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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거동이 불편하다

  • 똑똑한데!
  • 허아영이 손을 뻗어 자신의 배를 만지며 말했다.
  •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탓할 거면 배 속에 있는 네 아이를 탓해, 얘가 배 속에서 심술을 부린 거지 내 탓 아니니까.”
  • 배도형은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흥, 책임을 깨끗하게 돌리시겠다!
  • 허아영은 그런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옆을 지나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메이크업을 다한 그녀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이때 그녀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처음부터 자신을 맡아 도와주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그녀가 목에 달고 있는 리본엔 매니저 누구누구라고 쓰여있었다.
  • “오늘 손님이 많지 않네요? 요즘 결혼 시즌 아닌가요? 여긴 왜 손님이 없어요?”
  • “사모님 농담도 참.”
  • 스물다섯 정도 돼 보이는 미혼인 그 여직원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 “손님들이 있으면 불편하실까봐 도련님이 오늘 여기를 통으로 빌리셨어요, 저희도 개업이래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손님이 있을 리가 없죠.”
  • 허아영의 눈썹을 슬쩍 올리며 생기 있는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이곳을 자세히 보았다.
  • 여기 인테리어도 괜찮아 보이는데, 설마 그녀가 이쪽 분야를 잘 몰라서 그런 건가? 사실은 이런 것들이 비싸지 않은 건가?
  • 그런 게 아니라면 스튜디오 개업이래 왜 처음으로 통으로 빌린 거겠어?
  • 허아영이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 “통으로 빌렸다고?”
  • 물론 그녀도 배 씨 가문이 돈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T 시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돈이 많은 건 알고 있으나 배 씨 가문 그 누구도 낭비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배도형 대에서부터는 모두 집에서 쫓겨나 가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간다고 했다. 그러니 허아영의 생각만으로는 배도형같은 철부지는 당연히 가난할 거라 생각했다.
  • “네, 도련님이 사모님이 임신 중이셔서 거동이 불편하니 사람들이 있으면 다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셔서요.”
  • 직원이 웃으며 배도형이 한 말들을 전했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조금 각색됐으나 그 말이 허아영의 귀엔 다르게 들렸다.
  • 허, 거동이 불편하다고?
  • 네 거동이 불편하겠지!
  • 돌아가면 죽었어!
  • ….
  • 드디어 복잡한 드레스를 다 입은 허아영이 한숨 돌리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살짝 멍해졌다. 저… 여자가 나인가?
  •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앞부분이 짧고 뒷부분이 길게 늘어져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아름다운 다리라인이 눈에 잘 띄게 드러나게 했다. 가슴 부분엔 귀여운 장신구가 있어 드레스를 지나치게 딱딱해 보이지 않게 했다. 머리는 느슨하게 위로 틀어 올려져 있었고 삐져나온 몇 가닥의 애교머리는 그녀의 작고 정교한 얼굴에 여성스러움을 더해주었다.
  • 이런 메이크업은 허아영을 조금 더 생기가 넘쳐보이게 했다. 특히 그녀의 날렵하고 맑게 빛나는 두 눈은 어느 순간 말이라도 할 것만 같이 영롱해 보였다.
  • 뒤쪽의 두꺼운 커튼이 천천히 열리고 허아영의 눈이 거울 속에 비친 깊은 갈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은 호흡마저 멈춘듯했다. 그녀는 어느 날인가 자신이 이 남자를 위해 드레스를 입을 줄은 몰랐다. 그 남자도 자신이 그녀와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 배도형은 딱 맞게 제작한 정장을 입고 허아영의 뒤에 서있었다. 곧게 뻗은 몸매, 잘생긴 얼굴, 다갈색의 눈동자의 그 남자가 천천히 허아영의 아름다운 몸매를 훑어보았다. 기품이 넘치면서도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는 그는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저…
  • 저 사람이 그녀의 남편, 배도형이다.
  • “도련님,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 직원이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고 두 사람이 서로 멍하니 바라보는 걸 본 다른 직원들은 눈치껏 빠져주었다.
  •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배도형은 직원들이 모두 나간 후 그제야 한마디 뱉었다.
  • “지금 대체 누굴 홀리려고 그런 거야?”
  • 허아영은 화가 난 눈으로 그를 째려보더니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말했다.
  • “그러는 넌 또 누구한테 너의 건장함을 증명해 보이려 하는 건데? 다 컸다는 거야?”
  • 허아영은 배도형의 화가 나 시뻘게진 얼굴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며 다리를 들어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 “허아영, 오늘부터 넌 남편이 있는 몸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거야, 배 씨 가문에 먹칠하지 말고.”
  • 배도형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못 봤을 거라 생각 하지 마라. 아까 스튜디오에 들어왔던 배달원이 허아영을 보고 눈이 돌아가는 걸 그는 똑똑히 보았다.
  • 하지만 이 여자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 “남편?”
  • 허아영이 그런것까지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발걸음을 멈추고 궁금한 얼굴을 하고 도발적으로 물었다.
  • “내가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