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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산병원 나 교수

  • 불과 30분 만에 초인종이 울리고 곧이어 빳빳하게 다려진 양복 차림에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노인 한 명이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 도강우를 본 노인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 “도 대표님을 뵙겠습니다. 저는 대표님의 충실한 집사인 이아귀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가평에서 대표님의 모든 일상생활을 책임지겠습니다.”
  • 노인은 무척이나 흥분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 대표 본인을 처음 직접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당신이 바로 가평 최고 갑부 이춘추예요?”
  • 도강우는 고개를 숙이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춘추의 아명이 이아귀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 “그렇습니다, 대표님. 지금부터 저의 모든 재부와 권력은 대표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시면 됩니다.”
  • 이춘추가 깍듯하게 말했다. 가평 상류 인사들이 알게 된다면 놀라서 펄쩍 뛸 것이다.
  • 가평 최고 갑부이자 가평시 재부의 50%를 장악한 이춘추가 한 젊은이를 이렇게 깍듯하게 대하다니!
  • “상사가 누구예요?”
  • 도강우가 물었다.
  • “바로 이천 선생이십니다. 선생은 유럽으로 가신 지 1년이 넘었습니다.”
  • 이 집사가 답했다.
  • 이천, 네 놈이었구나.
  • “알았어요, 먼저 1억 줘봐요.”
  • 도강우가 말하자 이춘추는 놀라서 멍해졌다. 당당한 도 대표님이 겨우 1억이 필요하시다고? 하지만 그는 잠깐 멈칫했을 뿐 바로 도강우에게 검은색 카드 한 장을 건넸다.
  • “도 대표님, 이 카드에는 10조가 들어있습니다.”
  • 이어 그는 또 골드 카드 한 장을 건넸다.
  • “이 카드에는 20조가 있습니다.”
  • 도강우는 손이 가는 대로 카드 한 장을 받고 바로 이어 물었다.
  • “참, 가평에서 현재 뇌종양 개두술에 가장 능한 사람이 누구예요?”
  • 이춘추는 고민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 “당연히 아산병원의 나현진, 나 교수이죠. 겨우 28살이지만 의학 천재로 불리는데 개두술과 심장 이식수술, 장기이식에 아주 능합니다!”
  • 아산병원이라…
  • 아산병원은 도강우도 알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환자를 받지 않고 권력가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진료 금액은 놀랄 정도로 천문학 숫자를 기록했으며 10억이 기본이었다. 나현진도 아주 도도했는데 가평의 그 어떤 병원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나 교수더러 내일 오전 9시에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저희 알아버지 수술을 준비하라고 해요. 이건 최근 할아버지의 전신 신체검사 보고서이니 그녀에게 전해주고 오늘 밤 준비를 잘 하라고 해요.”
  • 만약 할아버지가 지금 ICU에 있어서 함부로 이동할 수 없는 것만 아니면 할아버지를 아산병원으로 이송했을 것이다.
  • 이춘추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 “네, 도 대표님.”
  • 도강우가 떠나고 나서야 도강우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 자미성 시스템 1단계를 활성화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임무가 내려오겠지?
  • 다음 날 아침 8시, 서울대 병원에 9층 ICU에 막 도착한 도강우는 유나연을 발견했다.
  • 복도 옆 창가에 서 있는 그녀의 발밑에 불룩한 남성용 백팩이 놓여있었다. 검은색 슬림 롱 원피스를 입고 옅은 화장에 긴 목을 드러낸 그녀는 허리가 매우 가늘고 피부가 희고 매끄러웠으며 아주 부드러워 보였다.
  • 도강우가 온 것을 본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빠르게 도강우에게 걸어왔다.
  • “여보, 나 1억 챙겨왔어.”
  • 도강우는 고개를 숙이고 검은색 숄더백과 옅은 화장을 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평소에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고 이 가방은 집에도 없던 것이었다.
  • 아침에 누군가를 만나고 1억을 빌려온 것이분명했다.
  • “너 진호 만났어?”
  • 도강우가 묻자 유나연은 도강우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가슴이 떨렸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 “응, 1억 빌렸어. 자기 할아버지 수술이 급한 거 알아, 그래서…”
  • “그래서 화장까지 하고 그를 만나러 간 거야?”
  • 도강우는 약간 확인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 유나연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 “돈을 빌리지 못할까 봐, 그래서…”
  • 도강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 “그래서 자신의 매력을 좀 어필했어? 화장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겠네, 전에는 화장하는 일이 거의 없었잖아. 화장한다고 해도 10분을 넘기지 않았고.”
  • 도강우는 걸어가서 완벽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잡티 하나 없는 그녀는 마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 “여보, 할아버지 수술이 중요하잖아…”
  • 유나연의 표정이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 “그가 1억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 그리고 저녁에 같이 영화도 보고 밥 먹고 쇼핑하자고 하지 않았어?”
