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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지옥의 문턱

  • 박준은 표독스럽게 나를 몇 번 흘겨보고는 비틀거리며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런 악바리를 나는 더 깊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박준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머리를 돌려 말라깽이 남자에게 말했다.
  • “가서 모든 사람을 다 불러와요. 회의해야 하니까!”
  • 이내 사람들이 다 모였다. 남자 넷 외에 여자 10여 명이 있었다. 모두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정한 경제기초가 있는 여인들이었다. 애초에는 모두 옷차림이 깔끔했는데 지금은 몸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심지어 어떤 여인은 바지도 없어 천 조각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 그녀들의 표정은 무감각하고 생기라고는 없어 이 이틀간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 나는 그녀들을 가엾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여운 사람은 반드시 가증스러운 데가 있으니까. 그녀들은 첫날 박준의 곁에 가서 설 때 이미 자기들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내가 박준에게 호되게 맞을 때 그녀들은 구경만 했고 남자에게 유린을 당하면서도 그녀들은 반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료의 살점이 익었을 때 그녀들은 젓가락을 들었다.
  • 나는 여기로 오기 전부터 이들을 모두 제거할 생각을 했다. 다 같이 무인도에 떨어진 상황에서 마땅히 마음과 힘을 합치는 게 도리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 박준이 털어놓은 비밀이 나를 거의 절망에 빠뜨렸다고 해도 나는 한번 먹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 죽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당에 가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간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누가 징벌하겠는가?
  • 내 앞에 서 있는 20여 명 사람의 눈을 보면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에 대한 그 어떤 반항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아주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완전 무장을 한 5명의 사병이 천여 명의 평민을 학살할 수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선두에 나서지 않으려는 타성을 가지고 있다.
  • 나는 애써 몸을 바로 세우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내 눈길에 어쩔 바를 몰라 쩔쩔매서야 나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박준은 이미 내가 추방했어요. 아직도 그를 따르려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물러가요!”
  •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나 송구스럽게 나를 쳐다보며 나의 차가운 눈빛에 풀이 죽어 가늘게 몸을 떨고 있었다.
  • 이것은 기선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어느 부대에서든 신병 반장들이 능숙하게 써먹는 것인데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 그냥 쥐 죽은 듯이 조용하여지자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 “좋아요. 보아 하니 모두 변함없이 나를 따를 각오가 되어있는 것이네요! 맞습니까?”
  • 몇몇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손을 귓가에 대고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 “안 들려요!”
  • “네!”
  •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좋아요. 모두 나를 따르겠다니 매우 좋은 일이네! 하지만 이건 당신들 생각이고 나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
  •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한 것을 보고 나는 쌀쌀하게 말했다.
  • “나는 당신들에게 야외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고 당신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닐 수도 있어요. 오직 당신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먹고, 입고, 자고, 행동하는 것까지 만족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구세주가 아니니까 무엇이든 얻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 “지금부터 내가 당신들에게 불을 지피는 방법을 가르칠 거예요. 배우고 싶은 사람은 나를 따르고 앉아서 향수하려는 사람은 박준을 따라가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 으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는 내 수단에 아무도 떠날 생각을 못 하고 내 옆에 모여들었다가 내가 분부한 대로 제각기 나무를 주어왔다.
  • “나무를 비벼 불을 지피는 일은 사실 아주 간단해요. 우선 불쏘시개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새 둥지 같은 게 가장 좋고요, 적당한 나무토막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널빤지 하나를 얻어 위에 구멍을 뚫고 홈을 길게 파놓으면 두 손까지 해서 재료가 다 준비된 거예요!”
  • “앞서 당신들이 실패한 건 사실 순서가 틀렸기 때문이에요!”
  • 나는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하나와 마른 풀을 한데 뭉쳐서 충족한 통기성을 담보한 후에 이것이 바로 불쏘시개라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어 홈을 판 널판에 나무토막을 비비기 시작했다.
