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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돈 버는 걸 방해하지 마

  • 하지만 이번 사건 이후 디자인 부서에서 강서연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손가락질 당하기 일쑤였고 심할 때에는 일부러 어깨를 밀치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 강서연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애써 분노를 눌렀다.
  • “괜찮아. 괜찮아.”
  • 일과 월급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 그날 밤, 갑자기 생긴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야 집에 돌아온 부시안은 아무렇지 않게 재킷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서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가녀린 실루엣을 발견하고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 강서연은 잠에 깊게 들지 못한 것인지 이마를 잔뜩 찡그린 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 문득 치미는 호기심에 부시안은 홀린 듯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 “똥차들, 다 비켜. 썩 거져 버려… 돈 버는 데 방해되게…”
  • 부시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간을 문질렀다.
  • 대체 얼마나 가난해야 꿈속에서도 돈 생각하지?
  • 그때, 강서연의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이 깜빡였다. 부시안은 그제야 모니터 속에 실내 디자인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 아직 대략적인 초안일 뿐이지만 디자인 컨셉의 참신함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획마다 강서연의 디자인 재능과 실력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 모처럼 강서연이 다르게 보였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 이렇게 재능이 있는데 어떻게 여태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
  • “음…”
  • 강서연이 돌연 몸을 뒤척이더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소파 커버를 적셨다.
  • 부시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강서연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야 숨죽여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아빠…”
  • 부시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냉랭한 기운을 결국 차가운 코웃음으로 내뱉어졌다.
  • “다녀오셨습니까, 대표님…?”
  • 그 순간, 귓가에 울려 퍼지는 고용인의 목소리에 부시안이 황급히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눈치 빠른 고용인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 “담요를 덮어주세요.”
  • 말을 마친 부시안은 곧장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 다음날.
  • 잠에서 깨어난 강서연은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담요를 발견하고는 눈가에 의혹이 스쳤다.
  • “서연 씨, 일어나셨어요?”
  • 귓가에서 들려오는 고용인의 목소리에 강서연은 얼른 굳어진 어깨를 움직였다.
  • “담요 고마워요.”
  • 고용인이 무어라 얘기하려 했지만 강서연은 이미 씻으러 위층으로 올라간 뒤였기에 입가에 맴도는 말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황급히 회사로 뛰어간 강서연은 마지막 순간에 성공적으로 출석을 완료했다.
  •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직원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던 찰나, 돌연 누군가 등 뒤로 그녀를 힘껏 밀쳤다.
  • 순간 중신을 제대로 잡지 못한 강서연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장 가까운 장애물을 붙잡지 못했다면 BC 그룹의 가장 큰 조롱거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간신히 중심을 잡고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곳에 한때 그녀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이었던 사내가 서 있었다.
  •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는 순간, 사내의 경멸과 혐오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다.
  • 강서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호랑이도 평지에서는 개들에게 물린다더니, 그 말이 아주 정확했다!
  • “올라와.”
  • 그때,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나지막하고 깊은 목소리에 강서연은 일순 멈칫했다.
  • 고개를 돌린 강서연은 깊고 그윽한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그제야 사내의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여태 닫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강서연은 태연하게 그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용기가 없었다.
  • 강서연은 멋쩍은 듯 가볍게 기침을 했다.
  • “감사합니다, 대표님. 전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겠습니다. 어쨌든… 아!”
  • 돌연 크고 단단한 손이 강서연의 팔을 힘껏 움켜쥐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강서연은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 반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들었지만 예상했던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서늘하고 단단한 품에 안겼다.
  •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강서연의 눈앞에 부시안의 잘생긴 얼굴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강서연은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 그리고 그녀의 손은 부시안의 가슴에 떡하니 얹혀 있었다.
  • 부시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슬 퍼런 음성을 내뱉었다.
  • “꺼져.”
  • “네… 대표님.”
  • 황급히 손을 내린 강서연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재빨리 아래층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자발적으로 모퉁이에 몸을 웅크리고 선 채 엘리베이터가 어서 빨리 도착하기를 기도했다.
  • 가뜩이나 사면이 꽉 막힌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있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 강서연은 깊이 숨을 들이켜며 숨소리를 최대한 낮추려 노력하며 유명무실한 신혼부부가 회사에서 만났는데 남편이 상사인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대답을 속으로 고민했다.
  • 당연히 공기처럼 무시해야지!
  • 위로 올라가는 층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강서연은 부시안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의 바로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 벽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반사되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부시안은 그녀의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 벽을 통해 그녀의 미세한 표정 번화까지 전부 눈에 담았다.
  • “서연 씨, 회사에 출근하면 업무에 대한 생각만 해. 열심히 일해야 월급도 더 빨리 오를 거 아냐.”
  • “네?”
  • 강서연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부시안이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 “꿈에서까지 돈을 벌 생각만 하는 걸 보면 서연 씨 돈이 정말 많이 궁한가 봐.”
  • 일순 당황한 강서연이 무어라 반박하려던 참이었다.
  • 띵!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곧 지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강서연은 빠르게 단념하고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 부시안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