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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증거 수집

  • “그만!”
  • 장근철이 노기 띤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 “안 했으면 안 한 거지, 무슨 변명이 필요해? 지금 조금 재능이 있다고 으스대는 거야? 잘 들어, 우리 디자인 부서에 너 같은 애는 널리고 널렸어. 어디서 잘난 척이야! 가서 검토서 만 자 채우고 와. 아니면 화장실 청소하던가!”
  • 강서연이 서슬 퍼런 눈으로 장근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 “본부장님, 이건 제 설계입니다. 제가 꼭 증명해 내겠습니다.”
  • 하지만 장근철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이미 잠긴 사무실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 “증명? 증명하면 뭐가 달라져? 내가 안지영의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윗분들이 의심할 것 같아?”
  • 그 말에 강서연은 손을 꽉 말아 쥐었다.
  • “본부장님!”
  • “강서연, 너도 이제 그만하면 우리 회사에서 고참이야. 날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붙이지 마. 같은 부서에서 출근하면서 오다가다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 괜히 얼굴 붉힐 일 만들 필요 있겠어? 안 그래?”
  • “그럼 본부장님은 제 디자인이란 걸 진작부터 알고 계셨어요?”
  • 그러자 장근철이 가소롭다는 듯 냉소를 흘렸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금 안지영이 나한테 주는 걸 너도 봤잖아. 이건 안지영의 디자인이야. 왜 자꾸 생트집을 잡아?”
  • 옆에 잠자코 서있던 안지영도 한마디 거들었다.
  • “서연 씨 승진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게으른 건 큰 문제가 아니니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 장근철과 안지영은 강서연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주거니 받거니 서로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 강서연이 눈을 부릅뜨며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제가 이 일을 부 대표께 꼰지를까 두렵지도 않아요?”
  • 그 말에 안지영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 “서연 씨, 꿈 깨요. 부 대표이 어떤 분이신데 고작 서연 씨 같은 사람한테 눈길이나 줄 것 같아요? 가서 세수나 하고 거울에 자신을 잘 비춰봐요. 주제 파악 좀 하고 우리 대표님 명성을 더럽히지 마요,”
  • 온통 멸시와 조롱으로 점철된 말에 강서연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강서연은 가슴이 쿵쾅거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표 사무실로 달려가 부시안에게 미주알고주알 고자질하고 싶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부시안이 고작 이렇게 사소한 일에 신경 쓸 리 만무했다.
  • 그리고 무엇보다 부시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 됐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지. 사실 그녀의 설계도에는 그녀만 알고 있는 작은 결함이 있었다…
  • 만일 안지영이 그 결함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한다면 나중에 분명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 유지 보수 부서에서 컴퓨터를 고치러 왔을 때 내부의 설계 도면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강서연은 짜증도 내지 않고 짬짬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회사의 모니터링 룸으로 향했다.
  • 모니터링 룸은 1층 로비 뒤편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서연은 고개를 드는 순간 돌연 눈앞에 나타난 잘생긴 얼굴에 흠칫 몸을 떨었다.
  • 여기서도 만날 수 있다고?
  • “대표님.”
  • 고개를 까닥이고서 인사를 건넨 강서연이 옆으로 돌아서서 나가려는 찰나, 부시안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무슨 일 있어?”
  • 피로에 찌든 강서연의 얼굴을 보며 부시안이 물었다.
  • 그러자 강서연이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 “괜찮아요, 물건을 잃어버려서 CCTV를 확인하러 왔어요.”
  • 별다른 의심 없이 응수하던 부시안은 또다시 물었다.
  • “뭘 잃어버렸는데?”
  • 부시안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던 강서연은 대충 얼버무렸다.
  • “별거 아니에요. 그냥 사소한 물건이에요.”
  • 고작 사소한 물건 하나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는 강서연의 모습이 어쩐지 의심스러웠다.
  • “도움이 필요해?”
  • “아뇨, 괜찮습니다.”
  •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지켜보던 비서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서렸다.
  • 부시안이 누군가한테 관심을 보이는 것부터가 천재지변 같은 일이었는데 심지어 그 상대가 회사의 디자이너라니. 대체 언제부터?
  • 호기심이 일었지만 비서는 콧등의 안경만 바로잡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했다.
  •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꼭대기 층으로 찾아와.”
  • 부시안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