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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그놈

발칙한 그놈

눈치100단

Last update: 2022-04-02

제1화 그녀와 밤을 보냈던 꼬맹이

  • 무더운 여름, 그리고 T시.
  • “너 그 말 들었어? 허아영 임신했대!”
  • 사무실에서 몇몇 여자들은 이 따끈따끈한 핫이슈를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었다.
  • “임신? 언제? 결혼했다는 말 못 들었는데!”
  • “거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그 여자 사생활 얼마나 난잡한지 다들 알잖아. 저번 달 우리 파탈펍 갔을 때도 만났었어.”
  • 정교한 화장을 한 여자가 입을 놀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멀지 않은 사장님 사무실에서 막 나오는 허아영에게 고정되었다. 손에 들린 건 누구나 탐냈던 바로 그 프로젝트 진행서였다.
  • “일도 어떻게 이토록 순탄대로야? 정말 어떤 수단으로 땄는지 몰라.”
  • 허아영이 자신의 테이블로 걸어가는데 옆에 서 있던 동기와 그녀가 부딪쳤다.
  • “어머, 괜찮아 아영아? 어디 다치지는 않았고?”
  • 허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장윤이었다.
  • “내 정신 좀 봐, 너 오는 것도 보지 못했지 뭐야. 아 참 너 임신했다며?”
  • 장윤이 한껏 비꼬며 말했다.
  • “뭐야, 언제 결혼한 거야? 우리한테 말해주지도 않고. 네 테이블 위 진단서만 아니었으면 임신한 것도 모를뻔했잖아. 아까 부딪힌 데는 괜찮아? 행여나 나 때문에 뱃속에 아기가 잘못되면 어떡해. 아니면 지금이라도 내가 병원으로 데려가 줄까?”
  • 허아영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가 장윤이랑 부딪히며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분명히 서랍에 고이 넣어뒀던 진단서조차 땅에 떨어져 있었다.
  • 진단서는 깃털처럼 하늘하늘 날아 땅에 떨어졌었는데 그 위로 그녀의 인적사항이 아주 큼지막하게 보였다.
  • ‘이름: 허아영
  • 진단결과: 임신 2개월’
  •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사무실 사람들은 들끓었다!
  • 허아영이 입을 꾹 다물고 허리를 숙여 자신의 물건을 주웠다. 머릿속에는 2개월 전 파탈펍에 동생을 데리러 갔을 때 만난 그 남자뿐이었다!
  • 제기랄!
  • 어떻게 임신이 된 거지? 그 여리여리한 남자가 나를 임신을 시켰다고? 입 밖에 내기도 우스워!
  • 그리고 그건 두 사람에게 있어 모두 첫 경험이었다. 유감스럽게 그녀는 “당첨”이 되었다.
  • “아영아, 남편은 누구야? 언제 한번 데리고 와봐.”
  • 장윤은 계속 옆에서 알짱거렸다.
  • “아니, 너와 나 벌써 몇 년째 동기냐. 너한테 남자친구 있다는 것도 한 번도 못 들었어. 그런데 지금 임신이라니. 나는 네 남편 본적도 없잖아. 뭐하시는 분이셔? 나이는? T시에 집은 있어? 차는? 가족배경은 어때? 아니, 내가 하는 말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넌 절대로 너 같은 사람 만나면 안 돼. 네 팔자가 너무 꼬였잖아. 여자는 그래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만나야 하는 거야. 네 조건에 혼전임신이 아니라면 어디 변변찮은 남자도 찾을 수 없었을걸? 그래서 먼저 임신부터 한 거구나.”
  • 사무실 내 나지막한 비웃음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 허아영은 물건을 줍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섰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프로젝트 진행서와 진단서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 “나는 몰랐지, 언니가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은 줄은. 관심이 너무 많아서 교양은 다 밥 말아드시고 남 서랍도 허락 없이 뒤졌겠지.”
  • 장윤이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치켜떴다.
  • 허아영은 허- 하고 비웃음을 치며 흘러나온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 “나도 오늘에야 언니가 찾는 남편 조건을 알았네. 어쩐지….”
  • 장윤은 무의식적으로 말꼬리를 잡았다.
  • “어쩐지 뭐?”
  • “어쩐지 나이 서른다섯이 되도록 시집도 못 갔지.”
