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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프로라는 건?

  • 왠지 우리 강우 오빠 같네…
  • ‘그럴 리 없는데. 강우 오빠는 자전거 탈 줄 모르잖아, 게다가 자전거에 임다현을 태울 리도 없잖아.’
  • 류현경은 바로 댓글을 달았다.
  • “축하해, 다현아.”
  • 임다현은 웃는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대신했다.
  • 이아귀가 댓글로 엄지를 치켜든 이모티콘을 보내자 임다현은 얼굴을 가린 표정을 답장으로 보냈다.
  • “도 대표님은 역시 도 대표님이야. 이거 봐, 이런 게 바로 프로인 거지!”
  • 이아귀는 휴대폰의 사진을 가리키며 여장훈에게 말했다.
  • “신분을 회복한 지 하루만에 바로 임다현 씨를 손에 넣으셨잖아.”
  • 여장훈은 입을 헤벌리고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아귀가 갑자기 신나서 물었다.
  • “두 사람이 잤을 것 같아?”
  • 여장훈은 멍하니 있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 “아닐 것 같…아요. 임다현이 겉으로 보기에는 오픈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보수적이에요.”
  • “그들이 안 잤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잤다 해도 너에게 얘기하지 않을 텐데.”
  • 여장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한 시간 뒤, 임다현은 한숨을 쉬며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 “됐어, 도착했어.”
  • 한 사거리에서 세 대의 차가 멀리서 빠르게 달려왔다. 정장 차림에 무선 이어폰을 착용한 경호원이 주머니 하나를 들고 왔다. 안에는 현금 2억이 들어있었다.
  • “연락처 하나 남겨.”
  • “괜찮아, 서로 정산이 끝났으니까.”
  • 도강우는 현금을 받아 뒷좌석에 묶은 뒤 자전거를 타고 멀어졌다. 임다현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 도강우는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유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어디야? 나 저녁에 좀 늦게 돌아갈 것 같아.”
  •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 도강우가 미간을 찌푸린 채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 이 여자 설마 진호 만나러 간 건 아니겠지?
  • 그 생각이 든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평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 콘서트는 9시에 시작이었고 지금은 이미 8시 반이 넘었다.
  • 류현경이 왔다는 소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전부 다 가평시에서 내로라하는 고위 권력자들이었다. 때문에 입구에는 럭셔리 차들이 가득 멈춰서 있고 수십 억짜리 럭셔리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 도강우가 자전거를 타고 비틀거리며 도착했다.
  • 도강우는 멀리서 유나연이 롱 에디션 롤스로이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오늘 밤 어깨를 드러낸 베이지색의 롱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피부가 백옥처럼 희고 아주 부드럽고 기품 있어 보였다.
  • 진호는 옆에서 지극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반듯한 정장을 입고 한 걸음 밖에서 가볍게 인사를 하는 그는 아주 기품 있어 보였다.
  • 도강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 그녀에게 뭐라고 했던가?
  • 이어 럭셔리카에서 유건희와 홍이현도 따라 내렸다.
  • 차를 좋아하는 유건희는 눈앞에 가득한 럭셔리카들을 보고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 “럭셔리카가 이렇게 많다니, 나도 한 대 갖고 싶네.”
  • 여자친구 홍이현도 흥분해서 구경하다 갑자기 도강우를 발견했다.
  • “저 사람 도강우 아냐?”
  • 유건희가 시선을 돌리자 정말 도강우가 자전거에 탄 채 한 쪽 발로 바닥을 짚고 차갑게 그들을 바라고 있었다.
  • 유나연은 가슴이 덜컹하여 다급하게 걸어왔다.
  • “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
  • 도강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 “왜, 내가 흥을 깨서 기분이 안 좋아?”
  • 고개를 저으려던 유나연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했다.
  • “너 지금 미행한 거야? 도강우, 나를 믿지 못해서 그래? 왜 나를 미행해? 설마 네 마음속에서 나는 그토록 형편없는 여자야?”
