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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산수명원’

  • 배도형은 허아영과 함께 ‘로열 캐슬’ 을 떠날 때 안색이 어두웠다. 반면에 허아영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 오는 길에 두 사람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허아영의 마음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배도형의 랜드로버는 온 T 시를 돌아서 다른 사람들이 감히 올 수 없는 곳까지 왔다.
  • ‘산수정원’이라는 네 글자가 허아영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 “여기가 배 씨 저택이 맞아?”
  • 허아영은 방금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불쾌함을 잊고 물었다.
  • “응. ”
  • 배도형은 기분이 아직 나아지지 않았는데 허아영의 거듭되는 얕보기에 차를 몰고 계속 안으로만 들어갔다.
  • 허아영은 매우 당황했다. 배 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 그녀는 T 시에 오래 살아서 T 시의 명문 호족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배씨 가문도 거기에 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배씨 가문이 어느 급에 속하는지 모른다. 상류사회에서도 상류층을 구분하는 방식이 있지만 그녀는 완전히 문외한인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나 허아영은 명문가의 얽히고 설킨 갈등을 깊이 알고 있다.
  • “왜?”
  • 차를 세운 배도형은 정원에 들어와서 줄곧 이맛살을 찌푸리고 침묵을 지키는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 “배도형, 너희 집은 도대체 뭐 하는 집안이야?”
  • 허아영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배도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더니 한참 뒤에야 한마디 했다.
  • “너는 배도형과 결혼한 것이지 배 씨 가문과 상관 없잖아, 네가 관심할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지 배 씨 가문이 아니야.”
  • 허아영은 조금 당황해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배도형의 팔을 잡았다.
  • 그리고 배도형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할 때에야 한마디 했다.
  • “너는 너의 가족에게 우리가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 배도형은 말없이 허아영을 데리고 배 씨 댁의 ‘산수명원’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 별장에 들어선 후 허아영은 귀엽게 배도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노골적이지 않지만 곳곳마다 럭셔리한 별장을 관찰하였다.
  • “너희들 왔구나.”
  •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허아영은 가볍지만 힘 있는 지팡이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연로한 어르신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 “할아버지.”
  • 배도형은 예의 바르게 부르며 앞에 다가서서 배국봉을 부축했다.
  • “할아버지.”
  • 허아영도 환심을 사려고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배도형의 뒤를 따랐다.
  • 배국봉은 말없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거실에는 배진화와 성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배 속의 아기는 얼마나 됐느냐?”
  • 배진화와 성설이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하고 배국봉은 허아영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 “2 개월 됐습니다.”
  • 이번에는 배도형이 대답하고, 허아영은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 “그래,아이는 건강하지?”
  • 배국봉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허아영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 허아영은 아무런 겁도 없이 배도형이 입도 열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 “얘야, 너는 도형이하고 어떻게 만난 거야?”
  • 배국봉은 약간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신과 감히 눈을 마주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 “바른대로 말해. ”
  • 허아영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 “할아버지, 저와 도형 씨 만남이 중요한가요? 배 씨 집안 증손보다 더 중요해요? 아니면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염려하시는 것은 저와 도형 씨의 감정인가요?”
  • 허아영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배국봉한테 되물었다.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것이다. 성설마저도 허아영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 배 씨 가문 어른이시고,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온 T 시가 부들부들 떠는 인물인데 허아영의 눈에는 평범한 노인네로 보인단 말인가?
  • 허아영도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배도형을 만난 것이 사고라고 말할수 없었다. 그렇다면 배진화도 애초에 그녀와 배도형이 만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배국봉앞에서는 더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만약 거짓말한다면 무조건 들통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할아버지가 예전에 군인이셨고 지금은 퇴직한 장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아직은 그의 앞에서 거짓말할 배짱이 없었다. 필경 그는 배도형처럼 그녀가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