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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킹덤 9층

  • 프런트 직원이 한 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서 사장님. 그게요, 천용 갤러리의 한 임원 분께서 9층 룸을 사용하고 싶으시다고…”
  • “방천용 본인이야?”
  • 전화기 너머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 프런트 직원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 “아니에요, 그냥 임원이에요.”
  • “꺼지라고 해. 천용 갤러리에서도 방천용 본인만이 9층을 사용할 자격이 있어. 겨우 임원 주제에 무슨 자격이 있어?”
  • 프런트 직원이 전화를 끊고 미안해하며 이경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저희 사장님이 얘기하시길 방천용 대표님 본인만이 9층에 올라가실 자격이 있다고 하니 손님께서는 다른 곳을 예약하세요.”
  • 이경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 “정 안되면 우리 다른 호텔에 가자, 꼭 여기여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 누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 “맞아, 이경아. 오늘 우리 지난날을 추억하러 온 건데 흥을 깨뜨릴 필요 없잖아.”
  • 손현아도 입을 열었다.
  • 그녀도 임다현의 명성을 들어본 적 있고 9층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 “우리 그냥 다른 곳 가자.”
  • 장범준도 나지막하게 의견을 보탰다. 그는 이경이 기분이 좋지 않을까 두려웠다. 이경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의 이번 거래는 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 억울함을 당하고 비굴하게라도 거래를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무슨 상관이 있을까?
  • 이게 바로 장범준의 생각이었다.
  • “지금 나 무시해?”
  • 이경은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조롱섞인 눈빛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 그가 오늘 동창회에 온 목적은 바로 자랑하러 온 것이었다.
  • 손현아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 “네가 뭔데 끼어들어?”
  • “겨우 중개업자인 주제에. 듣기 싫게 얘기하면 한 마리 개인 주제에 뭘 믿고 입을 나불거려?”
  • 조연미가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
  • 다른 동창들도 잇달아 장범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 “맞아, 네가 왜 끼어들어? 조용히 네 장사나 하면 안 돼”
  • 장범준은 순간 얼굴이 흙빛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 심지어 프런트 여직원까지도 장범준을 동정하듯 바라보았다.
  • 가난한 것이 죄였다.
  • 장범준이 왜 이토록 질책을 받을까?
  • 바로 가난하기 때문에, 지위가 없기 때문이었다.
  •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곳에서 떠들지 말아주세요.”
  • 프런트 직원이 귀띔했다.
  • 모든 사람이 장범준을 질책하며 자신을 옹호하는 것을 본 이경은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 도강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장범준의 어깨를 두드린 뒤 이경을 바라보았다.
  • “만약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9층에 올라가면 그 집을 사고 장범준에게 커미션을 줄 거야?”
  • 이경은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껄껄 웃었다.
  • “도강우, 너 지금 장난해? 네가 우리를 데리고 9층에 올라간다고? 너 정신 나갔어?”
  • 손현아도 경멸과 조롱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러니까. 보아하니 일반 룸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데 우리를 데리고 9층에 올라간다고? 허세 부리고 있네.”
  • “오만하여 눈에 보이는 게 없고 허영심이 가득찬 거지.”
  • 조연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 “그래, 도강우. 네가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면 그렇게 해 봐.”
  • 돌아서서 도강우를 쳐다보는 이경의 눈에 여러가지 감정이 담겨있었다.
  • 경멸, 무시, 비웃음, 조롱.
  • “어떻게 할 거야?”
  • 도강우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 “네가 우리를 데리고 9층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내가 그 집을 사고 장범준에게 커미션을 줄게, 두배!”
  • 두배라면 거의 3억 5천이 되는 금액이었다!
  • 장범준은 걱정되는 듯 도강우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 “강우야, 나 이 거래 안 해도 돼. 우리 가자.”
  • 도강우는 다시 한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 “괜찮아, 내가 할게.”
  • 이어 그는 휴대폰을 꺼내고 임다현의 번호를 눌렀다. 번호는 이춘추가 그의 휴대폰에 보낸 것이었다.
  • “누구세요?”
  • 전화기 너머에서 나른하고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 “나 도강우야.”
  • 상대가 잠시 침묵했지만 도강우는 그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들어낼 수 있었다.
  • “도강우, 당신 지금 어디야?”
  • 임다현의 달콤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그게 말이야. 오늘 내가 동창들과 모임이 있어서 지금 하얏트 호텔 1층에 있는데 지금은 룸을 예약할 수 없다고 하네. 그래서 9층 룸을 오픈해 줬으면 하는데, 가능할까?”
  • “그럼 가능하지, 내가 바로 준비시킬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 전화를 끊은 도강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 “몇 분 만 기다리면 바로 사람이 온대.”
  • 이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 “일부러 수작 부리네. 네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9층에 데리고 가는지 한번 봐야겠어!”
  • 손현아와 조연미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도강우를 바보를 보듯 쳐다보았다.
  • 천용 갤러리의 회장도 9층에 올라가려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네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한다고? 누가 믿어?
  • 프런트 직원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우람한 젊은 남자 한 명이 빠르게 걸어왔다. 서른네댓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외모가 아주 무서웠고 빡빡 민 머리 전체에 검은색 연꽃 문신을 했는데 딱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 서도영이었다!
  • 하얏트 호텔의 1인자이자 임다현의 충실한 신하였다.
  • 그는 번개같은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사람들은 그의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에 마치 칼날이 자신의 심장을 겨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어느 분이 도 대표님이세요?”
  • 서도영이 묻자 도강우가 차분하게 답했다.
  • “나야.”
  • “저를 따라 9층으로 올라가시죠, 오늘 여러분들을 위해 룸을 오픈해 드립니다”
  • 비록 서도영이 예의를 차린 말투로 말했지만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도강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 의심과 떠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무슨 상황이야?
  • 설마 도강우가 정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능력자인 걸까?
  • 그곳은 킹덤 9층이잖아, 가평 최고 갑부조차 들어가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그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한다고?
  • 이경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손현아와 조연미는 입을 틀어막은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설마 도강우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능력자야?”
  • “도강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 봐.”
  • “따라오시죠.”
  • 서도영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채 서도영을 따라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킹덤 9층에 도착한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이게 바로 전설속의 킹덤 9층이야?
  • 그야말로 대형 유흥업소가 따로 없었고 벽에는 거대한 풍경화가 걸려 있었다. 이경은 단번에 당나라 때의 진품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3년 전에 77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경매가 됐는데 킹덤 9층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손현아와 조연미는 예쁘장한 눈동자로 도강우를 빤히 쳐다보며 그를 간파하려 노력했다.
  • 하지만 도강우는 줄곧 아주 평온했다.
  • “네가 한 약속 지킬 수 있겠어?”
  • 도강우가 이경을 쳐다보았다.
  • 장범준은 지금까지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아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내가 아는 도강우가 맞는 거야?
  • 이경은 약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한 말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다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 그는 여전히 달갑지 않았다.
  • 천용 갤러리가 시장 가치가 수조원에 달하는 충분히 강한 회사인데도 방천용 한 사람만 킹덤 9층 갤러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 그런데 도강우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다니 마음속 격차가 그를 괴롭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