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1번룸의 높으신 분은 너무 두려웠다. 그동안 잠자코 있다가 이렇게 단 번에 하늘땅을 뒤집어 놓을 줄은 몰랐다.
이런 사람은 진호가 아니라 전체 진씨 가문도 맞설 힘이 없었다.
서울대병원 배후의 인물조차 경고를 받고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못하는데 진씨 가문 따위를 없애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도대체 누가 손을 쓴 건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진호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접촉한 사람이 얘기하길 만약 진호가 그 사람을 조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무조건 바로 알게 될 것이라 했다.
네가 구렁텅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구렁텅이도 너를 바라보고 있다.
진호는 그 이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서울대병원 정리를 마친 뒤 도강우는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그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침묵했다. 전화벨이 다시 울리자 도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친구인 장범준의 전화였다.
장범준은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데 이미 5-6년을 연락하지 앉았다. 하지만 도강우는 가평에 돌아온 뒤 제일 먼저 장범준과 접촉했다.
데릴사위로 손씨 가문에 들어간 장범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손지아는 뚱뚱하고 아주 강한 여자였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장범준은 중고 주택 판매 업계에서 일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중개업자였다. 사람이 무뚝뚝하고 솔직했던 탓에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매달 월급은 겨우 100만 원 정도였다.
“여보세요, 장범준.”
도강우가 전화를 받았다.
“강우야, 점심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는데 너도 참가할래?”
장범준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도강우는 바로 거절했다.
“나는 참가하지 않을게.”
“안돼, 너는 내 체면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야 돼. 반에서 가장 예뻤던 여자애도 오고 이경도 온대. 며칠 전에 나한테 연락해서 가평 팰리스의 집이 마음에 든다던데 내가 말솜씨가 없어서 거래에 실패할까 봐 그래. 너는 말재주가 좋으니 나를 도와 얘기 좀 해줘.”
도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평 팰리스는 이아귀가 개발한 것이잖아?
현재 시장가격이 거의 평 당 1억 6천만 원씩 하는데 전부 다 90평이 넘는 대형 평수 아파트였다. 집 한 채의 가격에 세금까지 더하면 가치가 수백억에 달했다.
게다가 그곳에는 한 채의 펜트하우스가 있는데 유일한 독채 별장인 그 집은 900평이 넘고 시장가격은 2200억에 달했다!
현재 가평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인 그 집은 작년에 막 인테리어를 마쳤고 여러 중개업자들의 판매 대상이기도 했다.
일단 팔기만 하면 커미션을 20억 받을 수 있었다!
“알았어.”
도강우는 이내 답을 했다.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바로 이춘추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집사, 가평 팰리스 펜트하우스 그 집 팔렸어요?”
“도 대표님, 아직 팔리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막 내부 인테리어를 마쳤는데 인테리어에만 200억이 들었습니다. 이천 선생께서 만약 대표님께서 돌아오시면 대표님 명의로 변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알았어요, 내 전화 기다려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장범준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강우야, 지금 시간 있으면 가평 팰리스 한번 올 수 있어? 이경이가 바로 집을 보고 싶대.”
도강우는 바로 동의하고 이내 택시 한 대를 잡고 빠르게 가평 팰리스로 향했다.
멀리서 양복 차림의 장범준이 이름표를 달고 입구에서 등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우야, 잠깐만 기다려. 이경이가 10분이면 도착한대.”
장범준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할아버지 치료비는 다 모았어?”
“다 모았어.”
장범준을 본 도강우는 아주 즐거웠다.
“미안해, 도움을 주지 못했네.”
장범준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목을 쳐다보던 도강우는 그의 목에 어렴풋이 남은 손톱 자국을 발견했다.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일 때문이야?”
도강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장범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부부사이에 사소한 마찰은 정상이지.”
도강우는 침묵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사이 자동차 클랙션 소리가 울려서 고개를 돌리자 BMW 760이 두 사람 앞에 멈춰섰다. 아르마니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차에서 내리고 뒤에는 예쁜 여자 두 명이 따라 내렸다.
그중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은 여자 한 명은 몸매가 늘씬하고 피부도 눈처럼 새하얬다.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아주 점잖고 화려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가장 예뻤던 조연미였다.
도강우를 본 그녀는 잠시 놀라더니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도강우, 오랜만이야.”
그녀는 전에 도강우와 스캔들이 나기도 했다.
다른 한 여자도 키가 훤칠했는데 1미터 75센티는 족히 되어보였고 들어가고 나올 데가 확실한 볼륨감 있는 몸매에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긴 머리가 어깨를 덮고 있었다. 도강우와 장범준을 본 그녀의 눈길이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향했다. 특히 장범준을 본 뒤 그녀는 경멸의 눈빛을 드러냈다.
도강우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어라, 도강우, 너도 있었네. 오랜만이야.”
정장을 입는 남자가 바로 이경이었다.
성공한 인사의 모습인 그는 손목에 골드 롤렉스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일거수일투족에서 잘난 척하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오랜만이네, 이경.”
도강우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경은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장범준에게 눈길을 돌렸다.
“장범준, 집주인과 연락했어?”
장범준은 약간 긴장한 듯 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입을 열었다.
“연락했어, 집은 90평이고 가격은 170억이야…”
헉.
조연미와 몸매 좋은 여자 모두 숨을 들이켰다.
이 나라에서 단숨에 200억을 들여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경아, 너 지금 무슨 사업하는데 200억짜리 집을 사…”
조연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경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그만 사업일 뿐이야.”
비록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그의 눈에 비친 의기양양함은 도저히 감춰지지 않았다.
키가 훤칠한 여자는 더더욱 오버하며 말했다.
“너무 대단해요. 우리 중에 이 대표님이 제일 잘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경은 훤칠한 여자를 보며 말했다.
“손현아, 너도 뒤지지 않잖아. 곧 우경 제작사와 계약을 앞두고 있으니 앞으로 대스타가 될 거야.”
손현아라고 부르는 훤칠한 여자가 애교를 부리며 웃었다.
“그래도 이 대표님이 많이 도와줘야지. 누군가는 아직도 중개업자나 하고 참…”
손현아는 말을 하며 장범준과 도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경이 담담하게 웃었다.
“가자, 집 보러 가자.”
장범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사실 그는 이 거래를 맡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경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거들먹거리기 좋아하고 안하무인이었다.
하지만 거래가 성사된다면 커미션이 너무 높았다.
빠르게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아파트를 가로지나다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유일한 독채 별장이자 900평이 되는 그곳은 정원에 조경산이 있고 다리 밑으로 시냇물까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