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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결혼 소식

  • 강서연은 입을 삐죽거렸다.
  • “결국 안 들켰잖아요!”
  • 그러자 곧장 매섭게 날아와 꽂히는 시선에 강서연은 얼른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 부시안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어조로 경고했다.
  • “이번이 마지막이야.”
  • 강서연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저 아래 교차로에 내려주실래요? 아빠 보러 가고 싶어요.”
  • 강진섭은 부형철과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 부시안은 별다른 말없이 순순히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강서연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부시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 “저 오늘 잘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도 기뻐하시는 것 같던데. 저기, 대표님, 제 개근 수당은…”
  • “없어!”
  • “!!!”
  • 그러게 왜 쓸데없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서는… 하지만 강서연은 조금도 주눅 든 기색 없이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 “좋아요. 그럼 이따가 할아버지한테 가봐야지!”
  • 그렇게 말하며 안전벨트를 풀자 부시안이 강서연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 강서연이 넉살 좋게 웃으며 굽신거렸다.
  • “아니요. 제가 어찌 감히 대표님을 협박하겠어요.”
  • “좋아. 그럼 같이 들어가자. 가는 김에 나도 장인어른께 인사 좀 하게.”
  • 그 말에 강서연은 흠칫 몸을 떨었다. 인사하러 가는 것보다는 산소를 뽑아내려 할 것 같은 흉흉한 기세에 강서연은 얼른 꼬리를 내렸다.
  • “제가 잘못했어요, 대표님.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개근 수당도 필요 없어요.”
  • 부시안이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코웃음을 치는 소리에 강서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안전벨트를 풀고서 차에서 내렸다.
  • ——
  • 강서연과 약속한 부시안은 어젯밤에 바로 강진섭을 VIP 병동으로 옮겨주었다.
  • 병상으로 다가간 강서연은 3년째 잠들어 있는 부친을 바라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 “아빠, 얼른 일어나세요, 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빠랑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은데.”
  • 강서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 12 살 때, 정확히 말하면 그때가 12 살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지만 강서연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 병원에서 눈을 뜬 강서연은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상태였고 그때 만난 사람이 강진섭이었다.
  • 모든 기억을 잃고 어쩔 바를 몰라 하는 강서연을 당시 그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던 강진섭이 입양했다.
  • 강서연을 치료하고 알뜰하게 보살폈을뿐더러 경찰이 그녀의 가족을 찾지 못하자 아예 강 가로 데려왔다.
  • 그로부터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 “서연 씨, 오셨어요!”
  • 병실 문이 열리고 강진섭의 주치의인 서명훈이 들어왔다. 재빨리 그에게 등진 채 눈물을 훔친 강서연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 “명훈 오빠.”
  • 서명훈은 그녀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강서연이 병원비를 구할 수 있을 때마다 서명훈이 대신 병원비를 지불해 주며 도움을 주었다.
  • 의사의 상징인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서명훈은 수려한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물었다.
  • “어제 원장님이 그러시던데, 누가 해외 최고의 의료팀을 아버님한테 보내셨다면서요. 서연 씨, 대체…”
  • 서명훈이 무엇을 물으려는지는 자명했다. 그녀에게 갑자기 어디서 그렇게 큰돈이 생긴 것인지 궁금했으리라.
  • “명훈 오빠, 저 결혼했어요.”
  • 그 말에 서명훈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 “결혼이요?”
  • 3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준 서명훈은 강서연에게 이미 오빠 같은 존재였기에 부러 숨기지 않고 부시안과 가짜 결혼을 하게 된 일의 자초지종을 빠짐없이 설명했다.
  • 모든 정황을 전해 들은 뒤에도 서명훈은 여전히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얼굴이었다.
  • “이…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니에요?”
  • “맞아요! 사실 진작부터 결혼하고 싶었어요. 그 집에서 나와 최대한 어머니랑 떨어져 지내고 싶었는데 마침 부시안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냉큼 기회를 잡았죠.”
  • 그렇게 말하며 강서연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달관한 표정을 지었다.
  •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서명훈의 눈동자에 말로는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짙은 상실감이 일렁였다.
  • 강진섭이 깨어나기 전까지 결혼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강서연이 오래전 투어 결혼을 원했을 줄이야.
  • 그럴 줄 알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