  • 이 말 한마디에 장윤은 뛰쳐나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어졌다. 하지만 허아영의 말은 채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 “아이고, 언니 말대로 내 팔자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나도 뭐 노린 건 아닌데, 아기 아빠 말이야.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마침 언니가 바랐던 모든 걸 갖췄네. T 시에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로열 캐슬’에도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거든.”
  • 허아영은 아주 화사하게 웃었다. 고개를 돌려 장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 누구도 그녀의 말에 토 달 수 없을 정도로.
  • 특별히 그 ‘로열 캐슬’이라는 말에는 더더욱.
  • ‘로열 캐슬’. 그건 돈만 많다고 모두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허아영은 도대체 누굴 만나는 거야?
  • 배도형이 배 씨 가문 구역에 발도 들이기 전부터 문 어구에서는 어느 여인의 도도하고 허세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로열 캐슬’?
  • 도대체 어떤 사람이면 눈이 이토록 낮아 저런 여자를 맘에 품은 거지?
  • 배진화는 방금 사무실에서 나와 밖에 어떤 소란이 있었는지 아예 몰랐다. 다만 그는 몇 분 전부터 문 어구라던 아들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아 나와봤던 것이었다.
  • 배진화가 나오자, 허아영이 그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또 큰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 “사장님, 나 임신했어요. 제가 결혼하고 나면 사장님 모시고 ‘로열 캐슬’ 한번 갈게요.”
  • 목소리는 간드러졌고 얼굴은 정교하게 예뻤다.
  • 장윤은 꽃처럼 빛나는 그녀의 옆에서 질투심으로 가득 찼다!
  • “허아영, 네 남자 꼭 네 말대로 그런 사람이어야 할 거야. 아니면 쪽팔리는 건 네 쪽이 될 테니까.”
  • “언니, 이건 또 무슨 섭섭한 말이야? 그 말뜻은 내가 속이기라도 했단 말이야? 아니면 내가 그런 남자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야?”
  • 문을 등진 그녀는 방금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배도형인지 꿈에도 몰랐다.
  • “나 허아영이 어떤 사람에게 시집가든, 어떤 사람이랑 아이를 낳든, 그건 모두 내 일이야. 더구나 언니는 모르나 본데 내 고향에서는 임신하고 3개월 안에는 밝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더 심각하게 말한다면 언니가 내 임신 사실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는데 그 3개월안에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언니 어떻게 책임질래?”
  • 이 말을 끝으로 장윤의 얼굴은 더 구겨졌다.
  • “허아영! 너 모든 책임 나한테 돌리지 마. 네 사생활이 난잡해서 혼전 임신한 주제에! 우리가 모를 거란 생각은 하지 마! 저번 달 파탈펍에서 술이 떡이 된 남자와 호텔 간 거 나 다 봤어!”
  • ‘우르르 쾅쾅’. 번개가 사무실 정중앙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사무실은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 배진화의 얼굴빛도 어두워졌다. 다만 배도형만이 호기심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 저번 달?
  • ‘파탈펍’?
  • 그…도 갔었다.
  • “너희 그만 하는 게 좋을 거다. 일거리가 부족해?”
  • 배진화가 큰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눈에 띄게 허아영을 감쌌다. 그는 그녀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다.
  • 장윤은 입을 오므렸다. 그녀는 허아영한테는 시비를 걸어도 상관 없었지만, 자신의 사장한테 태클을 걸 용기는 전혀 없었기에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허아영은 이를 보고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배진화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쭉 지켜본 그녀는 몸을 돌려 장윤을 찾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가 뒤를 돌자마자 보이는 건 배진화 사무실 문 앞에 떡하니 서있는 배도형이었다.
  • 배도형도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 그 남자였다!
  • 자신과 하룻밤을 보냈던 그 꼬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