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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하얏트 호텔

  • 장범준은 프로 영업사원의 마인드로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 “이 집은 현재 가평에서 가장 비싼 집인데 가평 팰리스 펜트하우스라고 하고 가치는 2200억이야. 안에는 레저실, 당구실, 수영장, 썬룸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들리는 바에 의하면 최근 명의변경을 앞두고 있다고 해.”
  • 눈을 가늘게 뜬 채 펜트하우스를 바라보는 이경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반짝였다.
  • 손현아와 조연미 역시 부러움이 극에 달해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 “2200억이라니, 이걸 살 수 있는 사람은 완전 재벌이겠지?”
  • 손현아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 “2200억을 내고 집을 사는 사람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지.”
  • 수줍게 웃으며 허리를 살짝 굽힌 장범준은 약간 비굴해 보였다.
  • 이경은 시큰둥하게 장범준을 힐끗 쳐다보았다.
  • “그건 몇십만 짜리 월급쟁이가 고민할 일이 아니야.”
  • 장범준은 숨이 턱 막혀 표정이 어색해졌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 손현아와 조연미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 “맞아, 장범준. 그건 네가 고민할 일이 아니지. 너는 어떻게 집을 팔아서 커미션을 많이 받을지나 고민해.”
  • “듣기 좋게 말해서 커미션이지 솔직히 말하면 적선 아냐?”
  • 손현아는 눈을 부릅떴다.
  • 도강우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 “장범준이 영업사원으로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인데 그게 왜 적선이야?”
  • 손현아는 경멸하듯 도강우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 온몸에 걸친 옷 가격이 5만 원도 넘지 않는 주제에 이런 상황에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 “그것 또한 네가 고민할 일이 아니야. 내가 볼 때 이 대표가 너희들한테 커미션을 주는 건 너희들 복이야. 집 사는데 단숨에 200억을 내놓는 이 대표는 직접 집주인과 얘기할 방법이 많고 많아, 너희들이 필요없다고.”
  • 도강우 역시 영업원이라고 생각했던 손현아는 시큰둥한 태도로 말했다.
  • “사람은 여러 등급으로 나뉘어져,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건 존재하지 않듯이 사람과 사람은 서로 다른 거야. 너와 이경 사이에 거대한 갭이 존재하 듯 말야.”
  • 조연미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녀는 필사적으로 이경을 떠받들고 도강우와 장범준을 무시하는 것으로 이경의 관심을 받으려 했다.
  • 이경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 “됐어, 중요한 일부터 해야지.”
  • 그는 비록 덤덤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시종일관 남보다 한 수 위라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 도강우가 얘기하려는데 장범준이 도강우의 소매를 잡아끌며 필요 없는 말다툼에 휘말리지 말라는 뜻을 표시했다.
  • 도강우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장범준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며 얼마 뒤 9호 건물 27층에 도착했다.
  • 문을 연 사람은 중년 남자였는데 얼굴에 감출 수 없는 초췌함이 드러났다. 집안 인테리어는 아주 럭셔리했고 90여 평의 대형 평수 아파트에 노천 베란다까지 딸려 있었다.
  •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만 아니면 나도 이 집을 팔지 않았을 거예요. 금액은 170억이에요, 동의하면 바로 계약하죠.”
  • 중년 남자의 시선이 바로 이경에게 향했다.
  • 상업계에서 오랫동안 전전한 그의 안목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는 현장에 있는 사람 중에 이경이 실력이 있다는 걸 보아낸 것이다.
  • 이경은 집안을 자세하게 둘러보며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젓기도 했다.
  • “집은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제일 늦게 내일까지 답을 드려도 될까요?”
  • 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세요.”
  • “그럼 연락처 하나 남겨주시겠어요?”
  • 장범준이 나섰다.
  • “바로 나한테 연락하면 돼, 내가 조율해 줄게. 어때?”
