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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신분증 챙겼어?

  • 이아귀는 그날 밤 바로 여장훈을 불러와서 그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 “이거 봐, 이런 걸 바로 프로라고 하는 거야. 하루 사이에 임다현을 꼬시고 이제는 류현경도 꼬셨잖아.”
  • 머리가 헝클어진 여장훈은 잠이 덜 깬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 “이 대표님, 한밤중에 저를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까…”
  • 이아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있겠어?”
  • “…”
  • ‘왜 전에는 가평 최고 갑부가 이토록 스캔들에 관심이 많은지 몰랐을까?’
  • 이아귀는 똑바로 앉더니 갑자기 흥이 나서 흥분하며 말했다.
  • “장훈아, 네가 보기에는 도 대표님이 류현경과 잤을 것 같아?”
  • 진짜 너무하네!
  • ‘전에도 도강우가 임다현과 잤을지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답했더니 불만 가득하게 내가 함부로 얘기한다고 하더니. 그럼 이번 답은 만족스러워할지 모르겠네.’
  • “아마도 잤을 거예요.”
  • 여장훈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분명 잤을 거예요.”
  • 이아귀는 순간 불만스러워했다.
  • “두 사람이 잤는지 아닌지 너한테 얘기하지도 않았을 텐데 네가 어떻게 알아? 허튼 소리하네.”
  • “…”
  • 일어설 힘도 부족할 70대의 노인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괜찮고?
  • “저기 이 대표님,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 “얼른 꺼져.”
  • 이아귀가 손을 휘휘 저었다.
  • 문을 나선 여장훈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 깊은 잠에 못 드는 그가 모처럼 달게 자고 있었는데 이아귀의 전화에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불려온 것이다!
  • 어두운 가로등 밑, 류현경은 두 손으로 도강우의 허리를 감싸고 그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 “강우 오빠, 나 이 대표랑 합작해서 가평에 영화 제작사 하나 설립했어. 오빠가 최대 주주이니 며칠 뒤에 구경하러 와. 이름은 우경 제작사이고 투자금은 200억이야. 최근에 대량의 연예인들과 계약을 맺어야 하니 오빠가 와서 봐줘.”
  • 도강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 그는 잠시 멈칫하다 계속 말을 이었다.
  • “네가 알아서 해, 그런데 낭비할 시간이 없어.”
  • 류현경은 매력적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과 모든 표정은 전부 다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도강우의 손을 잡았다.
  • “강우 오빠, 전에는 고마웠어. 오빠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 도강우는 말없이 오른손을 빼내고 평온하게 말했다.
  • “당연한 거야.”
  • 류현경의 눈시울이 갑자기 빨개졌다.
  • “다시 만났을 때 오빠가 이미 결혼했을 줄은 몰랐어.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나도 오빠랑 결혼할 수 있는데.”
  • “너희 집 어르신이 동의하겠어? 그의 마음속에 그는 벼슬이고 나는 영원히 강도인데.”
  • 류현경이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 “그는 이미 잘못했다고 얘기했어.”
  • 도강우는 말이 없었다.
  • 류현경의 예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도강우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뒤에야 류현경이 입을 열었다.
  • “그녀는… 어떤 사람이야? 오빠 눈에 들었다는 건 분명 평범하지는 않겠지.”
  • 류현경이 얘기하는 그녀는 당연히 유나연이었다.
  • 류현경은 감히 유나연을 조사할 수 없었다.
  • 누가 감히 도 대표의 아내를 조사할 수 있을까,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모를까.
  • 도강우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부드럽고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본 류현경은 가슴이 욱씬거렸다.
  • 도강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녀는… 나에게 있어 부드럽고 정숙하며 사리에 밝고 주관이 있고 독립적인 사람이야. 능력 또한 있지. 그리고 기특한 건 아주 조용하다는 거야.”
  • 류현경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 “그렇게 좋은 사람이야?”
  • “당연히 결점도 있어, 가족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거야. 가끔은 가족을 나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 그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야.”
  • 도강우는 탄식했다.
  • 만약 유나연이 남동생 뒷바라지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분명 두 사람의 금슬이 훨씬 더 좋았겠지?
  • “그녀를 사랑해?”
  • 류현경이 물었다.
  • 멍하니 있던 도강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당연히 사랑하지. 그녀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 중 나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여자야.”
  • 류현경은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고 씁쓸함이 몰려왔다. 다시 조용하게 한숨을 쉰 그녀는 이내 쑥스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배배 꼬며 도강우를 바라보았다.
  • “강우 오빠, 시간이 이르지 않은데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갈 거야?”
  • 도강우가 멈칫했다.
  • “무슨 뜻이야?”
  • “나 신분증 챙겼어.”
  • 나지막하게 말하는 류현경은 귀까지 빨개질 정도였다. 고개를 들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도강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애정이 폭발할 듯했다.
  • “신분증을 챙겼다고? 뭐 하려고?”
  • 도강우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 류현경이 이를 꽉 깨물고 답했다.
  • “호텔에…”
  • 도강우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 류현경은 아주 예쁘고 우아했다. 도강우 역시 정상적인 남자였던 것이다.
  • 하지만 도강우는 그렇게 하면 유나연과 류현경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돌아가.”
  • 류현경은 조금 억울했다.
  • 갑자기 도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유나연의 전화였다.
  • “나 집에 돌아가야 해.”
  • 도강우가 말하자 류현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 빠르게 지나가는 택시에 타고 있던 홍이현은 가로등 밑에 있는 남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 “저 사람 왠지 도강우 같은데?”
  • “정말 비슷하네.”
  • 유건희는 말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 “저 여자 몸매 진짜 죽이네.”
  • 어두운 가로등 탓에 여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 홍이현은 불쾌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 “몸매가 좋은 여자들 중에 아가씨가 얼마나 많은데.”
  •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도강우는 아파트에 돌아왔고 막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순간 유나연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호도 옆에 있었다.
  • 도강우를 본 유나연이 빠르게 걸어왔다.
  • “2억 어디서 났어?”
  • 도강우는 일단 진호를 차갑게 훑어보았다.
  •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나연한테서 멀리 떨어져.”
  •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살기가 번뜩였다.
  • 진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 “이거 받아.”
  • 도강우는 임다현이 사인한 지불 계약서를 유나연에게 건넸다.
  • 계약서를 훑어본 유나연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 “너 임다현 구해줬어?”
  • “그래. 물에 빠졌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가 구해줬어. 수영할 줄 모르더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2억을 줬어.”
  • 도강우가 가져온 돈이 출처가 분명하지 못할까 걱정했던 유나연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 “2억은 너무 많아, 다음부터는 받지 마.”
  • 도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의 목숨이면 2억이 아깝지 않아.”
  • 임다현의 신분을 떠올린 유나연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몸값이 조 단위인 사람이 겨우 2억을 신경쓸까? 잠시 머뭇거리던 유나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자리 찾을지 생각했어?”
  • “일단 이렇게 지낼 거야.”
  • 유나연은 순간 또 도강우가 원망스러워졌다.
  • “일자리를 찾지 않으면 안돼.”
  • 진호가 그때 마침 입을 열었다.
  • “우리 회사에 가서 출근하는 건 어때? 의약품 영업 대표가 되면 연봉2천만은 벌 텐데.”
  • 유나연은 감격해서 진호를 바라보고 다시 기대에 찬 눈길로 도강우를 바라보며 그가 동의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