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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표절

  • 강서연은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부시안의 행적이 궁금해졌다.
  •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불필요한 생각을 털어냈다. 어차피 명목상의 남편일 뿐이었다. 부시안이 어디를 가든 그녀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 다음날.
  • 회사에서 최대한 부시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한 강서연은 참 운 없게도 장근철을 마주쳤다. 그야말로 귀신을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 강서연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지나치며 인사를 건넸다.
  • “좋은 아침입니다, 본부장님.”
  • “그래.”
  • 장근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서연을 힐끗 바라보았다.
  • “오늘 저녁에 나랑 접대 나가자. 예쁘게 입고 나오고. 오늘 식사 자리에 나오시는 분들은 모두 우리 회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분들이시니까 정신 바짝 차려.”
  • 그 말에 강서연은 일순 당황했다.
  • “네? 저요?”
  • “너 아니면 여기 또 누구 있어!”
  • 장근철이 버럭 호통을 쳤다.
  • “식사 한 끼에 뭘 그렇게 꾸물거려. 나가지 않을 거면 지금 당장 짐 싸!”
  • 회사의 접대 자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 있는 강서연은 망설여졌다.
  • 하지만 여기서 거절한다면.
  • 장근철의 눈치를 힐끗 살피던 강서연은 어차피 한 끼 식사일 뿐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네, 시간 맞춰서 나가겠습니다.”
  • 장근철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 “그래. 이따가 주소 보낼게. 절대 늦으면 안 돼.”
  • 그러고는 곧장 뒤돌아 사무실로 들어가는 장근철의 뒷모습을 보며 강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는 순간, 컴퓨터 모니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녹색으로 변했다.
  • 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이 안에 강서연이 디자인한 식품 포장 파일도 들어있었기에 시스템이 다운되면 그녀도 덩달아
  • 시스템이 다운되면 그녀도 함께 다운됩니다!시스템이 다운되면 그녀도 함께 망하는 것이었다!
  • “설마 진짜 이렇게 운이 없으려고? 백업도 안 했는데!”
  • 강서연은 초조함에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아무리 재부팅을 시도해 보아도 컴퓨터가 꿈쩍도 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유지 보수 부서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 그 순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장근철이 사무실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 “강서연! 포장 디자인 보내! 지금 당장!”
  • “네…”
  • 강서연은 그 자리에 석상처럼 얼어붙었다.
  • 신도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것임이 분명했다.
  •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선 강서연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본부장님, 컴퓨터가 고장 났는데 그 안에 있는 포장 디자인 도면도 그만…”
  • 그녀가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돌연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장근철의 앞으로 다가가 들고 있던 도면을 건넸다.
  • “본부장님, 제가 직접 디자인한 거예요. 특별히 인쇄해 드렸는데 괜찮으시다면 제 디자인을 사용하시면 어떨까요?”
  • 강서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눈앞의 사람을 응시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안지영이었다.
  • 그리고 그녀가 장근철에게 건넨 도면은…
  • 눈을 가늘게 뜨고서 똑바로 바라보자 그녀가 설계한 도안과 똑같았다!
  • 이게 어디를 봐서 안지영이 다자인한 거란 말인가, 분명히 표절인데!
  • 강서연이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찰나, 안지영이 돌연 고개를 돌리더니 턱을 치켜들며 오만방자한 표정을 지었다.
  • “서연 씨, 본부장님이 주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못한 것이지 왜 애꿎은 컴퓨터 핑계를 대요? 결국 서연 씨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잖아요!”
  • 강서연은 주먹을 움켜쥐고서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렇다면 왜 당신의 디자인이 저와 똑같은지 여쭤봐도 될까요?”
  • “똑같다고? 허, 흥미롭네요. 내가 서연 씨 작품을 표절했다고 생각해요? 증거 있어요? 증거도 없이 절 비방하는 거잖아요!”
  • 강서연은 마음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안지영이 한 짓이라는 증거가 없는 건 둘째치고 그녀의 설계 도안도 다 없어졌으니 그녀의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 아무래도 안지영도 그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사사건건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던 안지영이었다. 이제 이렇게 비열한 수법까지 쓸 줄이야.
  • 강서연은 입술을 오므렸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결연한 의지가 가득 찼다.
  • “지금은 기고만장하겠지만 언젠가 당신이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 증거를 내가 꼭 찾아낼 테니, 기대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