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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펜트하우스

  • 전화를 끊은 진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 천자 1번룸의 높으신 분은 너무 두려웠다. 그동안 잠자코 있다가 이렇게 단 번에 하늘땅을 뒤집어 놓을 줄은 몰랐다.
  • 이런 사람은 진호가 아니라 전체 진씨 가문도 맞설 힘이 없었다.
  • 서울대병원 배후의 인물조차 경고를 받고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못하는데 진씨 가문 따위를 없애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 도대체 누가 손을 쓴 건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진호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 그가 접촉한 사람이 얘기하길 만약 진호가 그 사람을 조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무조건 바로 알게 될 것이라 했다.
  • 네가 구렁텅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구렁텅이도 너를 바라보고 있다.
  • 진호는 그 이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서울대병원 정리를 마친 뒤 도강우는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그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침묵했다. 전화벨이 다시 울리자 도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친구인 장범준의 전화였다.
  • 장범준은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데 이미 5-6년을 연락하지 앉았다. 하지만 도강우는 가평에 돌아온 뒤 제일 먼저 장범준과 접촉했다.
  • 데릴사위로 손씨 가문에 들어간 장범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 손지아는 뚱뚱하고 아주 강한 여자였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장범준은 중고 주택 판매 업계에서 일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중개업자였다. 사람이 무뚝뚝하고 솔직했던 탓에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매달 월급은 겨우 100만 원 정도였다.
  • “여보세요, 장범준.”
  • 도강우가 전화를 받았다.
  • “강우야, 점심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는데 너도 참가할래?”
  • 장범준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 도강우는 바로 거절했다.
  • “나는 참가하지 않을게.”
  • “안돼, 너는 내 체면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야 돼. 반에서 가장 예뻤던 여자애도 오고 이경도 온대. 며칠 전에 나한테 연락해서 가평 팰리스의 집이 마음에 든다던데 내가 말솜씨가 없어서 거래에 실패할까 봐 그래. 너는 말재주가 좋으니 나를 도와 얘기 좀 해줘.”
  • 도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 가평 팰리스는 이아귀가 개발한 것이잖아?
  • 현재 시장가격이 거의 평 당 1억 6천만 원씩 하는데 전부 다 90평이 넘는 대형 평수 아파트였다. 집 한 채의 가격에 세금까지 더하면 가치가 수백억에 달했다.
  • 게다가 그곳에는 한 채의 펜트하우스가 있는데 유일한 독채 별장인 그 집은 900평이 넘고 시장가격은 2200억에 달했다!
  • 현재 가평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인 그 집은 작년에 막 인테리어를 마쳤고 여러 중개업자들의 판매 대상이기도 했다.
  • 일단 팔기만 하면 커미션을 20억 받을 수 있었다!
  • “알았어.”
  • 도강우는 이내 답을 했다.
  •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바로 이춘추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 집사, 가평 팰리스 펜트하우스 그 집 팔렸어요?”
  • “도 대표님, 아직 팔리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막 내부 인테리어를 마쳤는데 인테리어에만 200억이 들었습니다. 이천 선생께서 만약 대표님께서 돌아오시면 대표님 명의로 변경하라고 하셨습니다.”
  • “알았어요, 내 전화 기다려요.”
  • 얼마 지나지 않아 장범준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 “강우야, 지금 시간 있으면 가평 팰리스 한번 올 수 있어? 이경이가 바로 집을 보고 싶대.”
  • 도강우는 바로 동의하고 이내 택시 한 대를 잡고 빠르게 가평 팰리스로 향했다.
  • 멀리서 양복 차림의 장범준이 이름표를 달고 입구에서 등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강우야, 잠깐만 기다려. 이경이가 10분이면 도착한대.”
  • 장범준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맞아, 할아버지 치료비는 다 모았어?”
  • “다 모았어.”
  • 장범준을 본 도강우는 아주 즐거웠다.
  • “미안해, 도움을 주지 못했네.”
  • 장범준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 그의 목을 쳐다보던 도강우는 그의 목에 어렴풋이 남은 손톱 자국을 발견했다.
  •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일 때문이야?”
  • 도강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 장범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 “부부사이에 사소한 마찰은 정상이지.”
  • 도강우는 침묵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침묵하는 사이 자동차 클랙션 소리가 울려서 고개를 돌리자 BMW 760이 두 사람 앞에 멈춰섰다. 아르마니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차에서 내리고 뒤에는 예쁜 여자 두 명이 따라 내렸다.
  • 그중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은 여자 한 명은 몸매가 늘씬하고 피부도 눈처럼 새하얬다.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아주 점잖고 화려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 그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가장 예뻤던 조연미였다.
  • 도강우를 본 그녀는 잠시 놀라더니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 “도강우, 오랜만이야.”
  • 그녀는 전에 도강우와 스캔들이 나기도 했다.
  • 다른 한 여자도 키가 훤칠했는데 1미터 75센티는 족히 되어보였고 들어가고 나올 데가 확실한 볼륨감 있는 몸매에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긴 머리가 어깨를 덮고 있었다. 도강우와 장범준을 본 그녀의 눈길이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향했다. 특히 장범준을 본 뒤 그녀는 경멸의 눈빛을 드러냈다.
  • 도강우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 “어라, 도강우, 너도 있었네. 오랜만이야.”
  • 정장을 입는 남자가 바로 이경이었다.
  • 성공한 인사의 모습인 그는 손목에 골드 롤렉스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일거수일투족에서 잘난 척하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 “오랜만이네, 이경.”
  • 도강우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 이경은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장범준에게 눈길을 돌렸다.
  • “장범준, 집주인과 연락했어?”
  • 장범준은 약간 긴장한 듯 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입을 열었다.
  • “연락했어, 집은 90평이고 가격은 170억이야…”
  • 헉.
  • 조연미와 몸매 좋은 여자 모두 숨을 들이켰다.
  • 이 나라에서 단숨에 200억을 들여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 “이경아, 너 지금 무슨 사업하는데 200억짜리 집을 사…”
  • 조연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 이경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거렸다.
  • “조그만 사업일 뿐이야.”
  • 비록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그의 눈에 비친 의기양양함은 도저히 감춰지지 않았다.
  • 키가 훤칠한 여자는 더더욱 오버하며 말했다.
  • “너무 대단해요. 우리 중에 이 대표님이 제일 잘 나가는 거 아니에요?”
  • 이경은 훤칠한 여자를 보며 말했다.
  • “손현아, 너도 뒤지지 않잖아. 곧 우경 제작사와 계약을 앞두고 있으니 앞으로 대스타가 될 거야.”
  • 손현아라고 부르는 훤칠한 여자가 애교를 부리며 웃었다.
  • “그래도 이 대표님이 많이 도와줘야지. 누군가는 아직도 중개업자나 하고 참…”
  • 손현아는 말을 하며 장범준과 도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 이경이 담담하게 웃었다.
  • “가자, 집 보러 가자.”
  • 장범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 사실 그는 이 거래를 맡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경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거들먹거리기 좋아하고 안하무인이었다.
  • 하지만 거래가 성사된다면 커미션이 너무 높았다.
  • 빠르게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아파트를 가로지나다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유일한 독채 별장이자 900평이 되는 그곳은 정원에 조경산이 있고 다리 밑으로 시냇물까지 흘렀다.
  • “이게 바로 전설 속의 가평 팰리스 펜트하우스야?”
  • 조연미와 손현아는 부러움의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