  • “속도가 가장 중요하니까 반드시 빨리 비벼야 해요. 나중에 손이 뜨겁고 아프겠지만 이것은 불을 지피는데 필수적인 대가예요!”
  • 내 시범에 따라 나무토막에서 이내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얼른 나무토막을 불쏘시개 안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불쏘시개는 타오르지 않았고 심지어 불꽃조차도 없었다.
  •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불을 붙이지 못한 직접적 원인이에요!”
  • 말을 마친 후, 나는 불쏘시개 가까이에 입을 대고 살살 불었다.
  • 몇 번 불자 불쏘시개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한 점의 빨간 불꽃이 깜박거리다가 점점 커졌다.
  • 이내 불이 붙자 나는 가는 나무토막으로 불길을 떠받쳤다.
  • “불이 붙은 후에는 먼저 가는 나뭇가지를 놓고 그 나뭇가지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 좀 실한 나무토막을 올려놓으면 돼요… 저기, 한번 시험해 봐요!”
  • 관건이 되는 요령을 배우고 나서 남자 넷과 여자 몇몇이 선후로 불을 지피는 데 성공했다. 그들 중에는 특별히 빨리 배우는 여인이 있었다. 눈이 유달리 예쁜 그녀는 나를 볼 때 은근히 집적거리는 뜻을 내비쳤다.
  • “이번에는 어떻게 야영 장소를 선택할지에 대해 가르칠 거예요. 총체적으로 간단해요. 물과 가깝고, 바람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위험을 피하고, 야수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햇볕이 들고 평평한 곳이어야 합니다!”
  • “해석하자면 물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은 수원과 가까운 곳을 선택해야만 밥을 짓거나 마시는 물, 세수하는 물을 마련하는 데 담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어젯밤에 당신들도 직접 체험해서 알고 있을 것이고요. 위험을 피한다는 것은 산 홍수, 바다 조수, 산사태 등 침수 재해를 말하는 것인데 이를 피하자면 진흙이 많은 산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요. 그리고 야수를 방어한다는 것은 수원과 가까이 있으면 야수들도 이런 장소를 찾기 때문에 야영하기 전에 물가에 야수의 발자국이나 배설물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 나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 글자도 그들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 “내가 지금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앞으로 내가 당신들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스스로 야영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꼭 내가 지도하고 검사할 거예요. 그리고 먹을 것과 수원은 멀지 않은 곳의 울창한 원시 밀림에 있어요. 이제 내가 어떻게 그곳의 먹을 것을 구하겠는지에 대해 가르쳐줄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이건 유일한 희소식인데 그 밀림에 자원이 상상 밖으로 풍부해서 누구든 노력하기만 하면 절대 배고플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 나는 그들이 바람을 등질 수 있고 평평한 곳을 골라 움막을 짓는 것을 지도했다. 그리고 도끼를 집어 들었다.
  • “갑시다. 밀림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찾아야죠!”
  • 나는 꽤 성실해 보이는 여인 4명을 골라 움막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10여 명과 함께 밀림으로 향했다.
  • 여인초를 지날 때,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물을 받아내는지를 가르치며 열대우림에는 이처럼 물을 저장하는 식물이 아주 많아서 자세히 살펴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 열대우림의 많은 나뭇잎은 상상외로 커서 먹을 것을 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섬유를 채집해 옷을 지을 수도 있다. 또 일부 식물의 형체에는 전분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시미루(西米露)는 종려나무의 고갱이로 만든 것이다.