  • 도강우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그리고 너는 그걸 허락했고?”
  • 유나연은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 도강우의 말이 전부 정확했기 때문이다.
  • 도강우는 가방을 들어 단숨에 창밖으로 던졌다.
  • “나 도강우는 이런 돈 필요 없어!”
  • 노란색 지폐가 가방에서 쏟아져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 유나연은 멍하니 있다가 비명을 질렀다.
  • “도강우, 너 미쳤어? 저거 1억이야, 할아버지 목숨을 구할 돈이라고!”
  • 도강우는 유나연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 “기억해, 나 도강우의 아내는 머리가 너무 똑똑할 필요도 없고 대단한 능력도 필요없어. 내가 바라는 거 딱 하나야— 천하게 행동하지 마!”
  • 천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 지금 나를 천하다고 하는 거야!?
  • 유나연은 순간 눈물이 왈칵 차올라서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 “내가 뭐가 천한데? 너와 알고 지낸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천하게 행동했어?”
  • 하지만 도강우는 하늘을 가득 뒤덮은 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그 돈은 일부 사람들을 희열에 가득 차게 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밑으로 내려가 돈을 주웠다.
  • “18번 침대, 9시 수술 준비시켜요!”
  • 도강우가 간호사 데스크의 간호사에게 말했다.
  • 비록 집도의가 바뀌긴 했지만 도강우는 원래의 집도의인 양 의사가 옆에서 거들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수술이 어느 정도 안전할 수 있었다.
  • 수간호사가 걸어오더니 말했다.
  • “전액 비용을 납부해 주세요.”
  • 도강우가 영수증을 건넸다.
  • “이미 납부했어요.”
  • 수간호사는 흠칫하더니 이내 죄송하다는 듯 답했다.
  • “정말 죄송합니다. 보호자님. 주치의인 양 선생님께서 오늘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쓰러지졌어요. 오늘 수술은 아마…”
  • 도강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 이유도 없이 갑자기 쓰러졌다고?
  •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누군가 몰래 양 의사가 수술을 못 하도록 손을 썼을 것이다.
  • 할아버지가 돌아간다면 도강우가 제일 먼저 원망할 사람이 누구일까?
  • 바로 유나연이었다.
  • 그렇다면 누가 배후에서 손을 썼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계속 준비해요,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할 테니까.”
  • 도강우는 생각에 잠긴 듯 수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전액 비용을 납부하라고 하더니 비용을 납부한 걸 알고는 주치의가 병으로 쓰러졌다라, 재미있네.
  • 수간호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 “하지만 집도의가 없으신데…”
  • 도강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아무 감정도 없이 차가워지고 이글거리는 빛을 뿜어냈다. 수간호사가 한마디라도 더 하면 도강우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목을 부러뜨릴 것 같았다.
  • “네, 위에 보고하고 다른 의사 선생님을 배정하겠습니다.”
  • 수간호사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나는 듯 빠르게 멀어졌다.
  • 8시 40분, 배가 뚱뚱한 의사 하나가 마침내 걸어왔다.
  • “환자 가족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 의사입니다. 양 선생님이 오늘 아프신 관계로 오늘 수술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은, 저는 흉부외과에 능합니다. 뇌종양과 같은 종양과 신경과는 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수술 과정에 환자분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저희 탓이 아닙니다. 동의하신다면 사인하세요.”
  • 도강우는 통지서를 받고 바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 “수술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니 당신은 당장 꺼져도 돼.”
  • 성 의사가 차갑게 웃었다.
  • “전체 가평시에서 양 의사를 제외하면 안정적으로 수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 도강우가 말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갑자기 말했다.
  • “세상에, 저 사람 나 교수 아냐? 나 교수는 줄곧 아산병원에 있지 않았어?”
  • 이어 들려온 소란스러운 소리에 유나연도 시선을 빼앗겼다.
  • 몸매가 늘씬하고 1미터 75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빠르게 걸어왔다. 흰색에 파란 포인트가 들어간 슬림한 원피스를 입고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드러낸 그녀는 볼륨이 살아있고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자연스럽게 흩날리고 예쁘장한 눈썹에 눈은 빛나는 별처럼 초롱초롱했다.
  •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차가웠는데 옆에 다가가기 힘든 느낌을 주었다.
  • 적지 않은 간호사들이 열광적인 눈빛을 보냈다.
  • 왜냐하면 그녀는 의학계의 스타였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잡지에 50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이자 스웨덴 황실 공직자들의 큰 수술을 진행한 적도 있는 그녀였다.
  • 그런 그녀가 왜 온 거지?”
  • “이 수술은 내가 합니다!”
  • 나현진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 “옷을 갈아입게 탈의실로 안내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