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시안 씨라고 불러

  • 백화점을 나온 두 사람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 차에서 내린 부시안은 트렁크에서 각종 영양제를 꺼내 들었다.
  • 그러고는 차 옆에 멀거니 서 있는 강서연을 힐끗 보더니 언짢은 듯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 “가자.”
  • 흠칫 정신을 차린 강서연은 재빨리 부시안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 “긴장돼?”
  • 부시안은 예의 여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딱딱하게 굳은 강서연의 안색을 단박에 눈치챘지만 강서연은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다.
  • “전혀요. 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 괜한 오기였지만 사실은 자기 합리화였다.
  • 연애 경험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 부모님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유명한 부형철이었으니 강서연에게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강서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 “대표님, 부 회장님 무서운 분 아니시죠?”
  • “안 무서워.”
  • 담담하게 대답하던 부시안은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
  • “시안 씨라고 불러.”
  • “네?”
  • “할아버지께 여자친구와 만난 지 2 년 되었다고 말씀드렸어.”
  • 강서연은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2 년을 만난 사이에 대표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면 그녀라도 의심을 할 것이다.
  • “네, 시안 씨.”
  • 아주 입에 착착 감겼다. 강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3 살에 한고비라던데, 대표님과는 4 살 차이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넘을 수 없는 간격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희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시안 오빠라고 부르는 건 어때요?”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시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더니 얇은 잇새로 단호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 “별로야.”
  •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부시안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 그 모습에 강서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작 호칭 하나에 저렇게 화를 낼 일인가?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다더니. 쯧, 까다롭네.
  • 병실 문 앞에 다가선 부시안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강서연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잠자코 있던 부시안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 강서연이 미처 당황할 겨를도 없이 부시안은 곧장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 장은수와 발코니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던 부형철은 병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돌연 몸을 일으켰다.
  • “시안이, 왔어!”
  • 부형철의 시선이 이내 강서연에게 닿았다. 어젯밤 부시안에게서 혼인신고를 마쳤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형철의 얼굴에 자애로운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 “네가 서연이지?”
  •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강서연이라고 합니다.”
  • “그래, 얼른 앉아.”
  • 부형철은 강서연을 끌고 소파에 앉았다.
  • 그때, 부시안이 들고 있던 영양제를 내려놓고서 부형철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서연이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 “고마워, 잘 먹을게.”
  • 부형철이 웃음기를 띤 채 말문을 열었다.
  • “시안이랑 2 년 동안 만났다고 들었어. 이 자식, 여태 나한테 숨기고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말이야.”
  • 병원으로 오는 길에 이미 부시안에게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미리 언질을 받았기에 강서연은 짐짓 태연하게 부시안을 힐끗 보고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시안 씨 진작부터 저를 데려오려 했지만 할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전 BC 그룹의 일개 디자이너일 뿐이잖아요…”
  • 그 말에 부형철이 사뭇 심각해진 얼굴로 강서연의 손을 잡았다.
  • “우리 부 씨 가문은 지위 배영이나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 그러니까 부담 느낄 필요 없어. 너희들이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우리는 절대 반대하지 않을 거야.”
  • 그러자 강서연이 싱긋 미소 지으며 부시안을 바라보았다.
  • “네, 시안 씨도 저한테 그렇게 말했어요.”
  • 밝고 달콤한 미소에 일순 멈칫한 부시안은 얼떨결에 손을 내밀고서 사랑스럽다는 듯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 그 모습에 부형철의 눈가에 서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여느 재벌 집 회장님들과 달리 친근하고 온화한 부형철은 대하기 편한 어른이었다. 강서연은 도착하기 전까지 긴장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는 부형철과 바둑을 두었다.
  • 한창 흥미진진하던 와중에 불현듯 강서연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 “할아버지,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시안 씨랑 두고 있어요.”
  • “그래, 그래.”
  • 강서연이 나가고 그 자리에 부시안이 앉자마자 부형철이 돌연 심각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시안아, 사실대로 얘기해 봐. 시안이랑 연애하고 결혼한 건 소희 때문이 아니냐?”
  • 그도 그럴 것이 강서연은 소희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