  • 지금 우리의 공구는 그리 완벽하지 못했다. 단단하기로 소문난 종려나무 한 대를 베자 해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로 생각해서 반드시 벌목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 나는 그들에게 각종 지식을 상세하게 가르쳤다. 그들은 나와 접촉하는 이 시간에 내가 박준에 비해 가까이하기 쉽다는 느낌을 받은 듯했다. 내가 가르치는 모든 것에 대해 그들은 감탄해 마지않으며 점차 숭배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 눈이 유달리 예쁜 여인은 적극적으로 내 팔을 잡고 그 한 쌍의 부드럽고 탱탱한 무기를 내 팔에 밀착시키며 걸을 때마다 비벼댔다. 그 바람에 나는 몸에 허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밀림 속에서 걸을 때는 방향감각이 가장 중요해요. 왜 나뭇잎의 방향이며 태양이나 북두칠성을 봐야 하는지는 모두가 아는 것이기에 더 설명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방향감각을 어떻게 응용할지는 자신에게 달렸어요!”
  • 나는 도끼로 우리가 지나가는 주변의 나무에 표적을 남기면서 독사를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 “독사는 쉽게 위장을 잘해서…”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남자가 자지러진 비명을 지르며 땅에 넘어졌다.
  • 녹색의 작은 뱀 한 마리가 그 남자의 복사뼈를 물고 몸뚱이로 아랫다리를 바짝 감고 있었다.
  • 나는 얼른 왼손으로 뱀의 7촌 부위를 꽉 잡고 오른손에 쥔 도끼로 뱀의 목을 잘랐다.
  • 뱀의 몸뚱이가 나른하게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대가리는 그냥 복사뼈에 딱 붙어 있었다. 그 남자는 죽는다고 울고불고 아우성을 쳐댔다. 나는 도끼로 뱀의 대가리를 뜯어내고 바로 그 대가리를 발로 밟았다.
  • “알아두세요. 뱀의 생명력은 아주 강하니까…”
  • 나는 도끼로 뱀에게 물린 그 남자의 상처에 열십자(十)를 긋고 힘껏 피를 짜냈다.
  • “뱀은 대가리가 떨어져도 방심하면 다시 사람을 물 수 있어요.”
  • 나는 손을 흔들며 일어섰다.
  • “피가 붉은 것을 보면 다행히 독사가 아니에요! 모두 걸을 때 발밑을 조심하세요. 독사를 밟으면 치료 약도 없는 상황에서 죽는 길밖에 없으니까!”
  • 나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 남자의 상처를 싸매주게 하고 다른 한 남자더러 그 남자를 부축하게 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 몇몇 여인의 발걸음이 점점 더디어졌다. 그녀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더니 나에게 얼굴을 돌리고 물었다.
  • “우리는… 퇴출해도 돼요?”
  • “물론 될 수 있죠!”
  • 나는 쌀쌀하게 웃었다.
  • “하지만 앞으로 먹을 것은 스스로 해결해요! 우리는 한가한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없으니까!”
  • “제기랄, 누가 감히 퇴출해!”
  • 말라깽이 남자가 몽둥이를 쳐들며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렸다!
  • 여인들은 흐느끼며 우리를 따라 계속 밀림 속을 누볐다. 눈이 유달리 예쁜 여인은 그냥 내 곁에 있었지만 나를 보는 눈길에 생각이 많은 듯했다.
  • 사람 수를 세어보니 모두 13명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몰래 생각을 굴렸다. 좀 있으면 몇 사람이나 남을지…
  • 과연 그랬다. 내가 그들에게 야외에서 생존하는 지식을 가르친 것은 그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데리고 밀림으로 들어가는 것은…
  • 그들의 운명을 하느님이 재판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비록 그들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동료의 고기를 먹은 것만으로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나는 그들의 신임을 얻으면서 그들을 데리고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만약 그들이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느님이 그들을 용서한 것이고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초목의 비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이렇게 하는 것이 사악한 짓이기는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인간은 정말 용서하기 어려웠다…
  • 내가 지키려는 사람은 여혜미랑 셋뿐이고 그녀들에게 나는 수호신이다. 그러니까 이런 지독한 일을 내가 직접 하면 했지 절대 그녀들이 손가락 하나 대게 해서는 안되었다…
  • 만약 하늘이 눈을 뜨지 못했다면 아예 내가 악마로 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