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 없는데. 강우 오빠는 자전거 탈 줄 모르잖아, 게다가 자전거에 임다현을 태울 리도 없잖아.’
류현경은 바로 댓글을 달았다.
“축하해, 다현아.”
임다현은 웃는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대신했다.
이아귀가 댓글로 엄지를 치켜든 이모티콘을 보내자 임다현은 얼굴을 가린 표정을 답장으로 보냈다.
“도 대표님은 역시 도 대표님이야. 이거 봐, 이런 게 바로 프로인 거지!”
이아귀는 휴대폰의 사진을 가리키며 여장훈에게 말했다.
“신분을 회복한 지 하루만에 바로 임다현 씨를 손에 넣으셨잖아.”
여장훈은 입을 헤벌리고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아귀가 갑자기 신나서 물었다.
“두 사람이 잤을 것 같아?”
여장훈은 멍하니 있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닐 것 같…아요. 임다현이 겉으로 보기에는 오픈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보수적이에요.”
“그들이 안 잤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잤다 해도 너에게 얘기하지 않을 텐데.”
여장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 시간 뒤, 임다현은 한숨을 쉬며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됐어, 도착했어.”
한 사거리에서 세 대의 차가 멀리서 빠르게 달려왔다. 정장 차림에 무선 이어폰을 착용한 경호원이 주머니 하나를 들고 왔다. 안에는 현금 2억이 들어있었다.
“연락처 하나 남겨.”
“괜찮아, 서로 정산이 끝났으니까.”
도강우는 현금을 받아 뒷좌석에 묶은 뒤 자전거를 타고 멀어졌다. 임다현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도강우는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유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야? 나 저녁에 좀 늦게 돌아갈 것 같아.”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도강우가 미간을 찌푸린 채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이 여자 설마 진호 만나러 간 건 아니겠지?
그 생각이 든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평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콘서트는 9시에 시작이었고 지금은 이미 8시 반이 넘었다.
류현경이 왔다는 소식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전부 다 가평시에서 내로라하는 고위 권력자들이었다. 때문에 입구에는 럭셔리 차들이 가득 멈춰서 있고 수십 억짜리 럭셔리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도강우가 자전거를 타고 비틀거리며 도착했다.
도강우는 멀리서 유나연이 롱 에디션 롤스로이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오늘 밤 어깨를 드러낸 베이지색의 롱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피부가 백옥처럼 희고 아주 부드럽고 기품 있어 보였다.
진호는 옆에서 지극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반듯한 정장을 입고 한 걸음 밖에서 가볍게 인사를 하는 그는 아주 기품 있어 보였다.
도강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에게 뭐라고 했던가?
이어 럭셔리카에서 유건희와 홍이현도 따라 내렸다.
차를 좋아하는 유건희는 눈앞에 가득한 럭셔리카들을 보고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럭셔리카가 이렇게 많다니, 나도 한 대 갖고 싶네.”
여자친구 홍이현도 흥분해서 구경하다 갑자기 도강우를 발견했다.
“저 사람 도강우 아냐?”
유건희가 시선을 돌리자 정말 도강우가 자전거에 탄 채 한 쪽 발로 바닥을 짚고 차갑게 그들을 바라고 있었다.
유나연은 가슴이 덜컹하여 다급하게 걸어왔다.
“네가 여긴 어떻게 왔어?”
도강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왜, 내가 흥을 깨서 기분이 안 좋아?”
고개를 저으려던 유나연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했다.
“너 지금 미행한 거야? 도강우, 나를 믿지 못해서 그래? 왜 나를 미행해? 설마 네 마음속에서 나는 그토록 형편없는 여자야?”
그 순간 유나연은 도강우에게 더없이 실망했다.
도강우의 눈빛에서 더 이상 젊은 사람이 갖고 있어야 할 빛을 보아내지 못한 그녀는 마치 그가 자포자기하고 일부러 힘든 척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강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부부 사이에 응당 솔직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럼 내가 진호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야?”
유나연은 눈시울이 빨개져서 도강우를 쳐다보았다.
“그럼 여긴 왜 왔어, 내가 병원에서 뭐라고 했는데?”
도강우도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
“진호가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서 그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애매한 태도로 거절하지 않는 여자야!”
처남 유건희가 갑자기 걸어와 도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쯧쯧쯧, 아이고, 도 사장님 아니십니까. 자전거를 타고 오셨나 봐요.”
도강우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처남만 아니었으면 진작 저 놈의 머리통을 비틀어 요강으로 썼을 것이다.
“멍청하게 굴지 말고 빨리 이혼해요.”
유건희가 롱 에디션 롤스로이스를 가리켰다.
“직접 봐요, 저기는 진호형의 차이고 이건 당신의 차인데 심지어 자전거네요? 비교가 되겠어요? 만약 우리 누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응당 그녀가 떠날 수 있게 놓아줘야죠. 남자가 돈도 없으면서 무슨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해요!”
여자를 홀리는 법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를 꼬시는 건 더 도가 튼 진호는 유건희 같은 사람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유나연의 해결책이 유건희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건희를 데리고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며 비싼 건 전부 사주었다. 옷 한 벌에 3-4천만 원, 시계 하나도 몇 천만 원이었다. 단 하 루만에 유건희의 소비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유건희로 하여금 자신도 돈 많은 재벌 2세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검소한 사람이 사치해지는 건 쉽지만 사치를 부리던 사람이 검소해지는 건 어려웠다. 원래도 빈둥빈둥 놀던 유건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도강우는 고개를 들고 유건희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꺼져!”
유나연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건희는 내 동생이야…”
도강우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네 동생, 네 동생. 하루 종일 네 동생만 알고 내 생각은 해 본 적 있어?”
유나연은 말없이 도강우의 눈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도강우, 나 힘들어. 너는 먼저 집에 돌아가.”
진호는 먼 곳에 서서 배시시 웃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유건희가 도강우에게 노발대발했다.
“도강우 씨, 빨리 방법을 강구해서 1억 갚을 생각이나 해요. 허나 지금 당신 꼴을 보니 평생 갚지 못할 것 같네요! 1억이라고요, 내 시계 하나 값이에요!”
이어 그는 도강우 자전거 뒷좌석에 있는 주머니를 툭툭 찼다.
“어쭈, 쓰레기 줍는 거예요? 평생 주워서 1억 모으기나 하겠어요?”
그는 손목에 있는 파텍 필립 시계를 들어올리고 도강우 눈앞에 내밀고 흔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도강우의 뒷좌석에 있는 흰색 주머니에 향했다. 홍이현은 입을 가리고 몰래 웃으며 경멸 가득한 눈빛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자전거에서 내린 도강우는 진호에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너, 이리 와.”
진호는 아주 예의 바른 듯 행동하며 침착하게 걸어왔다.
“무슨 조언이라도 하시게?”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도강우를 바라보았다. 도강우가 그를 때린다 해도 그는 두렵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점잖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여 도강우와 차이를 보여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