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형은 놀란 눈길로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급해 난 건지 아니면 부끄러워서인지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임신하고 말았다.
배도형의 눈길은 허아영의 아랫배로 향하였다. 하지만 배도형의 위치에서 그녀의 아랫배를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허아영은 그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아당기고는 냉큼 일어서서 자신의 진단서를 잘 간직했다.
“누가 내 허락 없이 내 물건에 손대라고 했어?”
배도형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곧 아이가 생기게 될 것이고 그는 아빠가 될 것이다.
허아영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 그는 누구보다 어려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배진화는 자기 아들과 허아영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하던 찰나에 장윤이 대뜸 배도형에게 말하였다.
“도련님, 혹시 속으신 거 아니에요? 허아영은 이제 애까지 얻었으니 곧 시집을 갈 게 뻔하잖아요. 아 맞다, 도련님께서는 아는 사람이 많으니 허아영의 미래의 남편도 어찌 보면 알 수 있겠네요. 듣자 하니 쟤 미래의 남편이 ‘로열 캐슬’에 자주 들린다고 하던데 혹시 알고 있나요?”
배진화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서 있었고 배도형은 그저 조용히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허아영이 놀림을 당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허아영은 모든 수모를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배도형이 불쑥 나와 말했다.
“알고 있어,그녀의 남편이 누군지,너희들도 이젠 알잖아?”
말을 마친 배도형은 손을 내밀어 앞에 있던 여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한마디 한마디 정확하게 말했다.
“내가 바로 배 속 아이의 아빠이자 이 사람의 약혼자입니다.”
배 씨 그룹은 삽시에 들끓었다.
배 씨 가문은 작은 가문이 아니었다. 배 씨 가문의 산업은 각 분야로 분포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T 시의 상류사회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이었다. 배 씨 가문의 몇몇 사람들은 모두 각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배 씨 가문의 도련님들은 밖에서 자신의 산업을 돌보거나 회사에 입사하기도 하였다. T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는 배 씨 가문의 사무실이 가장 크고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랬던 배 씨 가문의 도련님이 지금은 이렇게도 쉽게 허아영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바로 돈도 없고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데다 사람을 귀찮게 구는 데는 선수인 허아영에게 말이다.
허아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어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키가 크고 몸매가 매끈하였으며 눈빛은 깊고도 의연하였다. 이 순간만큼은 그가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리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그의 품에 안겨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진화는 어리둥절해 하며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두 사람, 내 사무실로 들어와.”
배진화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배도형은 허아영의 손을 잡고 꿋꿋하게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잡았던 손은 풀었다.
그 순간 그들은 비로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깨닫고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배진화는 그들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허아영은 여전히 놀라움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예전의 그녀였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만회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생각해낸 방법은 사직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여동생을 먹여 살릴 수가 없게 된다. 하여 그녀는 잠시 딜레마에 빠졌다.
배도형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답하였다.
“아버지, 저 결혼하겠습니다.”
어리둥절한 배진화에게 허아영이 정신을 차리고 대뜸 답했다.
“죄송합니다. 보스, 저희 둘이 나가서 먼저 이야기해볼게요.”
말을 마친 허아영은 배도형을 잡아끌어 옆에 있는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배진화는 그들이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들리지 않았다.
허아영은 자신의 마음을 조금 추스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 무슨 뜻이야?”
배도형이 답했다.
“아무 뜻도 없어, 그저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은 것뿐이야.”
허아영은 배도형의 말에 하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배도형, 너 ‘책임진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내가 네 아이를 임신했다고 반드시 너한테 책임지라고 말 할거라는 거 꿈도 꾸지 마. 너 이제 겨우 몇 살이나 되었다고 벌써 책임을 지려고 그래! 아니면 나를 이 집에 들여놓고 애를 낳게 하는 게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배 씨 가문의 도련님이라서 혹시 네가 아이를 키울 순 없어도 배 씨 가문에서는 키울 수 있겠지. 그러면 네가 말한 책임진다는 건 너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거야 아니면 날 그저 배 씨 가문에 버려두겠다는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