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형은 허아영과 함께 ‘로열 캐슬’ 을 떠날 때 안색이 어두웠다. 반면에 허아영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오는 길에 두 사람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허아영의 마음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배도형의 랜드로버는 온 T 시를 돌아서 다른 사람들이 감히 올 수 없는 곳까지 왔다.
‘산수정원’이라는 네 글자가 허아영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여기가 배 씨 저택이 맞아?”
허아영은 방금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불쾌함을 잊고 물었다.
“응. ”
배도형은 기분이 아직 나아지지 않았는데 허아영의 거듭되는 얕보기에 차를 몰고 계속 안으로만 들어갔다.
허아영은 매우 당황했다. 배 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 그녀는 T 시에 오래 살아서 T 시의 명문 호족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배씨 가문도 거기에 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배씨 가문이 어느 급에 속하는지 모른다. 상류사회에서도 상류층을 구분하는 방식이 있지만 그녀는 완전히 문외한인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나 허아영은 명문가의 얽히고 설킨 갈등을 깊이 알고 있다.
“왜?”
차를 세운 배도형은 정원에 들어와서 줄곧 이맛살을 찌푸리고 침묵을 지키는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배도형, 너희 집은 도대체 뭐 하는 집안이야?”
허아영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배도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더니 한참 뒤에야 한마디 했다.
“너는 배도형과 결혼한 것이지 배 씨 가문과 상관 없잖아, 네가 관심할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지 배 씨 가문이 아니야.”
허아영은 조금 당황해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배도형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배도형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할 때에야 한마디 했다.
“너는 너의 가족에게 우리가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배도형은 말없이 허아영을 데리고 배 씨 댁의 ‘산수명원’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별장에 들어선 후 허아영은 귀엽게 배도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노골적이지 않지만 곳곳마다 럭셔리한 별장을 관찰하였다.
“너희들 왔구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아영은 가볍지만 힘 있는 지팡이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연로한 어르신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할아버지.”
배도형은 예의 바르게 부르며 앞에 다가서서 배국봉을 부축했다.
“할아버지.”
허아영도 환심을 사려고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배도형의 뒤를 따랐다.
배국봉은 말없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거실에는 배진화와 성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 속의 아기는 얼마나 됐느냐?”
배진화와 성설이 일어나려는 것을 제지하고 배국봉은 허아영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2 개월 됐습니다.”
이번에는 배도형이 대답하고, 허아영은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래,아이는 건강하지?”
배국봉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허아영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허아영은 아무런 겁도 없이 배도형이 입도 열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얘야, 너는 도형이하고 어떻게 만난 거야?”
배국봉은 약간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신과 감히 눈을 마주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바른대로 말해. ”
허아영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저와 도형 씨 만남이 중요한가요? 배 씨 집안 증손보다 더 중요해요? 아니면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염려하시는 것은 저와 도형 씨의 감정인가요?”
허아영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배국봉한테 되물었다.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것이다. 성설마저도 허아영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배 씨 가문 어른이시고,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온 T 시가 부들부들 떠는 인물인데 허아영의 눈에는 평범한 노인네로 보인단 말인가?
허아영도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배도형을 만난 것이 사고라고 말할수 없었다. 그렇다면 배진화도 애초에 그녀와 배도형이 만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배국봉앞에서는 더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만약 거짓말한다면 무조건 들통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예전에 군인이셨고 지금은 퇴직한 장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직은 그의 앞에서 거짓말할 배짱이 없었다. 필경 그는 배도형처럼 그녀가 마음대로 괴롭힐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