  • 그 순간 유나연은 도강우에게 더없이 실망했다.
  • 도강우의 눈빛에서 더 이상 젊은 사람이 갖고 있어야 할 빛을 보아내지 못한 그녀는 마치 그가 자포자기하고 일부러 힘든 척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 도강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부부 사이에 응당 솔직해야 하는 거 아냐?”
  • “그럼 내가 진호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야?”
  • 유나연은 눈시울이 빨개져서 도강우를 쳐다보았다.
  • “그럼 여긴 왜 왔어, 내가 병원에서 뭐라고 했는데?”
  • 도강우도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
  • “진호가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서 그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애매한 태도로 거절하지 않는 여자야!”
  • 처남 유건희가 갑자기 걸어와 도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 “쯧쯧쯧, 아이고, 도 사장님 아니십니까. 자전거를 타고 오셨나 봐요.”
  • 도강우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 처남만 아니었으면 진작 저 놈의 머리통을 비틀어 요강으로 썼을 것이다.
  • “멍청하게 굴지 말고 빨리 이혼해요.”
  • 유건희가 롱 에디션 롤스로이스를 가리켰다.
  • “직접 봐요, 저기는 진호형의 차이고 이건 당신의 차인데 심지어 자전거네요? 비교가 되겠어요? 만약 우리 누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응당 그녀가 떠날 수 있게 놓아줘야죠. 남자가 돈도 없으면서 무슨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해요!”
  • 여자를 홀리는 법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를 꼬시는 건 더 도가 튼 진호는 유건희 같은 사람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 유나연의 해결책이 유건희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건희를 데리고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며 비싼 건 전부 사주었다. 옷 한 벌에 3-4천만 원, 시계 하나도 몇 천만 원이었다. 단 하 루만에 유건희의 소비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유건희로 하여금 자신도 돈 많은 재벌 2세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 검소한 사람이 사치해지는 건 쉽지만 사치를 부리던 사람이 검소해지는 건 어려웠다. 원래도 빈둥빈둥 놀던 유건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 도강우는 고개를 들고 유건희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 “꺼져!”
  • 유나연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 “건희는 내 동생이야…”
  • 도강우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 “네 동생, 네 동생. 하루 종일 네 동생만 알고 내 생각은 해 본 적 있어?”
  • 유나연은 말없이 도강우의 눈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 “도강우, 나 힘들어. 너는 먼저 집에 돌아가.”
  • 진호는 먼 곳에 서서 배시시 웃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 유건희가 도강우에게 노발대발했다.
  • “도강우 씨, 빨리 방법을 강구해서 1억 갚을 생각이나 해요. 허나 지금 당신 꼴을 보니 평생 갚지 못할 것 같네요! 1억이라고요, 내 시계 하나 값이에요!”
  • 이어 그는 도강우 자전거 뒷좌석에 있는 주머니를 툭툭 찼다.
  • “어쭈, 쓰레기 줍는 거예요? 평생 주워서 1억 모으기나 하겠어요?”
  • 그는 손목에 있는 파텍 필립 시계를 들어올리고 도강우 눈앞에 내밀고 흔들었다.
  • 사람들의 시선이 도강우의 뒷좌석에 있는 흰색 주머니에 향했다. 홍이현은 입을 가리고 몰래 웃으며 경멸 가득한 눈빛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 자전거에서 내린 도강우는 진호에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 “너, 이리 와.”
  • 진호는 아주 예의 바른 듯 행동하며 침착하게 걸어왔다.
  • “무슨 조언이라도 하시게?”
  •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도강우를 바라보았다. 도강우가 그를 때린다 해도 그는 두렵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점잖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여 도강우와 차이를 보여줘야 했다.
  • “여기 2억이니까 유나연에게서 멀리 떨어져.”
  • 도강우는 주머니를 들어 진호의 발치에 휙 던졌다.
  • 진호가 껄껄 웃었다.
  • “지금 나랑 장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