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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무리 봐도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데

  • 허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녀와 아이가 왔기 때문에 정신이 좀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비록 마음은 씁쓸해도 입가에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
  • “아이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대요.”
  • “그래, 그래. 그럼 됐어.”
  • 성설은 만족한 듯 허아영의 손을 툭툭 치고 배도형을 보며 말했다.
  • “도형아, 너도 곧 장가갈 사람이야. 이제부터는 네 마누라한테 잘해줘야 돼. 애가 임신도 하고 있는데 관심을 좀 줘. 하루 종일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 배도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 성설은 직접 결정했다.
  • “그럼 너희들이 상의해서 배가 아직 나오지 않은 틈을 타 결혼식을 빨리 올려. 그렇지 않으면 그때 가서 아영이가 부끄러워하면 어떡해? 우리는 괜찮아도 여자애는 챙겨줘야지.”
  • 성설의 말에 허아영의 마음이 가볍게 떨렸고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 병약한 성설은 문득 희망을 본 듯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당부했다.
  • “빨리 아영이가 하던 일들 다른 사람한테 맡기던지 해봐. 임신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인데다 결혼 준비까지 해야 하니 더 쉬어야 돼.”
  • “알겠으니까 걱정 마. 당신 몸이나 챙기고 손주 보기를 기다려.”
  • 배진화가 웃으며 대답했다.
  • 허아영은 여전히 이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성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 성설은 또 웃으며 허아영을 바라보았다.
  • “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네가 아니면 도형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날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네가 이 좋은 소식을 들고 이 자리에 나타난 게 내 생애 가장 따뜻하고 밝은 햇살 같은 일이야.”
  • 말하면서 성설은 진심으로 기쁘게 웃었다. 한 노인이 마지막 소원을 이룬 것처럼 만족해했다.
  • 다만 이 만족은 허아영의 말도 억눌러버렸다.
  • 그녀가 지금 말한다면 한 사람의 희망을 깨뜨리는 거고 어쩌면 그녀의 가슴 아픈 일을 또 건드릴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비록 선량한 사람은 아니지만 잔인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이제 와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성설과 배진화한테 너무 잔인하다.
  • ….
  • 허아영은 병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무슨 생각 해?”
  • “철부지랑은 상관없어.”
  • 목소리에 부드러움이 든 무의식적인 한마디였다. 그녀는 단지 조용히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려고 할 뿐이다.
  • 하지만 배도형은 불만이 많았다.
  •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 이 여자가 정말, 좀 정상적이게 날 보면 안 되나?
  • 허아영은 화를 내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 훤칠한 키에 잘난 얼굴, 그리고 꽤 좋아 보이는 몸매. 다 좋은 데 왜 하필이면 네 살이나 어릴까.
  • “우리….”
  • 배도형이 그녀의 눈빛을 반박하기 전에 허아영이 먼저 진지하게 물었다.
  • “우리 진짜 결혼하는 거야?”
  • “방금 거절하지 않았잖아. 그럼 동의했다는 거 아니야?”
  • 배도형은 보기엔 말랐지만 옷을 벗으면 육감적인 그녀의 몸을 보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 “아무리 봐도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데.”
  • “그래, 그럼 하자.”
  • 그녀는 옆에 남자를 보며 은근한 분통을 터뜨렸다.
  • “근데 대단하다? 그 작은 거로 날 임신시키다니.”
  • 배도형은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 이 여자는 정말 하찮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구나!
  • 그냥 좀 대꾸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남자로서의 자부심을 의심하다니!
  • 하지만….
  • 그녀의 새빨간 입술을 보고 있던 배도형은 당장이라도 다가가서 단단히 막아놓고 싶었다. 마치 그날 밤 그가 그녀의 미칠 듯 매혹적인 신음소리를 막은 것처럼. 그건 오직 그가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하지만 지금은 심호흡을 하며 진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잡고 주머니에 넣으며 사악한 생각을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