과감한 행동에 감탄했고, 모두 그녀를 누나라 불렀다.
  • “우욱……”
  • 소승현은 참지 못하고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 속이 울렁거렸던 민연초는 코를 막고 전기봉으로 소승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 “소승현, 술 취했으면 얼른 꺼져.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안 역겹니.”
  • 민연초의 목소리를 듣고 휴지로 입을 닦은 소승현은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자, 나 좀 부축해 줘.”
  • “내 손 더러워질까 봐 싫어.”
  • 그녀는 전기봉을 흔들며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거 잡아.”
  • 소승현은 순순히 전기봉을 잡고 일어나 세면대로 다가가 입을 헹구고 얼굴을 씻었다.
  • 민연초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지켜보고 있었다.
  • “또 어떤 여자한테 차였길래 이래?”
  • 두 손으로 세면대를 잡고 거울 속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던 소승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민연초를 바라봤다.
  • “다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하겠지?”
  • 씁쓸함과 무기력함을 담고 있는 미소였다.
  • 갑작스러운 진지한 분위기에 오히려 민연초는 어색했다. 그에게 휴지 몇 장을 건네며 말했다.
  • “술 깼으면 얼른 꺼져! 엇…… 야, 소승현, 뭐 하는 거야?”
  • 민연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승현이 그녀의 팔을 당겨 그녀를 벽에 밀쳤다.
  • “연초야, 이 소승현이 살면서 너한테만 다르게 대한다는 거 알아?”
  • 취한 그녀에게서 짙은 술 냄새가 났고, 민연초는 불편했다.
  • “연초야, 나랑 사귈래?”
  • “……”
  • 그녀는 술 취한 소승현의 농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그를 흘겨보았다.
  • “요즘 안 맞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지?”
  • “너… 너… 네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알아? 난 싫지 않아. 대충 넘어가면 된다고.”
  • “소승현, 아직 술이 안 깼어? 가서 술 좀 깨게 해줘?”
  • 민연초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 “흠흠……”
  • 그때, 남자 화장실 입구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 그 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 민연초의 등이 경직되며 눈이 살짝 커졌다.
  • 정민한?
  • 왜 그가 여기에 있지?
  • 하지만 곧 그녀의 뱃속에 그의 아이가 없다는 게 생각이 났고, 더는 그와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기에 차가운 태도로 응수했다.
  • “어머, 우연이네요. 정 도련님도 화장실 오셨네요?”
  • 소승현은 여전히 한 손은 벽에,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자세로 고개만 돌려 갑자기 나타난 정민한에 인사를 건넸다.
  • 테라가 그의 소유였지만 평일에는 펜트하우스에서 지내고, 비즈니스적인 만남이 아니면 좀처럼 내려오질 않는 그였다.
  • 그가 하필 오늘 내려올 줄이야.
  • 그 결과 이 여자가 소승현 같은 쓰레기와 엮이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