  • 매수자와 매입자가 직접 얘기하는 건 중개인을 건너뛰고 거래할 수 있었기에 장범준에게는 금기였다.
  • 중년 남자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죠, 업계 규정인 거 나도 압니다.”
  • 하지만 이경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 “장범준, 네가 끼어들 자격이 있어? 뭐가 두려워서 그래? 내가 너의 중개 비용을 떼어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
  • 장범준은 속수무책으로 제자리에 서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 “아니야, 오해하지 마. 난 그저…”
  • “그저 뭐?”
  • 이경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 “업계 규정이라잖아.”
  • 도강우가 말했다.
  • “집주인도 아는 걸 네가 모를 수 있어? 장범준이 집을 찾아서 집주인과 연락하고 힘들게 뛰어다니는데 이렇게 그의 노력을 무시해?”
  • “이봐, 당신이 끼어들 자격이 있어?”
  • 손현아가 비아냥대며 물었다.
  • 도강우는 순간 싸늘해진 눈빛으로 손현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 손현아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 눈앞의 상황을 알지 못했던 집주인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했다.
  • “이렇게 하는 걸로 하죠, 장범준 씨가 연락해요.”
  • 장범준은 감격해서 집주인에게 말했다.
  • “감사합니다, 우 대표님. 그럼 저희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 아파트를 나선 장범준이 이경을 바라보았다.
  • “이 대표, 집이 어떤 것 같아?”
  • 이경은 장범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 “먼저 같이 점심 먹자, 먹으면서 얘기해.”
  • 난처해 하며 도강우를 바라본 장범준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짓고 있는 도강우를 발견했다.
  • “가자.”
  • 장범준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점심은 어디서 먹을 거야?”
  • “하얏트 호텔.”
  • 말을 마친 이경은 바로 차에 올라탔다.
  • 도강우와 장범준에게 인사할 생각조차 없었던 손현아와 조연미는 눈을 흘기고 따라 차에 올라탔다.
  • 장범준은 멀어져가는 BMW 760을 보며 입을 열었다.
  • “이경은 사람이 아주 오만해서 점심 모임에 참석하면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네.”
  • 도강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 “가보자, 어쩌면 의외의 수확이 있을 수도 있잖아?”
  • “점심을 하얏트 호텔에서 먹다니 이경이 정말 대박났나 봐.”
  • 장범준의 말투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배어있었다.
  • “그건 상업 여왕 임다현 거잖아.”
  • 그래?
  • 잠시 멍하니 있던 도강우는 바로 반응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임다현을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 10여분 뒤, 막 하얏트 호텔 로비에 도착한 도강우와 장범준은 이경을 선두로 한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부 그곳에 서서 프런트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은 자리가 없습니다. 손님께서 예약도 하지 않으셔서…”
  • 프론트 여직원이 연신 사과했다.
  • 이경은 코웃음을 쳤다.
  • “이렇게 장사하는 게 어디 있어. 9층에 빈 룸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왜 오픈하지 않아?”
  • 프론트 여직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 “손님, 9층은 줄곧 대외적으로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임 대표님께서 중요한 분들을 만나시는 곳입니다. 저는 한낱 프런트 직원일 뿐이니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 9층에는 룸이 단 두 개 있었는데 나머지는 볼링장, 헬스장, 응접실 그리고 개인 노래방과 개인 영화관 등 시설들이었다.
  • 때문에 9층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전체 가평에서 이름을 날린 유명 인사들이었다. 예를 들면 가평 최고 갑부 이춘추, 여왕 류현경, 가평 팰리스의 소유주와 같은 레벨의 인물들이다.
  • “난 천용 갤러리의 임원이야!”
  • 이경이 큰 소리로 말했다.
  • 천용 갤러리…
  • 프런트 직원은 헉하고 숨을 들이키고 더없이 깍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전화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 이경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 부러움에 찬 눈길로 이경을 바라보는 동창들의 얼굴에는 존경의 기색이 역력했다.
  • 이경은 이런 눈빛을 받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